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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바로보기 운동'은 옥천지역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은 옥천신문 창간 14주년 기념호에 실린 옥천 주민들의 얼굴.
ⓒ 옥천신문 PDF

김효재 조선일보 판매국장에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에서 취재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정지환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에게 제가 이렇게 공개편지를 쓰게 된 까닭은 김 국장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제가 김 국장 '개인(個人)'에게 어떤 사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러나 김 국장의 '공적 행위(公的 行爲)'에 대해서는 성역과 금기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을 다 하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두면서, 저의 공개편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김 국장은 지난 8월 29일 원로언론인 정경희 선생에게 발송한 내용증명 편지에서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옥천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워졌다고 말씀하신 근거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 주기를 바란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사과도 없다면 저와 조선일보의 명예를 위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김 국장의 그 요구와 경고에 대한 해명과 반박은 제가 시민의신문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에서 소상하고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김 국장께서도 그 글을 통해서 평소 궁금해 하셨던 의문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어느 정도 수긍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선 여기서는 지난 기사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몇가지 사실만 간단하게 덧붙이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첫째,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실제로는 4분의 1보다 더 많이 떨어졌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영배 조선일보 지국장은 2001년 3월 15일 옥천경찰서 박해식 경장에게 진술한 조서에서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스포츠조선과 한국경제까지 옥천에서 약 2000부를 배달하고 있다"면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부수의 수익을 6:4의 비율로 본사와 나눠먹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존의 조선일보 판매부수의 기준을 약 2000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조선과 한국경제 부수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2000부 절대 다수를 조선일보로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조선일보 옥천지국은 법률상담 과정에서 판매부수가 370∼430부로 줄었다고 호소했다"는 한나라당 지구당 간부의 증언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안티조선 운동으로 매달 300부씩 감소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영상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조선일보 지국장의 검찰 진술이 위증(僞證)이 아니라면, 조선일보 판매부수는 4분의 1이 아니라 5분의 1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 정경희 선생에게 문제의 증언을 했던 오한흥씨는 "옥천에서 조선일보는 넉넉하게(?) 쳐준다 해도 유료부수가 500부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한 바까지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김 국장님, 그의 증언을 직접 들어볼까요?

"작년 3월경에 옥천읍에서 한 개인병원이 개업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조선일보 옥천지국 총무가 그 병원에 찾아와서 광고삽지(일명 찌라시)를 1500부나 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면전에서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하느냐'고 일갈하자, 그냥 1000부만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안티조선 인터넷 홈페이지(www.mulchong.com) 게시판에 '조선일보 유료부수가 옥천에서 600부 이상 된다면 1000만원의 현상금을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둘째, 조선일보 옥천지국이 작년부터 중부매일과 한빛일보 등 2종의 지방일간지까지 배달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현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일보 옥천지국에 사무실을 임대해주고 있는 건물주이자 옆집에서 '육일상사'를 운영하는 육점수씨는 "조선일보만 가지고도 먹고 살만 하면 굳이 얼마 되지도 않는 지방지까지 돌릴 틈이 있겠냐"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조중동과 한겨레 옥천지국 중에서 지방일간지 배달에 손대고 있는 곳은 조선일보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손광석 동아일보 지국장이 했던 다음과 같은 증언에도 김 국장님은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나에게도 지방일간지 배달사업을 해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프로 정신'을 가지고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이제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그런데 김 국장은 왜 당사자도 아닌 제가 나섰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 8월 14·15일 옥천에서 열린 언론문화제 행사 중 하나로 정경희 선생의 초청강연회 실무를 책임졌던 저로서는 이것이 결코 '남의 일'일 수 없었습니다. 한 신문사 간부가 칼럼의 일부 내용에 발끈해 구체적 반론이나 객관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법적 조치' 운운하며 제기한 문제 정도를 가지고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원로언론인을 성가시게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과 관련해, 언론문화제 때 있었던 일화를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정경희 선생에게 어떤 선입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겨레에 썼던 칼럼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5억 소송까지 당했던 전력이 있었던 터라 초청강연회도 흔쾌히 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시작되면서 그 선입견은 당장 깨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정경희 선생이 칼럼에서 했던 진술, "안티조선을 지지하건 반대하건 옥천을 보지 않고 오늘의 한국언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해 왔다. 다만 '제3자의 입장'을 견지하자는 뜻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주최측 요청도 끝내 사양했다"는 대목은 실제로 사실에 부합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실사구시적 현장취재를 중시하면서도 어느 한쪽 입장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정경희 선생의 '자유주의적 저널리스트'로서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제 자신이 '실천적 저널리스트'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정 선생의 그런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정 선생은 칼럼을 쓰면서도 매우 신중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거니와, 김 국장이 문제삼았던 다음과 같은 대목도 사실은 신중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옥천에는 안티조선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오한흥씨가 있었다. 올해 45세의 그가 안티조선에 나선 것은 3년 전인 2000년 8월. 그는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그 결과 이제 옥천에서의 조선일보 판매부수는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옥천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발언의 주체는 '기자 정경희'가 아니라 '취재원 오한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굳이 '문장구조론'이나 '형식논리학'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이 훈민정음 창제의 은덕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동의하는 해석일 터입니다.

