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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개방문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개도국들과 전세계 NGO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이번 칸쿤회의에서 선언문 채택에 실패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오는 12월 15일 특별각료회의를 다시 열어 관세, 정부보조금, 개도국 지위 등의 문제를 확정지으려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내년 쌀협상도 영향을 크게 받을 전망이다. 한국농업은 앞으로 남은 석달에 사활이 걸린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11차례에 걸쳐 '농수산물 수입개방에 관한 11가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주1회 특별기획을 싣고 있다. 이 기사는 그 다섯 번째로 농업유통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농협중앙회를 진단해 보았다. '제때 제값'을 받지 못하는 농산물의 유통구조에는 금융사업에만 치중하는 농협중앙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있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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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1가지 오해와 진실 ①] 식량자급율 5%, 개방반대는 국익

▲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건물.
ⓒ 오마이뉴스 남소연

명제 5. 농협중앙회, 금융기업으로 경쟁력 갖춰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농산물의 유통·경제사업을 뒤로 하고, 농민을 대상으로 대출에만 열중해 사실상 '고리대금업자'로 전락했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권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는게 무슨 문제냐는 지적이 있다. 과연 그런가.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선진국들이 소농체체를 극복하고 농업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협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생산, 포장, 공동구매, 공동출하, 수출에까지 관여함으로써 조합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부상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농협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개방의 외풍을 막아낼 경제조직은 농협이라는 점에 이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농협에 쏟아지는 농민들의 원성은 누구보다 높았다.

"농협은 본업은 대충하고 돈놀이에만 열중한다."
"농협은 조합원인 농민이 아닌 조합직원들을 이익을 위한 농협이다."
"신용사업에만 치중해 경제사업이 위축되고 있다."
"농업인의 수는 줄어드는 데 농협만 커진다."


농협에 쏟아지고 있는 비난의 목소리 중 일부에 불과하다. 왜 이런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이같은 농민들의 항의가 단순한 오해에 불과한 것일까?

지난 1994년 김영삼 정부 당시 만들어진 '농어촌발전심의위원회'는 농협개혁을 위한 주요 방안 중 하나로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이하 신·경 분리) 필요성을 제안했다. 김대중 정부도 100개 개혁과제의 하나로 협동조합을 꼽고 신·경 분리를 강조했다.

신·경 분리가 무엇이길래 이처럼 역대 정권마다 농협개혁의 핵심의제로 거론된 것일까.

신용사업은 한마디로 대출 등을 해주는 금융(은행)사업이다. 반면 경제사업은 농민들의 판매, 유통, 구매사업 등을 포괄한다. 둘 중 농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사업은 당연 생산한 농산물을 제 때, 제 값을 받고 팔아주는 판매사업 등 경제사업 쪽이다.

힘들여 생산한 배추 한 포기를 농민은 밭에서 단돈 100원에 넘기는데, 도시의 소비자는 이를 그 열 배인 1000원에 사먹고 있다. 따라서 유통과정의 혁신은 농협의 경제사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농협의 모든 사업이 신용사업 중심이다. 그 외 나머지 사업은 신용사업을 위한 부대사업으로 전락했다고 할 지경이다.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지도사업의 비율이 7:2:1에 이르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이자놀이' 중심에서 농산물의 판매·유통·가공 중심으로 전환해 농업인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신·경 분리가 제기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소농체체 극복할 농업 근대화, 협동조합에 달려 있다

이렇다할 성과없이 두 정권이 사라지고 올해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다시 농림부 내에 신·경 분리추진협의회가 설치됐다. 농협중앙회까지 농협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신·경 분리를 논의했다.

그러나 농림부가 최근 입법 예고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에는 정작 알맹이가 되는 신·경 분리가 빠져있다. 농협법 부칙 제16조에 규정돼 있는 '신·경 분리' 조항을 농림부가 외면한 때문이다. 이는 농림부가 "농협중앙회에 설치된 농협개혁위원회가 정부에 건의한 농협법 개정 검토의견서와 신·경 분리 연구보고서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고 밝힌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에 대해 박진도(충남대 경제학) 교수는 "농림부, 금융연구원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이를 농협중앙회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는 "농림부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농민단체들 역시 "개혁대상인 농협중앙회의 반발과 로비에 농림부가 또다시 개혁의지를 잃어버리고 주저앉은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실제 농협중앙회는 신·경 분리에 동의하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논리로 10년 가까이 시간을 끌어왔다. "조건이 될 때 하자"고 말하는 농협중앙회는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 농림부 한 고위관계자는 "정해진 시한 때문에 서둘러 처리하느라고 부실한 입법예고안이 작성됐다"며 "내년 총선전 통과를 목표로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하기 위해 서둘렀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이 관계자는 "신·경 분리를 3년내 완성하라는 농민단쳬의 요구와 여건이 되면 하자는 농협 사이에서 농림부의 처신이 어렵다"며 "(신·경 분리 수준에 관해) 현재 내부에서 논의중"이라고 덧붙였다.

