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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지난 20일 평화네트워크가 입수, 오마이뉴스가 최초로 보도한 '한미연합사 MD 기구 창설'은 정부가 그동안 국민들을 속인 것을 밝힌,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관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고, 대미 종속관계의 심화, 국민들의 세부담 가중, 안보의 불안 등을 가져올 수 있는 MD 참여 문제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면서 추진할 사안이 아닙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평화네트워크와 함께 한국의 MD 참여 의혹을 밝혀내고, 바람직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이 MD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정부당국에서 확인해 준다면, 국민의 정부가 공들여 이뤄놓은 대북정책은 사실상 끝장나지 않겠느냐?"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한미연합전력 차원에서 MD 기구를 만든 것이 확인되고, PAC-3 도입을 비롯한 무기도입 사업이 이 계획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군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그는 이어 "정부는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한국의 MD 참여 여부는 확인도, 부인도 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어떤 사안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안하는 것(NCND)은 사실상의 '확인'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방부도 한국의 MD 참여를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국제관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공식적인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MD 참여문제는 군사전략상으로는 참여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최대한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잘 알려져 있듯이 김대중 정부는 적극적인 남북화해협력을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을 완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기반을 만드는 것을 최고의 국정 목표의 하나로 내세워 왔다. 또한 현 정부의 다른 정책에 비해 이러한 대북정책 방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현 정부가 대북정책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고 클린턴 행정부때 견지해온 'TMD 불참, NMD 중립' 입장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왜 비밀리에 번복하고 있느냐'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절망'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2001년 3월 초순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전에 현 정부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구상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TMD에 참여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듭 뿌리친 바 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1월 6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NMD에 대한 입장 표명을 피하면서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중재 의사를 강력히 밝힌 바 있고, 이정빈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NMD 추진에 앞서 원인제거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해 우회적으로 NMD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은 NMD 반대 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미국 방문 직전에 가진 한러정상회담에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의 보존과 강화를 지지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러한 ABM 조약 지지 입장을 비롯한 김대중 정부의 MD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MD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말았다.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자 김대중 정부는 미국 방문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에 사실상의 사과를 했다.

이정빈 당시 장관은 "한국 입장은 NMD 반대가 아니다"라고 표명했고, 김하중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을 만나 2차 해명 및 유감표명을 했으며, 김 대통령 역시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러 정상회담 이후 NMD 체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러공동성명에 ABM 조약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공조를 논의하고자 방문했던 미국길이 'MD 괘씸죄'로 홍역을 치르고 돌아오는 가시밭길이 되고 만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이 표현했듯이 미국에서 '뺨맞고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안보팀은 물론 MD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온 민주당 의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반면에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전후해 부시 행정부의 압력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MD와 한미공조의 충돌, 그리고 부시의 DJ 무시

ABM 조약 파동이 불거지자 부시 행정부는 이를 빌미로 김대중 정부에게 MD 지지 및 참여에 대한 압력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토켈 패터슨 미 국가안보회의 선임 보좌관은 주미 한국 대사관 유명환 공사를 만나 한국이 MD를 지지하고 참여하면 3월 8일 한미정상회담이 더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압력을 행사했다. 부시 행정부의 오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정부의 MD에 대한 공식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히라고 요구안까지 전달한 것이다.

미국측 요구 문안 전문

오늘날의 세계는 냉전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억제와 방어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와 운반 수단으로서의 미사일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으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는 이런 반응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미국이 이 점에 대해 합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며, 특히 우리 군과 영토 방위를 위해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

이 미국측 문안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미국 방문 직전인 2001년 3월 2일 3문장으로 정리해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은 거의 받아쓰기에 가깝도록 미국의 요구안을 따라썼다. 그러나 세 번째 문장은 "미사일 방어망 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는 미국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는 미국 정부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 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썼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 김대중 정부가 미국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때 철저히 '푸대접'으로 보복한 것이다.