따라서 저는 김 국장의 편지를 읽으면서 문장 독해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부터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김 국장은 이런 예상되는 반론에 대해 사전에 방어벽을 치는 것을 잊지 않았거니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논리의 개발(?)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 "조선일보가 그렇게 자신있게 아직도 1등이고 부수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 스스로 그 사실을 입증하면 될 일이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멀쩡한 행인에게 '저 놈은 도둑이다'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행인이 '나는 도둑이 아니다'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입증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그 행인이 도둑이란 사실을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른바 명예훼손이 되는 것입니다."

(2) "다른 사람의 발언을 인용했다고 해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정 선배께서는 옥천에서 안티조선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을 빌어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추락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당사자의 반론, 또는 그럴만한 정황 설명조차 없이 특정인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필자가 그 사람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고 옮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요약하면 (1)입증 책임은 문제 제기한 사람에게 있으며 (2)인용 보도에 대해서도 기자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더욱이 김 국장은 예의 '글쓰는 사람의 기본적 소양론'까지 거론했는데, 편지에서 "그 발언이 사실이란 것을 입증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사과하고 정정해야 할 책임 역시 필자에게 있다는 것은 글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라는 주장한 것입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그러나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그 '말 화살'들은 곧바로 조선일보에게 돌아가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적반하장'을 찾아보니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다음과 같은 '용례(用例)'도 나와 있었는데, 제가 김 국장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 소개하는 바입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구한테 큰소리냐?"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지요.

김 국장은 조선일보 2002년 3월 25일자 사설 '음모론, 무엇이 진실인가'를 기억하십니까? 이 사설이 나오던 당시에는 민주당 국민경선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요. 국민경선이 개막될 때까지만 해도 선두를 달리고 있던 이인제 후보가 거세게 불기 시작한 '노풍'에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위기에 몰린 이 후보가 꺼낸 카드가 있었으니, 국민경선에 김심(金心)이 작용했다는 '음모론'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후보는 어떤 증거나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김 국장이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는 김 국장의 논리대로 "입증 책임은 문제 제기한 사람에게 있다"고 일갈하면서 근거 없는 마타도어를 일삼은 저질 정치인을 혼내주었을까요? 그런데 그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김 국장이 더 잘 아시겠지요. 조선일보는 도리어 사설을 통해 이인제 후보의 음모설을 '뻥튀기'한 뒤 이런 '흰소리'를 늘어놓았던 겁니다.

"우선 '김심'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 초연'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는 '근거 없는 말'이란 소극적 해명에서 나아가 '왜 근거가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반인들이 별 생각 없이 읽으면 이게 크게 틀린 말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사가 바로 그 유명한 '∼라면 기사'의 전형이지요. 앞에서 '가정형 문장'을 써 놓고 뒤에서는 그것을 근거로 '단정형 문장'으로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식이 바로 '∼라면 기사'의 전형이지요. 그리고 이 방식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면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빠져 나올 수가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네티즌들이 이 사설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풍자적 반론을 사이버 공간에 올렸지요. 그 중에서 한 가지 사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중에는 조선일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정론 언도를 걷겠다던 사시를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일보는 '근거 없는 말'이란 소극적 해명에서 나아가 '왜 근거가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부 네티즌들의 간단한 비틀기에 의해 그 정체가 금방 탄로 날 정도로 '∼라면 기사'의 논리적 체계는 허술하기만 합니다.