농림부 입법예고안은 국무회의에 상정된 뒤 11월 초 국회에 상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의견수렴을 거치기 위한 과정인 입법예고안에 핵심사안이 빠져 있어 농림부의 일방적인 처리가 예상되고 있다.

농협-농림부, '유통'에 대한 비전 제시해야

잘하고 있는 지방농협 많다
-충북 음성농협의 '음성청결고추'

농협중앙회는 전국 1366개의 단위농협을 가지고 있다. 그중 협동조합의 본래의미를 잘 살리고 있는 지역조합들이 여러 곳 있다. 그중 하나가 음성농협. 음성은 고추생산으로 유명한데 음성농협 산하의 16개 작목반과 69개의 영농회가 '음성청결고추' 판매사업의 주체로 역할하고 있다.

음성농협의 성공비결은 전문성. 음성농협은 등급별 차등수매를 하고 있는데 이 때 등급결정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수적인데 97년 계약재배를 도입하고 2년 동안은 농가의 민원제기도 많았다. 하지만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타농가와의 비교를 통해 검품기준을 마련하고 검증을 시켜주는 등 시행착오를 거쳐 농가와 조합간 신뢰가 형성되었다.

현재 음성농협의 계약재배율은 90% 이상, 관내 건고추의 42%인 20만근을 취급하고 있다. 그만큼 질 좋은 고추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지역농업네트워크는 "조합이 리더십을 가지고 농가는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농가의 노력분에 대해 엄격한 평가와 인센티브가 성공비결"이라고 설명한다. / 박형숙 기자
한편 그간 신·경 분리를 반대하는 측은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왔다. 농협중앙회는 당초 자본금이 4조 3941억원(2002년말 기준)인데, 신·경 분리를 할 경우 부족자본금이 3조 6119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이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같은 수치는 신빙성이 떨어질 뿐더러, 이 논리에 따르더라도 실제 부족자본금은 1조여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신·경 사업체를 분리할 경우 농협중앙회는 지도와 교육을 담당하는 비사업체이기 때문에 많은 자본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예로 지도와 교육, 농정활동을 담당하는 일본의 농협중앙회, 프랑스의 농협총연합회 등도 비사업적 기능의 조직체로 자본금 없이 회원조합 및 사업연합회들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자 농협중앙회는 다시 부족자본금을 2조 7천억으로 수정했다가 최근에는 7조원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부족자본금액이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는 자체가 신.경분리를 하지 않기 위한 술수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정확한 부족자본금을 산출하기 위해 관련 자료 공개와 실사반 구성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는 또 현재 경제사업을 통한 적자를 이유로 신·경 분리시 경제사업이 침체약화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농측은 현재 적자의 원인은 농협중앙회가 다른 유사업종에 비해 인건비 및 경비를 과다지급하고 전국적 유통사업 마인드 부족과 책임경영이 미흡한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농협, 농민의 조직인가 금융자본의 조직인가

1994년 7월 농협중앙회가 합의한 '농어촌발전위원회 최종보고서'에는 "농·수·축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을 단계적으로 별도의 협동조합은행(또는 금고)으로 독립시킨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신·경 분리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농협중앙회가 갖가지 논리로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왜일까?

전농 협동조합개혁위원회 부위원장 김용순씨(46)는 "경제사업은 힘들고, 복잡하고, 이윤이 적거나 불투명한데 비해 신용사업은 쉽고, 간단하고, 이윤이 많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쉽게 돈을 벌어들일 수 있으니 농민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유통, 구매, 판매사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농민들의 이같은 목소리에 대해 신·경 분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농협이 그 동안 유통쪽에서 역할을 한 게 없기 때문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소의 황의식 박사는 "시장개방이 다 된 상황에서 농협에게 주어진 역할이 크다"며 "농협이 유통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방 농협들의 산지유통 기능을 강화하고, 농협중앙회는 지역조합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제도개혁(신·경 분리)도 중요하지만 한국농업은 현재 그걸 기다릴 시간이 없다. 농협은 하루빨리 유통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농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금융기관으로서' 농협의 실적은 화려하다. 총수신고 182조, 전년대비 22조 성장한 은행권 최고의 성장액, 당기순이익 5935억원 달성, 3년 연속 대규모 흑자 실현. 농민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농협의 2002년 사업 결산현황이다.

