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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날, 벌써 134년에 이른 노동절,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한다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어떤 노동자는 ‘노동자’라고 불리지도 못한다. 저임금의 노동자는 초저임금을 강요받고, 그리고 또 어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했다고 받은 모욕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노동을 대하고 있나. 이 연재는 민주노총이 전하는 우리 사회 곳곳의 노동자들의 ‘일’ 이야기다. 우리의 일, 우리 일상의 이야기. [기자말]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고 양회동 강원지부 지대장의 빈소가 2023년 5월 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고 양회동 강원지부 지대장의 빈소가 2023년 5월 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 권우성

지난해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의 사흘은 동생의 51년 삶에서 가장 고뇌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동생 양회동은 1973년 3월 5일 이 세상에 축복받고 태어났다. 하지만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품에 제대로 안겨보지 못하고 생후 백일도 맞지 못해 이별해야 했다. 서른아홉에 일곱 아들딸의 가장이 된 어머니, 오로지 자식만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가난해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동생은 2015년부터 건설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가난해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살아온 동생은 여전히 없이 살아도 남에게 손가락질받는 일은 하지 않았다. 구차하고 비굴하게 살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 했다.

2023년 5월 1일은 앞으로도 내 삶에서 가장 아픈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날 동생을 잃었다. 동생은 건설노동자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건설노동자로서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 했다. 소박한 꿈이었다. 건설노동자를 '건설 폭력배'라 낙인찍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는 윤석열 정권의 노동 탄압이 소박한 꿈으로 살아가던 동생을 죽게 했다.

일부 언론은 정권의 충복인 듯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경찰은 특진까지 내걸고 건설 노동자들을 폭력배로 몰아갔다. 거짓말로 얼룩진 강압 수사가 전국으로 퍼져갔다. 동생이 일하던 강원도 건설 현장, 건설노조 강원지부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탄압이 날로 심해질 때 동생과 통화한 적이 있다. 동생은 "별일 아닙니다,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찮을 겁니다"라고 했다. 정말 괜찮았을 리 없다. 동생은 유서에 적었듯 없는 죄까지 뒤집어쓰고 강요와 협박 같은 파렴치한 누명을 수치스러워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건설사 관계자들도 건설노조와 별다른 마찰 없이 교섭을 통해 인력수급을 논의하였고, 오히려 노조 덕분에 현장 공사를 원만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인력 투입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집회를 한 사실은 있으나, 그로 인해 겁을 먹거나 업무에 방해된 사실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런 사실을 모른척했다. 특진이 걸렸기 때문일까? 죄가 없는데도 승진에 눈이 멀어 소박하고 평범한 건설 노동자를 협박범으로 몰아가 결국 죽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 것인가? 아이들과 함께 오순도순 사는 게 꿈이던 동생은 수사를 받으면서 억울해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견디며 참았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함께 저지른 폭력
 
 2023년 6월 5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넨스센터 앞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간이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2023년 6월 5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넨스센터 앞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 간이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 이희훈

그러나 스물아홉 장에 달하는 구속영장 청구서를 보는 순간, 동생은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당장은 강압 수사에 엉뚱한 죄목의 누명이 억울했겠지만, 죄지은 것도 없고, 정당한 노조 활동을 했고, 공갈도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던 동생은 정말로 결국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강압 수사는 멈추지 않았고 세 차례의 소환 수사와 휴대폰 압수, 마침내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며 동생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동생을 죽게 한 저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이 나라 국민 중 범죄자 아닌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안전하게 일하겠다고,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겠다고,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국민이 범죄자라면 이 나라의 국민 전체가 범죄자인가?

동생의 죽음 이후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작년 5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에서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며 동생과 가족, 건설노동자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동생이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죽는 순간을 유포한 데 이어, 친구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동생 친구에겐 자살방조의 누명까지 씌웠다. 경찰과 일부 언론, 그리고 윤석열 정권이 함께 저지른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노조 탄압으로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모욕하고, 그의 친구들까지 모욕한 정권, 경찰, 언론은 동생의 죽음 이후 1년이 된 오늘까지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동생의 죽음이 무엇 때문인지 밝혀내려는 수사도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동생의 명예를 더럽힌 야만적인 행위에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다. 동생이 바라던 세상에 대한 꿈은 소박했다. 건설노동자가 폭력배라는 오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 일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를 짓밟는 노동 탄압이 없는 세상, 노동자 서민도 누구나 사람답게 사는 세상, 싸우지 않고 웃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것이 왜 소박하지 않은가. 너무나 당연한 세상인데 말이다.

동생은 유서에서 자기의 죽음이 무엇 때문인지 명확히 밝혔다. 윤석열 정권 때문이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노동의 가치 전체를 모욕하는 이 정권에선 우리 모두가 꿈꾸는 저 소박한 세상을 이룰 수 없다고 동생은 죽음으로 말했다.

다시 동생의 기일이다. 노동절에 몸에 불을 붙였던 동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지만, 떠난 동생을 기억하고 그를 계속 사랑하는 길은 그의 바람을 남은 이들이 이뤄내는 것이겠다. 내 동생 회동이 죽음의 고통마저 불사하며 만들고자 했던 세상이 꼭 이루어지길 염원한다.

#양회동#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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