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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이 지급되기까지의 과정

교육인적자원부는 추석을 전후로 해서 미루어왔던 성과급을 지급하였다. 그 동안 논란이 뜨거웠던 성과급, 교육부에서도 나름대로 교사들의 의견을 참고하느라 3월에 지급되었어야 할 성과급을 9월말에서야 지급하게 되었다.

그 동안 전교조 한교조 한교총 등 세 개의 단체가 모두 성과급 지급에 반대함으로 해서 교육부는 그 동안 성과급 지급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총의 태도돌변으로 인해서 교육부는 대다수의 교사들이 반대하는 성과급의 지급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조금이라도 교사들이 열심히 교육을 하라고 지급하는 성과급에 대해서 교사들이 거세게 반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교사들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교장실이 아닌 교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과급의 지급기준이 교장실이 되고 보면 학교의 중심이 교실이 아닌 교장실로 이동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들이 오히려 푸대접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둘째, 실적이 뚜렷한 대기업과 달리 교직사회는 그 성과가 불분명하다. 교육은 현재보다 미래지향적인 것이고, 그것은 단순한 학업의 성취를 넘어선 학생과의 생활이다. 교장실이 교육의 중심이 아닌 것처럼 학생과의 공동생활이 학업성취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셋째, 교육의 주된 동력원은 교육애이다. 교육은 감정의 교류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교사들은 크든 작든 제자들에 대해서 혈연과 같은 애정을 갖게 마련이다. 자기 제자가 잘됐다는데 싫어할 교사는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잘됐다고 했을 때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은 부모와 교사라고 하지 않는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누가 성과급을 줘서 그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다.

넷째, 교육철학은 사람마다 다르고 잘 가르친 게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도 각기 다르다. 교장은 청소를 잘 시키고 게시물을 잔뜩 늘어놓는 사람이 가장 잘 가르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아동에게 관대한 태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를 열심히 시키고 학생들에게 엄격하게 기본질서를 교육하는 사람이 관대한 태도를 가르치는 교사보다 못한 교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느 교사가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옆 반에 있는 교사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교사가 하는 어떤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가 어렵다.

결국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교육활동에 대한 평가의 잣대를 교육인적자원부마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공정한 잣대도 마련하지 못한 처지에 교육부가 성과급을 강행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책임을 방치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불만 속에 잠겨 있는 12만 교사들

이와 같이 잣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성과급을 강행하였다. 상위 30%와 중위 40%는 별다른 불만을 가질리 없다. 물론 상위 30%를 받은 사람들을 파악하게 된다면 분노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주로 하위 30%를 받은 교사들에게 있다.

그들의 기분은 영 말이 아니다. 그들의 기분이란 것은 내가 덜 가르쳤으므로 앞으로 더 열심히 가르쳐야지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장하고 눈도장을 더 찍지 않아서, 뭔가 오해를 사서, 내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서, 교장이 날 우습게 보아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받아들일 만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반응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은 개개인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빼앗아간다.

이번에 하위 30%를 받은 김모(40세) 교사는 누구보다 열정이 많은 분으로, 학교 일과 동학년 일을 매우 열심히 하였는데 자신이 하위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 자신이 열심히 했는데도 아동을 잘못 가르쳤다면 교직을 뜨고 싶다고 말한다. 나름대로의 열정과 사랑을 쏟았는데 자신의 교육활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은 남다르다. 이것은 교육의욕 및 교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사건이고, 자신이 열심히 가르치는 만큼 교장에 대해 증오를 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번에 하위급을 받은 교사는 30%이다. 교육부는 나름대로 교육의 특수성을 인정해 전원지급을 하고, 차등의 폭을 줄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돈 액수의 문제가 아니고, 자신의 교육활동이 평가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30%의 교사들 전국적으로 12만 명에 해당되는 교사들이 지금 얼토당토 않는 기준에 의해서 자신의 교육활동이 낙제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은 심각한 사기의 저하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게 더 잘 가르치려는 의지를 불러 일으키자면, 교장의 판단기준이 옳은데 내가 잘못 가르쳤다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교사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120만 명의 교사들이 사기침체와 냉소를 하는데서 가져오는 교육손실은 매우 엄청나게 큰 것이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이다.

교사들의 교수법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

문화적 식민 상태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무조건 자국의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좋지 못한 습성이 있다. 그러한 자기 비하 의식은 현시대에도 강하게 남아 있으며, 지금 김대중 정부에 있어서 온갖 개혁들이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개혁들이란 게 조금씩 진보되는 게 아니고 과욕과 서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들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이 일본이나 미국만 못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도 국제적으로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그러한 상황에서 교육이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간다는 것은 과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무능한 교사들을 보다 못한 그들은 정년을 단축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예퇴임을 통해서 50대 교사들을 모두 강제로 퇴출시켰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명예퇴임 때 잘 가르치시는 분들이 모두 나갔다는 말들이 분분하다.

결국 교사들의 수준이 안돼서 내쫓았는데 그들은 대체할 교사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오히려 교육경험이 부족하고 전공과목이 다른 졸속교사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교육이 미국 교육을 쫓아가려면 미국 교사들만큼 문화적 역량을 갖춘 교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교사는 몇 되지 않는다. 문화적 역량 자체가 부족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인간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자신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다. 더군다나 실력도 없는 사람을 교단에 들여놔도 막무가내 열심히 가르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것 역시 하나의 환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과급은 도저히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진정으로 교육에 대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인정을 받도록 하고, 교사들의 수업기술이나 소양교육, 그리고 교육의 가장 근간이 되는 리더쉽을 연마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수를 실시한다면, 교육의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질적으로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일어나리라고 생각된다. 성과급이 아니라도 교사의 질을 질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적어도 기준도 없는 성과급을 통해 질적인 변화를 담보해내기란 어렵다.

문제는 교사들의 교수능력을 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히 낮은 등급을 주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보다 토론학습을 하는 기술이라든가, 혹은 미술과 회화지도를 하는 기술을 할 수 있는 연수를 제공함으로써 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고 인간적이다.

예를 들어 초등교사들이 5년마다 의무적으로 듣게 되는 자연과 연수같은 것을 예를 들어보자. 똑같은 내용을 5년마다 들을 필요가 없다. 처음 발령받아 한두 차례는 배울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교사들의 요구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가 덜 민주화가 됨으로해서 일어나는 교육의 질적저하이다.

자연과 실험연수 같은 것을 한두 차례 실시한 후에는 10년마다 받게 하고 그 사이에 다양한 재교육 의무연수과정을 두어 선택을 해서 듣도록 하는 그런 방식이 교육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교사들이 자연과 실험연수만 그렇게 5년마다 받아야 할 의무는 없다. 찾아보면 교사들의 질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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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간에서 3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4차원적 사고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차원 공간 속에서 4차원적인 문제발견력과 문제해결력으로 수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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