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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매미의 위력 앞에 전파된 대구마을 가옥
ⓒ 김학록
"매미가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 모랐다"며 지난 59년의 사라호 태풍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여긴 섬이라 특별히 방송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생활이다. 그래서 신수도출장소에서 오전내내 방송을 할때도 그러려니 했다"며 신수도 주민은 하루전의 악몽을 되새겼다.

"저녁 8시가 못되서 바람과 비에, 접안한 배가 걱정이 되서 집 밖을 나서는데 불어나는 물을 보고 망설이다가 안되겠다 싶어 급히 가재도구는 정리도 못하고 학교로 도망쳐 왔다"며 강 아무개 주민은 당시를 회상했다.

신수도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태풍이 상륙한 8시경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까지 해일과 바람소리, 어딘가가 거친 파도에 찟겨나가는 바다울음소리를 들으며 섬주민 모두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기자가 자원봉사자 일행과 섬을 찾은 때는 태풍이 지나간 이틀째 아침이다. 신수도는 삼천포항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의 남쪽에 25여호가 살고 있는 대구마을이 있고, 나머지 200여호는 큰마을이라 일컫는 본동마을에 살고 있다.

▲ 뭍에서 친척을 돕기위해 속속 섬으로 들어오고...
ⓒ 김학록
본동은 어항개발이 완료되어 현대식 방파제가 조성되어 태풍에 따른 위험이 적고 마을도 고지대에 형성되어 있어 해일에 의한 침수피해 외엔 그닥 큰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대구동과 추섬유원지, 죽방렴발장은 경우가 달랐다.

추섬유원지는 접안시설이 유실되고 민박시설 반파되는 등 해일의 직접적 피해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뭔가 손을 써야 하는데도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허탈감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보고 있었다. 죽방렴의 발장은 높은 파고에 의해, 한 곳은 가옥이 전파되고 다른 한 곳은 반파되어 유명 관광물이 흉물로 변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섬을 한바퀴 일주하고 대구마을에 내렸다. 대구마을은 동서로는 지대가 낮아 동쪽에서 파고가 일면 그 물이 서편으로 넘어 올수 있는 섬 중에서도 저지대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거주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금번 태풍은 이같은 대구마을의 약점을 그대로 치고 들어 왔다.

▲ 태풍에 지붕과 농경지가 유실되고 폐가가 되버린 섬집
ⓒ 김학록
태풍이 상륙한 시간인 오후 8시경은 만조이면서도 비교적 조수위가 높아, 파랑이 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지역인셈이다. 그런데다가 초속 40미터에 이르는 태풍의 바람과 해일에 의한 집체 만한 파도가 마을 전역을 강타했으니 온전하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밀어 닥치는 파도, 섬마을 지붕을 덮고 있던 힘 없는 스레이트는 그 자체가 흉기였다. 추석을 지새며 그동안의 가족의 정을 나눌 틈도없이 밀어닥친 자연재해 앞에 속수 무책으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 태풍 매미의 위력에 방파제 축양장을 올라 탄 대형바지선
ⓒ 김학록
다음날 아침, 재산피해 규모는 집계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우신조인지 인명손실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가축조차도 피해가 전혀 없었다.

이유는 공무원들과 마을지도자들에게 있었다. 자원봉사 할동중에 주민이 전해 준 말이다. 강호진 소장(사천시 수산직 6급)을 포함한 마을지도자의 동분서주가 오늘만이 아니고 추석을 반납한 채 연사흘 섬을 떠나지 않고 첫날은 수해예방을 위해 그 다음날 부터는 재난복구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검게 거을린 얼굴에 사천시청 모자를 눌러 써고 재난구호물품을 직접요청해 주민에게 보급하고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위로하는 작은 섬 공무원의 노력 앞에 숙연한 무엇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윽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천시장 이하 기관장들의 피해지 위문이 이어졌고 시청 공무원 20여명이 대민봉사를 위해 섬을 찾았다. 방파제 선착장에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마을의 한 주민은 "문디 XX들, 우리가 언제 라면 몇개 받고 악수하자고 했나"며 격앙된 어조로 그동안의 피로기가 가득한 눈에 핏발을 세우며 말했다.

그러자 그 옆의 다른 주민은 "그래도, 이 난리통에 방문한 어른들이지 않냐!"며 "할 말이 있으면 조근조근 부탁하면 될일 아이가!"하며 타일렀다.

우리 서민은 자연재해가 가져다 준 고통보다 해도해도 못 따라가는 현실 앞에 한 발 뒤로 밀려나는 상대적 허탈감에 더 고통스러워 한다. 다시 섬주민들은 일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땀 흘려 일한다.

신수출장소에서 집계한 피해상황을 옮겨본다.

△주택피해 전파 5채, 반파 10채, 침수피해 25채
△양어장피해 1개소전파, 광어 7만5천미 폐사
△죽방렴어장 피해 반파 2개소
△산사태 피해 2개소
△도로유실 3개소
△농경지유실 9개소
△대구방면 급수관 파열
△선착장 피해 2개소

신수도 섬내의 전력은 태풍피해 24시간만에 복구가 되었고, 14일 통신선로와 급수시설도 저녁 6시에 완전복구되었다. 또한 사천시에서 마련한 긴급구호 물품도 이날 오후 2시경에 전 피해주민에게 지급이 완료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자신감 회복만 남은 듯 했다.

▲ 수해복구를 위해 여념이 없는 대구마을 주민들, 힘 내세요.
ⓒ 김학록
사천시에서 복구에 대한 종합적인 실태조사와 후속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 시름에 찬 주민들의 깊게 패인 주름살 위로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뜻 깊은 추석명절을 반납해가며 누가 알아주기를 바래서라기보다 공무원의 주어진 책무이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신수출장소 소속 시직원을 포함해서 늘 잘해야 본전인 공직의 자리에서 욕 먹기를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노력하는 모든 공무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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