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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LA>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촛불 파도타기의 물결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 미대륙의 서쪽 끝 LA 까지 이어졌다. 이날 LA 지역의 촛불시위는 정각 12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저녁 6시 반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날따라 유난했던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시위장소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마다엔 단단한 결의가 넘치고 있었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한 아리랑에도 민족 자주의 염원을 담은 우리의 소원 노래에도 이전에 가끔씩 느껴지던 처량함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 LA 지역에서 준비한 촛불
ⓒ 박우성
한 시간가량 진행된 시위도중 바람이 점점 세게 불기 시작해서 촛불도 자꾸 꺼지고 사람들이 많이 추위를 타기 시작하자 대형 영정사진을 들고 있던 한인 2세 김한진(21)군이 메가폰을 들고 나섰다.

"Revise SOFA now!" "Apologize Bush now!" 사람들이 힘차게 따라하자 구호에는 힘이 붙기 시작했다.

"What do we want?" "Justice!" "When do we want it?" "Now!" 시위대는 장단을 맞추어 구호를 외치면서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손에든 촛불을 흔들었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건 내용이 소개된 유인물을 돌리며 용감하게 외치는 이들의 구호는 세밑의 밤거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 대형 영정사진 앞을 걷는 촛불시위대
ⓒ 박우성
조금전에 지나간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시위대를 향해서 뭐라고 욕을 해댄것에 화가난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아니요.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저는 잘 못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2세니까 이 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알아요. 저같은 또다른 2세랑 앞으로의 제 자식들을 위해서 나서는 겁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에 대한 것도 얘기했다.

"저는 한국과 미국을 모두 아니까 제가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던 친구들도 다 받아들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부끄럽게도 생각하지요. 나쁘게 대하는 사람이요? 물론 많습니다. 포스터를 붙여놓으면 찢어버리고 욕을 써놓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낼것이라고 말했다. "제 뿌리는 한국이니까요."

▲ 날씨가 차갑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 박우성
한인타운에 거주한다는 유민이 할머니는 자신이 직접 갓 돌이 지난 손자를 들쳐업고 딸을 데려왔다고 말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야 걸어서 왔지! 손자가 추울까봐 이렇게 단단히 동여메고 나왔어요." 촛불시위 소식은 당일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반미가 걱정된다고 하는 말이요? 우리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이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데."

뉴스와 신문을 통해 많이 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유민이 할머니는 진열되어 있는 사진들을 꼼꼼히 보면서 연신 혀를 차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 유민이를 업고서 진열된 사진을 보는 할머니
ⓒ 박우성
거리에는 함께 모여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기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렇게 작은 목소리가 과연 부시를 움직일 수 있을까요?" 노령의 몸을 이끌고 촛불시위에 참여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에스더 치코니(Esther Cicconi, 83세)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 당신 눈에는 이 사람들이 점점 자라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월남전쟁도 바로 이렇게 시작한 우리가 끝냈다!" 그녀는 그녀 곁에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마다의 손을 잡아끌어서 행렬에 뒤처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 한인타운에서만 10년이 넘게 살고 있다는 에스더 치코니 할머니
ⓒ 박우성
오늘 LA 지역의 시위에서 눈길을 끈것은 한인이 아닌 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백악관 항의 방문 투쟁단이 함께 했던 1차 촛불시위 때 참여했던 IAC(International Action Center) 회원들 뿐만이 아니라 지역 인권 활동가들과 복지 운동가들은 물론이고 트로츠키스트를 자처하는 ICL(International Communist League) 회원들까지 등장, 자신들을 홍보하는 신문을 판매하며 촛불시위에 합류했다.

게다가 거리를 지나던 일반 미국인들까지 합세해 스스로 피켓을 들고 시위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한국의 촛불시위가 세계와 연대해서 반전평화시위의 중심으로 나아가자는 전망에 대한 훌륭한 방향제시로 삼을 만한 것이었다.

▲ 이날 시위에는 한인이 아닌 미국인들도 많이 참여했다
ⓒ 박우성
광화문에서의 촛불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LA에서도 시민 발언대가 마련됐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가 자신의 얘기를 하던 발언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지금 이 찬바람은 못된 부시때문에 부는 바람" 이라고 말해 사람들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선 미국이 제대로 된 길을 가게 해야된다는 의견과 추모시위를 반전평화시위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시위에 참여한 LA 지역의 동포들은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보통인 이날을 더욱 뜻깊게 보냈다는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한 이 외국인들을 보십시오. 우리의 시위는 더이상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추모의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효순이 미선이에게 떳떳할 수 있으려면 미국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이키는 그날까지 세계의 모든 양심인들과 함께 이 싸움을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 즉석에서 마련된 시민발언대를 주목하고 있는 LA 동포들
ⓒ 박우성
촛불시위를 정리하고 시민발언대까지 이끌며 사회를 본 김하림씨는 1월 11일에 다운타운에서 있을 반전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한인들의 참여를 부탁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시위를 끝낸 한인들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한국에서의 31일 시위에 대한 소식을 묻고 앞으로의 촛불시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면서 주변을 정리했다.

이날 시위 이후로 LA 지역에서의 촛불시위는 아직 예정되어 있는 것이 없다.

▲ LA 지역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 박우성
▲ LA 지역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 박우성
▲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타오르는 촛불
ⓒ 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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