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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주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되는' 콩나물 국밥집을 소개한다. '전주에서 제일 맛있는' 이라고 말하면 전주의 무수한 콩나물 국밥집에서 항의가 쏟아질테니 '전주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되는'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로 한다. 그러나 뭐라고 교묘하게 말장난을 치든간에, 나는 이 집을 능가할 콩나물 국밥집이 전국에서도 많지 않으리라 내심 확신한다.

내가 이 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날은 덥고 길은 뜨거웠다. 아무 데나 눈만 돌려도 콩나물 국밥집 간판은 많은데 이 집을 소개해준 친구는 "거기가 제일 맛있는 집"이라며 꾸준히 걸어가고 있었다.

전주 남부시장까지 왔을 때였다. "끝내주게 해줄팅게 여기 오쇼잉." 이제는 콩나물 국밥집뿐 아니라 순대 국밥집까지 여기저기서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친구는 쉽게 이 집을 찾지 못했다. 간판도 제대로 없고 안내표시도 없다. 마침내 혼자 길찾기를 포기한 이 친구는 "현대옥 어디 있는지 아세요?"라고 시장 사람들에게 물었다. "으응, 저기 고무 다라이 쌓인 집 옆에 골목으로 쭉 들어가소." 놀랍게도 이 집의 위치를 모르는 시장상인들이 없었다.

현대옥의 첫인상은 황당했다. 카운터 역할을 하는 길고 좁은 주방이 있고, 그 앞에는 양철로 보이는 일렬 테이블이 있어 손님들이 한 줄로 앉아 있다. 모두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몰두해서 콩나물 국밥을 먹고 있다. 서너 명 정도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십오분 정도 기다려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국물이 흥건했다. 아주머니 두 분이 한편으로는 콩나물을 삶고 한편으로는 테이블을 닦고 계셨다. 저 행주 잡은 손을 국물을 푸기 전에 제대로 씼었을까? 제가 맛있어봐야 콩나물 국밥인데, 콩나물 국밥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으려나? 불안한 마음으로 내 몫의 국밥을 기다렸다.

드디어 국밥이 나왔다. 어디 한 번, 하는 마음으로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아니, 이건 만만한 국물이 아니었다.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나 '호소력 있는' 맛이었다. 이런 맛을 전라도 말로 "개미가 있다"고 말한다. 국물의 간이 너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았다.

음식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지만 간을 세게 맞춘 음식은 맛을 속이기 쉽다. 간을 좀 강하게 하면, 즉 짭짤하거나 달큰하거나 매콤하게 만들면, 좀 못만들어도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간을 심심하게 맞추면서 맛을 내기란 어렵다. 절집 음식이 그래서 쉬운 듯 어려운 것이다.

혹 맛을 좀 훔쳐갈 수 있을까 하여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주방 한쪽에는 국물 다시만 내는 커다란 솥이 있고 한쪽에는 콩나물만 삶는 것으로 보이는 그보다 작은 솥이 있다. 큰 솥이나 작은 솥이나 불을 무척 괄하게 지핀다. 보통 가정집 가스레인지 화력보다 훨씬 센 불이다.

한쪽 구석 양은 대야에는 밥을 담아놓았는데 밥은 플라스틱 접시로 긁어내듯 퍼서 국밥그릇 아래에 깐다. 그 위에 삶아낸 콩나물을 얹고 국물을 붓는다. 국물을 부을 때는 그냥 얌전히 웃물을 떠내서 국밥 그릇 안에 붓는 것이 아니고 마치 콩나물을 목욕시키듯이 여러번 붓고 따라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개의 국물이 그렇듯이 이 집 다시에도 멸치가 들어간다. 그러나 이 집 국물의 비법은 물오징어에 있는 듯했다. 다시 내는 솥에는 물오징어를 몇 마리씩 넣는다. 그리고 바닥에는 굵은 멸치가 들어 있는 듯했다. 물오징어는 다시 솥에 계속 넣어놓는 것이 아니고 한 마리씩 건져놓는다. 그러니 아마 국솥에 물오징어를 보충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꺼낸 물오징어는 길이 0.7cm 정도로 잘라서 뚝배기에 수북이 담아낸다.

