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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에 참석한 60여명의 농민들.
ⓒ 황영하
"듣고보니 완전히 사기당했구만."

전라북도 군산시 농민회 사무실이 술렁이고 있었다. 60여명의 농민들이 두시간여동안 진행된 교육을 듣고 강의실에서 나오는 길에 담배를 입에 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면장의 멱살을 잡고 끌고 오겠다는 소리도 들리고, 강현욱 도지사에 대한 걸죽한 욕설도 드문드문 들려왔다. 이날 대야면 지회에서 진행한 교육은 전라북도에서 폭넓게 진행되고 있는 핵폐기장과 양성자 가속기 유치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후 2시 10분쯤, 미처 준비를 마치지 못한 농민회 강의실 주변에 두세명의 농민이 미리 와서 기다리며 농민회 집행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6월 27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농활대 이야기며, 6월 20일의 상경투쟁 이야기,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관한 이야기 등이 드문드문 화자되고 있었다.

▲ 고창에서 만들어진 자료집
ⓒ 황영하
2시 40분경, 오늘 교육을 위해 대형 탤레비젼과 VTR 이 강의실로 옮겨지고, 십여명의 농민들이 자리를 꽤차고 앉기 시작했다. 일찍 자리하려던 고창군 농민회 집행부인 오늘의 강사가 숨을 몰아 쉬며 자리에 나타나고, 그의 손에 든 자료집이 책상위에 미리 자리잡은 강장제 옆으로 놓여지기 시작했다.

자료집은 두가지로 하나는 '핵폐기장·핵발전소 추방 범고창군민대책위원회' 명의의 '바로알자, 핵페기장!' 과 '고창군민과 전북도민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주)) 과 강현욱도지사에게 우롱당하고 있습니다' 라고 써진 것.

'고창군민과..' 자료집 표지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모습이 판화로 찍혀있다. 이는 "고창은 의기어린 항쟁의 고장으로 인륜(人倫)이 서고 인효(仁孝)가 자애(慈愛)로운 곳" 이라는 자료집의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오후 3시. 당초 강연이 시작되기로 예정된 시간이지만, 오겠다던 사람들이 자리에 모여들지 못해 교육을 진행하지는 못하고, 대신 6월 20일에 진행된 상경투쟁을 정리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40명을 예상하고 준비된 자리엔 스무명 남짓한 농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갓 돌이 지난듯한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여성농민도 함께했다.

오후 3시 20분. 대야면 지회 집행부 한명이 앞에 나서 단상에서 이야기를 한다. 예정보다 늦어졌으며, 지금 보고 계시는 비디오는 상경투쟁에 대한 이야기란다.

비디오가 끝나면 고창군 농민회에서 온 강사가 오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것이니 주의깊게 잘 들어주었으면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전한다. 이야기를 하는동안 강의실 구석에 뻘쭘히 있던 강사가 자리하며 농민회 집행부에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몇마디를 건넨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인것 같다.

오후 3시 30분. 강연에 앞서 상영된 FTA 관련 비디오 상영이 끝나고, 본격적인 교육이 진행된다.

강사는 한시간 반 가량 강연을 진행하였다. 핵폐기물 처리장과 양성자가속기에 대한 비디오 시청, 그리고 이를 보다 세세히 다룬 자료집의 설명등이 축을 이루었고, 다섯시 무렵 강연장을 나오기까지, 교육 참가자들의 표정은 긴 시간에 지쳐 깜빡 졸기도 했지만, 내심 편치 않은 모습들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하나둘씩 자리를 나서는가 싶더니, 농민회 사무실에 모여 목청을 돋군다. "듣고 보니 완전히 사기당했구만."

60대의 농민인 그는, '나같은 사람이 핵이 뭔지 알기나 알겠느냐' 며, 마을 이장이 전라북도 살림이 좋아진다고 하기에, 마냥 좋은줄만 알았는데, 교육을 받고 보니 그런게 아니라며 목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이는 '당장에 면장한테 쫓아가 멱살을 잡아 여기까지 끌고와야겠다' 며 피우던 담배를 이내 접어 버리고는 차에 올랐다.

