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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대봉입니다. 홍시 제철입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 김규환
<조홍시가>가 남의 일이 아니다

남도 들판도 하나씩 비어가고 있다. 낙엽 지고 벼와 밭곡식 거둬들였으니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무 배추 뽑아 김장하고 마저 남은 감만 따서 저장하면 올 가을걷이는 끝난다. 이렇게 잔치는 끝나는 건가?

조선시대 박인로(朴仁老:1561∼1642)가 지은 <조홍시가(早紅枾歌)>에는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가 안이라도 품엄즉도하다마는, 품어가 반기리 업슬씌 글로 설워하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친구 이덕형이 홍시를 보내자 상에 차려놓고 같이 먹으려 하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슬퍼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그저 '남 이야기겠거니, 나에겐 그런 일 없을 거야!'하던 이야기다. 이젠 그게 아니다. 이미 내가 박인로의 심상에 빠져 사모곡(思母曲)을 불러야 할 처지가 되었다. 특히나 생전에 당신께서 좋아하셨다면 눈물이 앞을 가려 맘놓고 하나 먹어볼 수 있겠는가.

▲ 어머니 묘 바로 옆에 있는 감나무 그리고 자식들과 손자손녀. 지난 추석 때 보니 많이 달렸더니 올해는 누가 와서 죄다 훑어 갔습니다. 얼마나 서운하던지요.
ⓒ 김규환
감철에 홍시만 보면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어

며칠 전 찾아간 고향마을은 '감골'답게 감 지천이었다. 벌써 시골 어른들보다 더 늙어서 가지 툭툭 떨어지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노목이 된 감나무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서리맞아 더 붉게 익었다.

서민들과 함께 한 감나무, 어릴 적 내 허기를 채워주던 감홍시. 함께 감홍시를 나눴던 이들이 한 분 한 분 떠나간다. 어머니는 21년 전에, 아버지는 4년 전에 가셨고 큰형은 벌써 8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며칠 전 어머니 제삿날이었다. 어머니는 1982년 가을 음력 시월 보름날 사춘기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두고 마흔 아홉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셨다. 늘 입버릇처럼 하셨던 '나는 쉰 살만 먹고 죽을란다'를 어기지 않고 지키셨으니 말이 씨가 된 셈이다.

홍시만 보면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해마다 내내 잊고 지내다 이 먹음직스런 감 하나를 보면 더 심해지는 건 왜일까? 목이 메어 편히 먹지 못하고 오래 놔두면 쉬어빠지고 곯아서 내다버리는 수도 있다. 왜 어머니는 감 철에 돌아가셨을까? 그도 막내아들 생일 이틀 전에 말이다.

▲ 조촐히 차렸습니다.
ⓒ 김규환
먼저 가신 것 못내 아쉬워 홍시 선물 주고 가신 어머니

이틀 후인 음력 시월 열이렛날 태어난 까닭에 중학교 3학년 이후로는 생일 상 한 번 받기 힘들었다. '젊은 놈이 무슨 생일 타령이냐?' 할 수 있지만 약간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5리(五里)나 되는 먼 산비탈에 있던 밭에 고욤나무 종자를 심고 세 해 지나 베어버리고 파시와 대봉시를 접붙여 키운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밤에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가보면 때맞춰 감나무에 달린 채로 홍시가 되어 있다. 가족들은 붉게 차려진 감나무에서 하나씩 따서 내게 갖다 준다.

생일 선물이라고. 그래, 맞다. 어머니는 홀연 먼저가신 것이 못내 미안했던지 아들에게 감 홍시를 남겨두고 가신 것이다. 어머니 묘소에서 다섯 걸음이니 지척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 제사는 빼 먹지도 않고 가족들도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 뿐인가. 제사상 차리고 또다시 생일 상 차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그걸로 갈음하니 아내와 형제들에게도 외려 좋은 일 아닌가.

어머니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어머니 마음 닮은 들국화가 묘 곳곳에 피었습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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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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