따라서 "인용 보도에 대해서도 기자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김 국장의 논리를 정작 철저하게 무시하고 유린했던 장본인이 바로 조선일보였다는 사실을, '글쓰는 사람의 기본적 소양'은 커녕 저질 정치인의 비겁한 마타도어를 확성기로 크게 틀어준 '더러운 정쟁'의 공범자(共犯者)가 바로 조선일보였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천박한 수준의 언론이 1등신문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를 우리는 아프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지난 두 번의 기사가 나간 뒤 어느 분들은 "특정신문을 미워하고, 시골에까지 내려가서 조사를 하는 감정적 방식이 너무 유치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티조선이 단순히 조선일보를 미워하는 운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봤다면 그것은 이만저만한 오해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리어 이 운동의 속살에는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는 온갖 모순 덩어리와, 그러한 엄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궈내야 할 희망과 대안의 씨앗이 동시에 숨어있다고 확신합니다.

'안티조선과 언론개혁의 성지' 옥천에서 이른바 '조선일보바로보기운동(일명 조선바보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의 일입니다. 지난 2000년 8월 15일 옥천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주민 33명은 정지용 시인의 흉상 앞에서 '조선일보바로보기옥천시민모임' 출범식을 가졌지요.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선일보의 사회적 해악을 알리는 한편 맨투맨 식으로 조선일보를 보는 이웃들에게 구독거부를 권유하는 운동(일명 옥천전투)을 전개해 왔습니다.

정경희 선생마저 현장을 직접 방문한 뒤 감탄을 금치 못했던 '옥천전투'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조선일보의 사회적 해악을 주민에게 알리되 친일행각 고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승만 일파와 친일파 세력에 의해 무너진 '반민특위'를 반세기만에 자신들이 다시 세우고 있다고 믿고 있지요. 둘째, 안티조선을 지향하되 구체적인 구독거부 권유운동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셋째, 조선바보운동에는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옥천 주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군의원은 물론이고 해병전우회장과 한나라당 간부까지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지난 3년 동안 옥천에선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 <문화일보> 3월 25일자 기사. 우리나라 최대 일간지인 <조선일보>를 상대로한 옥천시민들의 운동은 스스로 새로운 '언로'를 개척할 만큼 주민들을 변화시켰다.
첫째,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줄어들면서 언론의 다원화(多元化)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기사에서 우리가 함께 확인해본 것처럼, 조선일보가 줄어든 대신에 그 공백을 메운 것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신문들이었죠. 실제로 몇 년 전 IMF사태 당시 옥천에서 사라졌던 경향신문 지국이 작년에 다시 문을 열었으며, 한겨레 판매부수가 조선일보의 그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렇게 중앙언론이 정리되자 도 단위 일간지가 주도하던 기존의 기자실 분위기도 더불어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옥천경찰서 정보과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옥천에서 공무원들은 이제 더이상 사이비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면서 "사이비 언론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공무원들이 주민을 위한 활동에 전력할 수 있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조선일보를 '종이 호랑이'처럼 우습게 아는 데 지방일간지야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것 아니냐"면서 "그것은 조선바보운동이 가져온 변화 중 가장 긍정적 사례일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조선일보 부수가 줄어들고 언론의 다원화가 이뤄지자 지역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지방선거에서 신선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우선 4명의 후보가 출마한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당선이 가장 유력했던 보수적 후보가 '꼴찌'로 낙선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충북 교육위원 선거에선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가 추천한, 그것도 여성 후보가 예상을 깨고 당당하게 당선됐는데, 옥천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충북교육청이 전교조 인터넷 사이트를 해킹한 장학사가 문제가 되자 옥천으로 보냈다가 "옥천은 해킹 장학사를 보내는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끈질긴 항의투쟁 때문에 다시 데려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매우 시사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김 국장이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권력과 수구·기득권세력이 가장 미워했던(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죠?) 노무현 후보의 옥천 평균 득표율(58.6%)이 전국 평균 득표율(48.9%)은 물론이고 충북 평균 득표율(50.4%)보다 훨씬 높게 나오면서, 당당하게 충북 1위를 차지했던 겁니다(옥천지역 선거구 중에서도 안티조선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오한흥씨가 거주하는 안터마을이 포함된 선거구가 노 후보에게 가장 많은 지지표를 던진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옥천의 지지율(5.7%)도 전국 평균치(3.9%)를 훨씬 상회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개혁과 진보를 지향하는 진영에선 노무현 표가 많이 나오면 권영길 표가 줄어들고, 권영길 표가 많이 나오면 노무현 표가 줄어든다는 '제로-섬 게임식' 사고방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옥천 주민들은 개혁진영의 양측이 동시에 승리할 수도 있다는 '윈-윈 게임식' 사고방식이 가능하다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 셈입니다.

