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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로부터 금지 통고된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 및 특별법 촉구대회
ⓒ 심규상
7일 오후 2시 대전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암매장지. 8일 열리는 세 번째 희생자 위령제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유가족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고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관할 경찰서에 제출한 '위령제 및 민간인 학살 특별법 제정 결의대회' 집회신고서가 불허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송영길(산내학살 희생자 대전 유가족 모임회장)씨 손에는 대전중부경찰서장의 직인이 찍힌 '집회금지통지서'가 들려 있었다.

금지 사유는 땅 주인의 토지사용동의서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것. 유가족들은 불허 사유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들이다. 하나같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지 않는 사이 송씨가 "내 아버지 무덤 앞에 제사 지낸다는데 토지사용 허가서라니..."하며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지난 해말, 관할 구청은 이곳 암매장지 한복판에 토지주에게 건축허가를 내줘 건축공사가 시작됐고 유가족들은 이를 막느랴 구청과 건축주를 오가며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로 '공사중지' 결정을 끌어내기는 했지만 이때문에 자연 건축주(토지주)와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유가족들은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관할 경찰서에 집회 보호요청과 함께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게 된 것.

그러나 관할 경찰서는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자 "위령제 등 집회가 열리는 장소는 사유지이고 토지주가 다른 사람의 사용을 배척하고 있어 행사 강행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며 "토지주의 사용동의서를 첨부하라"는 조건을 내붙였다. 이어 경찰은 동의서를 첨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유가족측에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유가족 중 한 사람인 이종익씨는 "위령제를 놓고 토지주와 마찰을 벌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집회신고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토지주가 위령제 장소로 사용을 배척하고 있는 줄 알면서 토지주의 사용동의서를 받아오라는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붙여 불허할 수 있는 것이냐"며 경찰의 처사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관할 경찰은 "토지주의 사용동의서가 없어 행사를 불허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경찰력을 동원해 행사를 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령제 행사를 돕고 있는 대전참여자치연대 장재완 간사는 "학살터를 찾아 제사를 지내는 의식적인 행사를 법 조항에도 없는 토지주의 사용동의서 제출을 요구해 불허한 것은 행사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유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률(집시법 제 5조)에는 집회 및 시위의 금지와 관련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에 한하고 있다.

반면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가 방해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관할 경찰서에 그 사실을 통고하여 보호를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관할경찰서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 보호요청을 거절하여서는 안된다'(집시법 제 3조)고 규정하고 있다.

1950년 7월. 이곳 골령골에서는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등 당시 전국각지에 수감돼 있던 수감자들이 무차별 학살된 후 암매장됐는데 그 수만도 7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위령제가 열리는 장소는 가장 많은 유골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학살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고 주변 곳곳에서 발굴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 천여 점의 유골이 임시 안장돼 있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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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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