하지만 현대옥 다시에 물오징어와 멸치 말고 무엇무엇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다시는 이 정도로 하고, 콩나물은 굉장히 센 불에 끓어넘을 정도로 삶아내는 것으로 보았다. 콩나물이 다 삶아지면 이 끓는 솥에 작은 밥그릇들을 띄운다. 그 밥그릇 안에는 소란(小卵) 정도 크기의 작은 달걀을 두 개 넣는다. 이것이 수란(水卵)이다.

직접 열을 가하여 달걀을 익히는 것이 아니고, 중탕으로 익혀서 달걀의 부드러운 맛을 살린 음식이다. 대개 국밥이 나오기 전에 수란이 먼저 나온다. 그러면 고픈 속을 일단 달래기 위해서 수란을 한 개 먹고, 국밥이 나오면 국물에 수란을 붓거나 해서 먹는다.

만화 <맛의 달인>에 보면 주인공 지로가 달걀 덮밥을 가지고 대단한 것처럼 소개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겨우 따뜻한 밥에 날달걀을 얹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먹는 것인데 이 만화에서는 마치 대단한 맛인 양 <국제 달걀프라이 협회>에 보고하겠다고 호들갑이다.

현대옥에서 내는 수란은 기름을 전혀 쓰지 않아 위장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중간 정도로만 익혀져 있기 때문에 노른자의 끈적하고 진한 맛과 흰자의 미끌미끌한 감촉을 즐길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수란에 현대옥의 국물을 부어 먹으면 감칠맛이 두 배로 살아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달걀의 맛이라고 호들갑을 떨어야 옳을 것이다.

국물 위에 들어가는 양념은 '안맵게' '보통' '맵게' 가 있다. 국밥을 내기 전에 "맵게?"하고 아주머니가 물어보신다. '보통'으로 시킨 사람은 마늘 세 쪽 다진 것, 대파 채썬 것 한 움큼, 풋고추 반쪽을 콩나물 국밥에 넣어준다.

'맵게'로 시킨 사람은 위에 말한 분량에서 1/2을 더해 준다. 마늘은 말라 삐들어진 것이 아니라 물기를 잘 머금은 통통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마늘을 다질 때는 칼등이 아니라 칼을 눕혀서 다진다. 마늘이 싱싱하고 물기가 많은 것이어야지 이렇게 다질 수가 있다. 칼등이나 칼 자루가 아니라 칼의 평평한 부분으로 마치 깎아치듯이 마늘을 다지는 것이다. 이 양념이 자칫 텁텁할 수 있는 국물에 짜릿한 생기를 준다.

양념과 함께 이 집 콩나물 국밥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김이다. 김을 부숴서 콩나물과 섞어 먹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밑반찬으로는 곰삭은 총각김치와 깻잎조림이 나온다. 국물의 간이 강하지 않은 만큼 짠 맛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밑반찬을 국물에 넣어 먹으면 된다.

수란, 물오징어, 콩나물 국밥, 밑반찬.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은 삼천원이다. 물오징어는 뜨내기 손님에게는 추가로 돈을 받고, 단골에게는 공짜로 준다. 이집 아주머니들은 음식을 남기는 것을 싫어해서 국밥을 남기면 삼천오백원을 받는다.

들어오는 입구에도 "많이 먹는 것은 미덕이지만, 남기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남기면 돈 더 받습니다. 현대옥 드림"이라고 써 있다. 특이하게도 새벽에 영업을 시작해서 오후 한 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오후 한 시에 문을 닫아도 손님이 끊기지 않는다니 대단한 손님들이고, 대단한 아주머님들이다.

언젠가 전주에 오실 일이 있다면 한 번 들를만한 집이다. 단, 오후 한 시 이전에 도착하도록 서두를 일이요, 가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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