그러나 옥천 주민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상식과 원칙입니다. 그들은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물구나무 선 세상을 바로 돌려놓는, 즉 전도된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상식과 원칙의 출발점에 언론개혁과 안티조선의 노둣돌이 놓여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결국 옥천 주민들은 "언론을 바로 세우면 세상도 바로 선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그것은 이 땅의 개혁과 진보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안티조선과 언론개혁의 전선으로 과감하게 떨쳐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이번에는 제가 조선일보 옥천지국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저는 지난 9월 6일 오전 9시30분 '반론권 보장'을 위해 조선일보 옥천지국을 방문했습니다. 여직원 한 명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더군요. 자신을 경리 사원이라고 소개한 그녀에게 지국장의 행방을 묻자 "충주에 소재한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아니, 어디 다치기라도 하셨습니까?"
"담석 치료를 받느라고요.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요."
"그러면 신문 배달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지국장님이 담당하던 신문은 우편으로 임시 발송하고 있어요."
"나머지는요?"
"총무님이 직접 배달하고 있고요."

"그럼 총무님은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지국장님 대신 뵙고 갔으면 합니다."
"기다려봐도 소용없을 걸요. 배달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거든요."
"오전 9시30분이면 벌써 배달을 마쳤을 시간 아닙니까?"
"최근에는 정오가 넘어서까지 배달이 끝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현재 직원은 모두 몇 명입니까?"
"지국장님, 총무님, 저 모두 세 명밖에 없습니다."

마침 그날 오전 11시30분에 신준호 중앙일보 지국장을 만난 김에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딱한 표정으로 이렇게 진단하더군요.

"생각한 것보다 조선일보 지국 사정이 심각하네요. 신문 배달은 아무리 늦어도 오전 7시30분까지는 끝내줘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출근 시간을 넘겨서 배달된 신문을 누가 보려고 하겠습니까? 더욱이 직접 배달하던 신문을 우편으로 배달하면 독자들이 엄청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어요. 솔직히 그건 이미 신문(新聞)이 아니라 구문(舊聞)이죠. 그래서 오죽하면 '신문사 지국장은 부모가 돌아가셔도 새벽이 되면 잠시 상복을 벗고 나와서 배달을 한다'는 말이 다 있겠습니까."

호탕하게 판매부수 1위를 자랑하기 전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것이 판매국장의 도리와 역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지난 9월 25일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취재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김 국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사실 저는 당시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주장'을 근거로 상대방을 몰아붙인 이유가 무엇인지, 편지를 쓰기 전에 옥천에 직접 가서 사실관계는 확인해 봤는지 등을 묻고 싶었습니다.

특히 제가 주목한 것은 '기자 출신'인 김 국장이 직접 현장 확인을 했느냐는 거였죠. 왜냐면 정경희 선생은 적어도 직접 현장을 둘러본 뒤 칼럼을 썼기 때문입니다.

알 아시고 계시겠지만, 그날 김 국장은 정경희 선생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취재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요. 그때 나눴던 다음은 같은 요지의 일문일답이 생각나십니까?