이에 대해 한 농민은 이렇게 푸념한다.

"해마다 농민은 줄고 있는데 농협 직원은 반대로 늘어만 가고 있다. 생산비를 건지지 못해 부채에 시달려 자살까지 하는데 농협은 연속 흑자이며, 상여금 100%에 특별상여금까지 지급한다. 간부직원의 연봉이 6∼7천만원이고 직원 1인당 인건비는 4100만원이다. 농산물 값은 매번 폭락하는데 농자재대금은 매년 인상되고 있다. 조합원보다 준조합원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것이 농업, 농민의 현실이며 우리 농협의 현주소이다."

이 농민은 묻고 있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인가, 아니면 금융자본의 조합인가." 농협과 농림부는 이 농민의 물음에 대해 정직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농협마피아'"
전농 전 '농협개혁실무대책반장' 김용순씨

▲ 김융순씨
ⓒ심규상
김용순(46, 공주시 신풍면 입동리) 전농협동조합개혁위 부위원장은 농협중앙회를 '농협마피아'라고 잘라 말했다. 돈과 권한, 이권을 모두 쥐고 지역농협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농협을 통해 구매하는 농자재의 경우 다른 회사 제품에 비해 질은 떨어지는 반면 값은 비싸고 그마저 적기에 공급되지 않는다"는 말로 중앙회 개혁과 신.경 분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농협개혁을 왜 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농협이 가장 농협다울 때는 협동조합 기본이념에 충실할 때다. 하지만 지금의 농협은 돈놀이에만 치중해 농업인 권익보호와 신장이라는 협동조합의 본질을 이탈했다. 조합운영 또한 농어민 중심이 아닌 중앙회 중심이고 모든 권한과 이익이 중앙에 돌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농민들에게 협동조합을 돌려달라는 거다."

-농협개혁의 핵심을 무엇이라고 보나.
"농협중앙회 개혁이다. 이는 신.경 분리와 소유 및 지배구조 개선으로 요약된다. 농협의 사업과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구매사업, 판매사업기능, 상호금융사업, 교육·연구기능 사업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본래의 기능이 중앙회의 은행금융 사업 때문에 축소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약 9조원에 달하는 경제사업과 30조원에 달하는 상호금융특별회계(조합 여유자금 운용액), 1300억원에 달하는 지도사업이 회원조합 및 조합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신경사업을 분리하고 농협중앙회는 교육.연구기능에만 열중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농협중앙회 모습과 핵심이 되는 경제사업 추진현황은?
"한마디로 농협중앙회는 '농협마피아'다. 돈과 권한, 이권을 쥐고 지역농협의 사업방향까지 좌지우지 하고 있다. 경제사업의 경우 일 예로 농협을 통해 구매하는 농자재의 경우 다른 회사 제품에 비해 질은 떨어지는 반면 값은 비싸고 그마저 적기에 공급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회는 지역농협을 통해 농민들의 개별구매를 막고 농협을 통한 계통구매를 강요하고 있다."

-농림부가 입법예고한 농협개혁안을 개악 안으로 보는 이유는?
"핵심이 되는 신경분리와 소유 및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즉 알맹이가 없는 빈 껍데기 법안이다."

-농림부가 왜 이같은 법안을 마련했다고 보나.
"농협중앙회의 수익 구조를 보면 농협중앙회 신용사업 조수익의 30%를 가만히 앉아서 돈 번다는 시군금고등의 공공예금과 22조원에 달하는 정책자금에서 나오는 수익이 담당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이런 금고운영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98년 3123억원에서 지난해 5345억원으로 늘었다. 이러니 농협 중앙회가 지도, 지원해주는 본래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앉아서 공 돈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거다. 때문에 농협중앙회의 반발과 로비에 농림부마저 개혁의지를 상실한 것이라고 본다."

-농림부안이 어떻게 개정돼야 한다고 보나.
"신용분리와 분리 시기를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 농협중앙회는 근거 없는 수치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농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실사단을 구성해 자기자본 필요액, 지도사업비 조달문제 등에 대해 실사를 벌이자는 요구에 답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여나갈 것인가.
"개인적으로 한국농업 문제의 핵심은 대외적으로는 수입개방, 대내적으로는 농협개혁 문제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농림부와 농협중앙회가 신.경분리 등 농업개혁에 나설 수 있도록 강제해나갈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범개혁연대를 구성해 농민들의 입법안을 별도로 제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 심규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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