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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반한 결정을 내리자 '반전평화를 위한 비상국민회의'(이하 '비상국민회의')가 소집되어 국회의 결정을 규탄했다.

▲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원로와 지도급 인사들이 '반전평화를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김학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비롯한 각계 원로와 지도급 인사 150여명은 4월 3일 10시 30분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비상국민회의'를 소집,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를 규탄하면서 향후 반전평화운동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3월 31일 노구를 이끌고 명동성당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리영희 선생(한양대 명예교수)을 비롯한 원로 45인이 제안한 '비상국민회의' 소집 요청을 각계 각층의 지도급 인사와 안성기(영화배우) 유인촌(탤런트)씨을 비롯한 대중스타 등 442명이 동의하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전평화를 위한 국민행동 지침

1.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로운 지구를 실현하기 위한 지구적 시민행동의 날(4월 12일) 전국 동시다발 집회에 다 함께 참여합시다.
2. 이라크전 중단과 한국군 파병반대, 한반도 평화실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합시다.
3. 정부와 국회를 향해 전쟁중단을 위한 유엔긴급총회 소집에 나서도록 촉구합시다.
4. 이라크 난민 지원을 위한 구호기금 모금운동에 동참합시다.
5. 가가호호, 방방곡곡, 사이버 공간에 반전평화 상징물을 게시 부착, 착용합시다.
6. 청와대와 정부에 반전평화 이 메일 보내기, 우편엽서 보내기 운동을 전개합시다.
7. 미국의 일방주의적 침공에 대한 항의로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을 사먹지 맙시다.
참석자들은 '비상국민회의'를 통해 각계 각층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전평화운동의 현황과 향후 계획 등을 토의하고 의견을 수렴한 끝에 반전평화운동에 모든 국민이 함께 나설 것을 호소하면서 7개항의 국민행동지침을 담은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이들은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국회의 파병동의안 가결을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한 후, "우리 모두를 전쟁범죄에 가담시키는 파병결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세계에 반전의 불길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속에서 한국의 시민들 또한 반전평화의 뜨거운 외침으로, 전쟁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음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진단한 후, 행동하는 전세계 시민과 함께 "거리에서, 직장에서, 생활공간에서, 인터넷에서 '전쟁중단'을 소리 높여 외치고, 종교인은 교회와 사찰에서, 문화예술인은 무대와 대중 속에서, 학생은 교정에서, 교사와 학자는 강단에서 '평화'를 얘기함으로써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낼 자격이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줄 것"을 호소했다.

▲ '비상국민회의'가 끝난 후 미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장면
ⓒ 김학규
이들은 비상시국회의가 끝난 뒤 미대사관까지 행진을 벌였다.

전날 국회에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통과되었음에도 종교, 여성, 학계, 법조계를 비롯 각계 각층의 원로와 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비상국민회의'를 규모있게 성사시키고 실천성을 담보한 '대국민호소문'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적극 수렴하고 나아갈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국민적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각계 각층의 원로와 지도급 인사들이 나서 새로운 국민운동을 제안할 수 있으며, 이번의 '비상국민회의'가 바로 그 단초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비상국민회의'에 참석한 분들이 하나같이 정부와 국회의 파병방침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과 유감을 표명하면서 지속적이고도 광범위한 반전평화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합의했다는 점에서 국회의 파병동의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반전평화운동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특히 이날의 '비상국민회의'에는 정철범 성공회대 주교, 인명진 목사(KNCC 교사위원회 위원장)를 비롯, 그 동안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거리를 두고 있던 인사들이 상당수 참석하는 등 참여폭이 상당히 넓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반전평화운동 폭이 훨씬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이다.

▲ 연대사를 하고 있는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리카르도 나바로 국제본부 의장.
ⓒ 김학규
이날의 '비상국민회의'에는 국제적인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리카르도 나바로 국제본부 의장이 직접 참석,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군수산업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난하고, 한국군 파병에 대해서도 "우리들의 평화염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라고 지적하는 연대사를 해서 눈길을 끌었다.

한편 '비상국민회의'를 준비한 최열(환경연합 공동대표), 손호철(민교협 공동대표), 정현백(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씨 등은 지난 3월 31일부터 명동성당에 '반전평화캠프'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오는 4월 12일에 있을 '지구적 시민행동의 날'에 온 국민이 나서서 반전평화운동을 대대적으로 나설 것을 호소하고 확산하는 다양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전쟁중단을 위한 국민적 행동에 나섭시다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지금 전 세계는 참혹하고도 추악한 전쟁의 한 가운데서 반전과 평화를 향한 외침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첨단의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를 향해 퍼부어지고 있으며, 무고한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의 처참한 죽음과 절규는 우리 모두를 분노와 비탄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라크가 대량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명분 없는 전쟁을 강요하는 미국의 추악한 의도에 전 세계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엄청난 폭격과 공격으로 파괴되고 있는 이라크가 아니라 석유확보와 무기소비를 통해 경제위기를 타개하려는 파렴치한 초강대국 미국의 이기심입니다.

이처럼 침략적이고 불법적인 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정의와 평화, 양심의 목소리가 부도덕한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지금 떨쳐 일어서고 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 시민들과 함께 전쟁 당사국인 미국 내에서도 전쟁을 반대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드높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불법침략을 중단하라. 석유를 위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마라."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으며 , 또 전쟁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지구촌의 마지막 분단국가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세계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핵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어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제 국회는 이라크 전에 대한 파병 동의 안을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전세계 평화세력의 연대를 호소해도 모자랄 우리나라가 소수의 전쟁세력 대열에 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세계 대다수 나라가 초강대국 미국의 압력을 무릅쓰고 반전의 대열에 섰지만 한국정부는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추악한 전쟁을 위한 파병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최소한의 인도적인 기준마저 지키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열한 전쟁을 지원하는 부도덕한 나라의 국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정부와 국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도와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평화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힘의 논리와 선제공격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할 때 가장 먼저 전쟁의 위기에 내몰릴 곳은 다름 아닌 한반도입니다.

촉구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우리 모두를 전쟁범죄에 가담시키는 파병결의를 철회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들딸을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보내기에 앞 서 이라크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선한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현재 세계 각국의 평화세력은 유엔헌장 377조 평화조항에 입각하여 불법적인 전쟁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유엔긴급총회 소집을 각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도 유엔긴급총회 소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길만이 전쟁중단과 평화를 위한 흐름에서 고립되어 추악한 전쟁의 파병국가로 낙인찍힌 채 국제사회의 외톨이로 전락하지 않을 유일한 길임을 밝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전세계에 반전의 불길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속에서 한국의 시민들 또한 반전평화의 뜨거운 외침으로 전쟁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음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가 소중한 만큼 이라크의 평화도 소중합니다. 우리가 지구촌에서 부도덕한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적 수단을 찾기 위한 전지구적 연대의 길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협력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파병을 결정한 이 마당에 한국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책무는 더더욱 큽니다.

이제 이라크에서 죽어 가는 병사와 민간인들을 위해 촛불을 피워 올립시다. 행동하는 전세계 시민과 함께 우리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나섭시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생활공간에서, 인터넷에서 '전쟁중단'을 소리 높여 외칩시다. 종교인은 교회와 사찰에서, 문화예술인은 무대와 대중 속에서, 학생은 교정에서, 교사와 학자는 강단에서 '평화'를 얘기합시다. 야만에 맞서 문명을, 탐욕에 맞서 양심을, 패권에 맞서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 떨쳐나섭시다.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낼 자격이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줍시다.

2003년 4월 3일 반전평화 비상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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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2022)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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