"당신이 정경희 선생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 몇 가지 묻겠습니다."
"어, 그게 어떻게 그리로 갔지…."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요?"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말해 줄 수 없어요."
"'법적 조치 불사' 등 강력한 주장을 피력했는데, 그런 주장을 하면서 내세운 근거라는 것이 너무 빈약해 보이는데…."
"……."

"당신이 내세운 근거는 '일부 세력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이 판매부수를 지켜 그 지역 판매부수 1위를 유지하고 있다'와 '이런 사실은 경쟁지 지국장에게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가 전부인데…."
"……."
"경쟁지 지국장들에게 직접 확인해보고 그런 주장을 한 것인가요?"
"내가 그걸 말해야 됩니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 국장은 마지막으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순간, 꼭지가 돌아버리더군요.

한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방에겐 성실한 답변, 인정과 사과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촉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하려는 취재에조차 응해줄 수 없다면서 불성실하게 대응하는 이 뒤틀린 심보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효재 판매국장님.

저는 김 국장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증 책임과 인용 보도에 대한 기자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입증 책임을 외면한 채 무책임한 인용 보도에 일가견을 보이고 있는 조선일보를 지켜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조선일보식 사고방식'의 진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일보의 기준이나 잣대는 '진실'이나 '사실'이 아닐 때가 너무나 많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그것만이 조선일보가 신봉했던 기준이나 잣대가 아니었을까요?

이번만 해도 그렇습니다. 고소할 때는 "일부 세력의 업무 방해로 판매부수가 매달 300부씩 엄청나게 감소해서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이제 와서는 안면을 싹 바꾼 채 "일부 세력의 방해 책동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판매부수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경쟁지 지국장에게 물어봐도 모두 인정할 것"이라고, 확인해보면 뻔히 거짓으로 드러날 근거를 마치 진실인 양 그럴 듯하게 내세웁니다. 그리고 그런 부실하고 가식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법적 조치' 운운하며 협박을 가합니다.

객관적 진실이나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따라 기준이나 원칙을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억울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고 출세하면 된다는 승리지상주의·천민자본주의·출세지상주의·개발지상주의·독재지상주의·사대지상주의·대세지상주의·황금만능주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원흉일 터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제호 위에 일장기를 달고 "천황폐하 만수무강 만세"를 선창하였으며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체결한 조약"이라고 규정했던 조선일보 - 그러나 외세에 의해 해방된 나라에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어느 날 강대국과 독재자를 '구국의 영도자'로 찬양하며 '민족신문'으로 둔갑한 그들이야말로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항일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부끄러운 민족의 자화상을 그려낸 원흉일 터입니다.

▲ 김효재 조선일보 판매국장이 정경희씨한테 보낸 서한. 이제 공은 김 국장에게 넘어갔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를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정경희 선생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할 것인가.
ⓒ 오마이뉴스

김효재 판매국장님.

이제 편지를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 국장님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를 내놓으실 것인지, 아니면 정경희 선생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할 것인지, 양단간의 선택을 해야 할 순간도 아울러 다가오고 있습니다. 물론 김 국장님이 자칭 타칭 대언론사의 간부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니면 말고'식의 졸장부 같은 대응은 결코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든지 김 국장과 조선일보는 성실한 자세를 보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 김 국장께서는 오한흥씨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주의 깊게 경청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가 판매부수를 공개한다면 반드시 유료부수를 내놓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신문대금을 지불한 영수증이 첨부된 구독자 명단을 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분들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반드시 첨부돼야 합니다. 그래서 양측이 인정하는, 객관적 입장에 있는 제3자가 나서서 조선일보 독자들이 진심으로 본인이 원해서 보고 있는 것인지, 경품이나 강제구독으로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이 제안을 수용해서 서로가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는 '진실게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의 제안이 너무 부담스러워 조선일보가 새로운 절충안을 내놓고 싶다면 언제든 성실하게 협상에 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응이 없다면, 조선일보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항복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동시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김효재 판매국장님.

이제 공은 김 국장과 조선일보로 넘어갔습니다. 성실하고 진지한 응답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난번 김 국장이 정경희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씀처럼, "다음 번엔 이런 문제가 아니라 언론계 후배로서 선배의 고언이나 경험담을 듣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긴 편지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3년 10월 9일 정지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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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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