이같은 반응이 일어난 데에는 전라북도에서 진행중인 '핵폐기장·양성자가속기 유치' 사업과 관련해서, 몇몇 시군단위에서 암암리에 진행된 '방폐장(원전수거물관리시설), 양성자가속기, 한수원(주)본사 유치에 관한 시민 서명록' 이 큰 작용을 했다는것이 이날 모인 농민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총력투쟁 벌이겠다."
군산시 대야면 농민회 간부 짧막 인터뷰

이번 상황에 대해 대야면 농민회 간부는 '행정력이 총동원된 여론조작' 이 일고 있다며, 유치반대 총력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 전라북도 도지사를 필두로, 행정력이 총 동원된 여론조작이 이루어 지고 있다. 관에서 동네 이장이나 반장을 소집하여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서명을 받도록 해왔다.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서명은, 군산시 개발과 경제적 이익등 입증되지 않은 사실만이 전달된채 진행되었다.

- 군산시의 경우는 어떠한가?
= 당초 전라북도에서는 신시도를 중심으로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했으나, 군산시 어디든지 (관제 여론조작등을 통한) 그런식으로 지질 등 타당하면 (핵폐기장 유치를) 진행하겠다는 흐름이 진행되어 왔다.

- 구체적인 사례가 있는가?
= "계정"의 경우, 농민회에서 (핵폐기장등 유치에 대해) 안티가 걸렸다. 노인들이 많이 계셔서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장등이 미리) 이름, 주소등이 써있는 서명판을 들고 다니며 도장만 찍으러 다니는 사례가 포착되었다.

- 앞으로의 대응은?
= 농민회에서 이장단 회의를 소집, 정확한 문제를 이야기 하고,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벌일것이다.
현재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대책위를 구성하였다. (그동안)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농민회도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늦어서, 대처하지 못했다.

- 반응은 어떠한가?
= 핵폐기장 유치 반대에 관한 플랭카드를 설치하러 여러곳을 돌았다. 작업도중 지나던 노인분들에게 생각을 물어봤는데, '개발 되어야 되지 않냐' 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러저러한 여러가지 정황을 알지도 못한채, 개발이나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에서 찬성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실제 사례도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노인들까지 생각이 편향된것을 보면, 관에서 동원할수 있는 수단은 죄다 동원되었다고 판단된다.


/ 황영하
농민회에 의해 공개된 '방폐장..' 서명용지의 출처는 다름아닌 이날 교육에 참여한 한 농민.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농민들의 반응을 취합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전라북도 차원에서 몇몇 시군을 대상지로 선정, 각 지역이 절대적으로 폐기장 등의 유치에 나서야 전라북도 경제가 산다는 논리를 펴왔고, 관에서 경제가 사는 방법이라고 하니 옳은줄만 알았다는것.

둘째, 핵폐기장에 대한 이야기는 안전하다, 불안전하다의 이야기를 떠나서 대충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다.

셋째, 서명운동 등을 통해 양성자가속기 사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떤 것인지 알수가 없어서 연구시설 같은 것으로만 인식했었다는것. (주 1)

넷째, 해당 시군 면장, 이장등을 대상으로 홍보비 제공과 주민 설득작업을 벌여왔으며, 이 과정에서 위와같은 사실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채, 전라북도나 해당 지역의 경제 논리만 제시되었다는것.

다섯째, 이런 방식으로 농민회나,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해서는 비밀을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설명 없이 서명이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현재 대야면 지회는, 7월 5일 오전에 이장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의를 소집하고, 토론을 거친 뒤, 대야면 면장 면담을 예정하고 있다.

주민여론을 형성하려던 상황이 급변하게된 지금, 가장 시급한것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등으로 인해 군산 농민들이 입을 경제적 피해이다. 농민들 중에는 벼농사를 짓는 경우도 많지만, 일본등과 직접 계약을 맺고, 자체 이름으로 생산물을 독점공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로인한 피해는 쉽사리 예측할수 없다.

미군기지로 인한 소음문제와 더불어, 새만금 사업 추진 강행 등, 경제적, 정치적인 이권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은 군산으로서는, 이번 사안이 지역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찢어진 서명용지
ⓒ 황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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