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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부터 관심을 가진 기후변화 문제는 변호사가 된 후 관여한 첫 활동이 됐다. 국회 환노위 의원실 보좌관시절 환경과 에너지정책 담당으로 자연스레 중요 보고서와 좋은 컨텐츠를 접했다. 직·간접적으로 흡수한 많은 양의 정보는 문제의식을 상승시켰지만, 무기력해지게도 했다. 비건식단, 제로웨이스트 등의 행동을 보며 기후위기 대응으로서의 효과성에 대해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같은 맘으로 뭐라도 하는 열정적인 이들을 통해 '우리 어쩌면 괜찮으려나'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의 위안도 받는다.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는 미국 청소년 21명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 ‘줄리아나 대 미국 정부’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는 미국 청소년 21명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 ‘줄리아나 대 미국 정부’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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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게 된 건 기후위기에 대한 피로감이 큰 시니컬한 회원의 글감 찾기 시도였다. <청소년 v 정부: 기후 정의를 외치다>는 미국 청소년 21명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 '줄리아나 대 미국 정부'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소송 원고들은 미 정부가 화석연료 개발과 사용을 적극 지원, 세계의 기후위기를 영구화해, 자신들의 생존과 자유를 침해하고 미래를 위태롭게 한 책임을 물으며 기후위기를 중단시킬 계획을 요구한다. 이들은 천년에 한 번 일어난다는 홍수, 폭우에 수시로 노출되며, 꺼지지 않는 산불과 극심한 가뭄, 무분별한 벌목과 더 많은 화석연료 개발 등으로 일상과 삶터를 잃은 아이들이다.

청소년들은 왜 소송에 나섰나

영화는 여러 차례의 변론과 준비 과정, 법원의 결정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변호사들의 변론을 중심으로 소송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왜 원고들이 소송에 나섰는지와 이들의 요구를 상세히 전달하는 것이다. 원고들과 친구들이 변화를 요구하며 함께 외치고 춤추고 노래하고 말하고 손잡으며 부둥켜안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들은 이 시도가 단숨에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설령 실패해도 수많은 다른 소송과 행동의 주춧돌이 될 거라며, 자신들이 절대 개입할 수 없었던 선택이 초래한 결과의 책임을 그들의 언어로 끈질기게 요구한다. 인종차별 철폐, 낙태죄 폐지, 동성결혼을 둘러싼 역사와 변화의 과정을 되짚기도 하고 숲을 지켰던 부모세대의 투쟁을 오늘날의 분투와 연결한다.

이 소송의 담당 변호사들을 비롯해 연대자들의 면면도 소개된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공화제 역사에서 공공의 책무를 유기한 가장 큰 잘못이 라는 점을 증명하는 데에 그간 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했거나 관여하다가 배제된 관료, 학자, 과학자들의 도움이 이어진다. 자신은 정부 설득에 실패했지만 언젠가 쓸 날이 올 거라며 보관한 지하실 속 문서가 수십 년 만에 빛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연방정부가 기후변화의 실태와 위험성을 알면서도 화석연료 개발 적극 지원 정책을 취했다는 증거가 모인다.

유례없는 소송을 마주한 판사들의 다양한 판단도 볼 수 있다. 미 정부는 정부와 국회가 판단할 일을 법원이 명령하는 건 삼권분립을 침해할 수 있다며 본안 소송에서 각종 증거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모든 절차를 동원, 소송 진행을 중단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한 연방판사(Ann Aiken)는 정부의 소송 각하 요청을 기각하며 밝힌다.

"나의 '합리적 판단'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기후체계를 가질 권리가 자유롭고 질서 있는 사회의 근간이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소송은 피고가 우리의 지구 전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혀 생명과 자유에 관해 헌법에 규정된 원고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의미다. 안정적 기후체계는 그야말로 사회의 근간이며 그것이 없다면 문명도 발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담은 총 5년, 원고들은 끝내 패소한다. 여러 절차 끝에 연방 항소법원은 2020년 1월 재판관 3명 중 2명의 의견으로 소송 중단을 결정한다. 다수의견은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야기됐고, 원고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연방법원이 그에 대해 직접 명령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소수의견을 낸 판사(Josephine Station)는 이 소송을 계속해야 한다며 긴 판시를 남겼다.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원이 개입할 시점을 정하는 데 엄밀한 과학 원리는 없다. 이번 소송에서 내 동료들은 '지금은 절대 아니다'라고 하고 나는 지금이라고 한다. 사회 불평등을 다룸에 있어 누군가에게는 1초의 지연도 너무나 뼈아플 수 있다. ··· 오늘 판결에 희망은 있는가? 바다가 우리 연안 도시를 덮어버리고 화재와 가뭄이 내륙을 거듭 유린하며 폭풍우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땅을 초토화할 때 남은 자들은 묻게 되리라."

상실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만들기 위해
 
영화에서 원고들이 또래 청소년들과 거리에서, 법원 앞에서, 온갖 매체에서 목청껏 기후 정의를 외치고 미래를 말하는 장면은 강력하다.
 영화에서 원고들이 또래 청소년들과 거리에서, 법원 앞에서, 온갖 매체에서 목청껏 기후 정의를 외치고 미래를 말하는 장면은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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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송은 정부 정책의 위헌성 확인으로 청구 취지를 변경해 다시 제기됐다. 2022년 8월 기준 위 소송을 비롯해 전 세계 총 44개국 약 1200건의 기후소송이 제기돼,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콜롬비아, 네팔 등에선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1) 사실 더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전하듯, 법정에서의 성공은 사회운동과 해당 사건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소송의 결과는 당시 그 사회를 말해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소송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하는 행동 없이 독립적으로 성공하는 소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고들이 또래 청소년들과 거리에서, 법원 앞에서, 온갖 매체에서 목청껏 기후 정의를 외치고 미래를 말하는 장면은 강력하다.

한국도 여러 건의 기후소송이 진행 중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후변화로부터 청구인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부족하다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처음 소송이 제기된 게 2020년 3월인데, 헌법재판소는 최근에서야 4월 23일로 공개변론 기일을 지정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정부와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듯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다. 심지어 현재 한반도의 하늘은 더욱 박하다. 기후재난에서 노동자, 농민, 시민의 일과 삶을 지키고 모두의 존엄과 안전, 생명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의 움직임에 함께 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 문명이 이미 실패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상실을 받아들이고 전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기 위해, 기후위기 대응 활동에 같은 마음으로 모이자.

1) 한겨레 2023. 3. 13.자 기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다혜 님은 변호사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후정의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기후소송, #기후정의, #기후위기,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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