첫 번째 DJ-부시 회담은 한미대북정책 공조와 군사동맹관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참여해달라는 김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하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MD에 대해 한국 정부에 괘씸죄를 적용한 측면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북미관계가 풀릴 경우 MD 구상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국이 제공하는 대북군사정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군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군사정보 제공은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국가정보원과 CIA와의 협력도 눈에 뛰게 줄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에게 대북군사정보를 주지 않는 대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은 한편으로는 MD를 비롯한 대북강경정책을 합리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부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김대중 정부는 사실상 부시 행정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구조로 빠져들고, 특히 한국 정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MD에 편입되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스스로도 MD 참여 문제는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군관계자들이 "미국이 기어코 MD를 한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체념섞인 승복을 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햇볕정책의 앞날은?

부시 행정부의 MD 참여 압력과 대북포용정책의 지속 사이에서 김대중 정부는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작년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그래도 우리 당은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은 없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당은 큰 일을 한 것이다"고 말할 정도로, 김대중 정부 스스로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북포용정책의 성과는 한국의 MD 참여로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인가?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서서히 비밀의 장막이 거둬지고 있는 MD 참여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MD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국회의원들을 입단속하고, 국방부는 철저하게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게 하며, SAM-X와 KDX-Ⅲ 등 MD 관련 사업에 대해 'MD'란 단어는 입밖에도 내지 않고 있다. 자신의 임기동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문제를 덮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덮는다고 덮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부시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MD 참여 압력을 행사해 온 것과 MD 기구가 만들어진 것이 확인됐고, 대형무기도입 사업이 MD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정치적인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예상외로 언론이 한국의 MD 참여 문제에 대해 무관심을 보이고 있고, 정부당국도 쉬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반응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이 아직 모를 수도 있고, 사안이 대단히 민감한 만큼 반응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이 공식적으로 반응을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한국의 MD 참여는 남북관계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이것은 6차 남북장관급회담 결렬 이유로 북한이 내세운 남한의 비상경계조치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이 될 것이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사실 부시 행정부가 MD 추진을 위해 북한위협론에 매달려 북미관계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특히 '테러와의 전쟁' 국면이 조성되면서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한국의 MD 참여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신을 넘어 한미일의 대북압박전략이 완성되는 것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미일동맹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MD 구상을 외교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이 대화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인식해왔고, 군사적으로는 대미, 대일 억지력인 미사일 전력이 무력화되는 것으로 해석해왔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MD에 맞서 미사일 재개발을 비롯한 자위적인 수단의 강화를 경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북한이 '믿었던' 김대중 정부가 그동안 정치적인 선언과는 정반대로 사실상 MD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석할 때, 그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한국의 MD 불참은 사실상 대북포용정책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대 남한 정부를 친미괴뢰정부라고 비난해왔던 북한이 빗장을 풀고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는, 김대중 정부가 MD에 대해 자주적인 노선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배경 역시, MD로 상징되는 미국의 과도한 군사적 패권주의를 견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미사일문제를 비롯한 한반도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릴 경우, 미국의 MD 구상은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도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MD 참여는 김대중 정부가 대북정책의 중요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를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MD가 현 정부 스스로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북정책을 요격시킬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1년 정도의 임기를 남겨둔 김대중 정부는 가까스로 이 상황을 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1년후면 PAC-3가 오산 미공군 기지에 배치되는 것을 비롯해 차례로 MD 관련 무기체계가 한반도와 그 인근에 배치된다. 1994년 한반도 위기 당시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고 이에 대해 북한이 강력 반발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훨씬 강력해진 MD 무기가 배치될 때 북한의 반응 및 한반도의 위기 고조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갈수록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그 평가 또한 인색해지면서, '역사가 자신의 업적을 알아 줄 것'으로 믿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MD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은, 역사도 결코 현 정부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글 : 부시의 MD와 지하시설 파괴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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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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