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동학혁명 130주년이다. 처음엔 '반역'에서 동학란으로, 또 그사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가 백 주년에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름 하나 바꾸는데 백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동학혁명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혁명에 참여했던 오지영 선생이 지은 <동학사> 한 권을 들고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그 답의 실마리나마 찾아보려 한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행이 되었으면 한다.[기자말]

순진무구한 농민들이 왜 총을 들어야만 했을까? 그것도 군수 하나 쫓아내자는 민란이 아닌 나라를 뒤엎자는 무장봉기다. 혁명이다. 괭이 대신 무기를 든 팔뚝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다. 당장 삶은 물론 담보할 수 없는 미래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으로 다가왔을까?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 봉건을 혁파하고 공화정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외세의 간섭과 침략으로부터 의연한 자주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 특히 노골화한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 함이다.

당시 혁명전쟁을 선포한 전봉준은, 깊은 고민에 빠졌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군사 경험은 물론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혁명군에게 첫 전투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탓이다. 만약 첫 전투에서 패한다면, 혁명이고 뭐고 군대가 와해하여 영영 동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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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현 상봉 사진 좌측 동학혁명 기념탑 자리를 관군이 주둔한 상봉으로 추정한다. 사진 오른쪽으로 옛 기념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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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신중하게 작전을 짜야 했고, 적의 약점을 적확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감영군을 유인하여 최대한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무기의 열세 등을 고려, 선택의 여지 없이 야간에 기습하는 게 최고 전술이라는 점에 모두의 의견도 일치한다.

혁명 대열에 나선 농민들도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동안 첫 전투를 위한 훈련은 물론 정신 무장도 쉼 없이 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서막... 단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게 달렸다  

혁명군의 다음 목표는 전주다. 하지만 5천 군사라고는 하나, 오합지졸 다름없는 군대로 급하게 전주 점령에 나서기엔 버거운 것도 현실이다. 단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게 달렸다. 그러함에도 사발통문의 약속이다. 명분을 위해서라도 전주성으로 가야 한다. 백산 대회 5일 후 전주 턱밑 원평까지 진군한다.

이 소식에 전라감사 김문현은 제정신이 아니다. 조정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전주 방어의 요충지인 용머리고개에 무남영군을 배치한다. 건달로 구성된 이들은 깡패집단에 가깝다.

초토사로 홍계훈이 임명되어 4월 초 전주로 출병한다는 소식이다. 김문현은 조정 군대가 내려오기 전, 공을 세우고 싶다. 각 고을에 나졸과 포수 징집령을 내린다. 감영이 보유한 7백 무남영군에 1천 보부상을 합해 토벌대를 꾸린다.

장돌림인 보부상은 2~3명이 한 무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세파에 맞닥뜨린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물미장(지게를 버티는 용도로 사용되는 막대기)은 무기다. 갖은 일에 닳고 닳아 싸움에도 제법 능숙하다.

이들은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며 행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상업행위를 위해 정부에 협조하는 관변 집단이다. 또한 규율이 매우 엄격해 집단의식과 단체행동에선 군대를 능가하는 측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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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현 전적지 황토현 상봉의 갑오동학혁명 기념탑에서 바라 본 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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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선발대로 무남영군이 출정한다. 그 뒤를 따라 보부상이 속속 감영군에 합류한다. 무남영군 부관 이경호가 감영군의 총지휘자다. 원평에 당도한 감영군은 원평·금구와 태인 일대를 돌아다니며 노략질한다. 이용태처럼 집마다 들이닥쳐 아녀자를 겁탈하고, 닥치는 대로 재물을 약탈한다. 나라의 군대로 출정한 자들이 대체로 이 꼴이다.
 

일천 명의 관군은 훌쩍 나아가며 평지를 휩쓸고 지나듯 쏟아져 내려오며 지나는 길에 민간 재물을 노략질하며 부녀를 겁간하는 등 무소불위의 행패를 부리며 남쪽 길로 향하였다. (동학사. 오지영. 문선각. 1973. p210 의역 인용)

 
혁명군은 질서정연하게 백산으로 물러난다.

혁명군의 작전

감영군의 진격에 혁명군은 군대를 셋으로 나눈다. 백산을 지키는 건 5천 전봉준 부대다. 김개남, 김덕명 부대는 말목으로 빠져 덕천 동죽산 부근에 매복한다. 손화중 부대는 부안 관아를 점령한 후 상소산에 진을 친다. 4월 6일 아침나절 감영군이 화호 나루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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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호나루와 백산 동진강을 사이에 두고, 감영군과 혁명군이 대치한 화호나루와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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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정상의 혁명군은 느긋하게 이를 내려다본다. 곳곳으로 연락병 발걸음이 분주하다. 턱없는 사거리의 화승총으로 감영군을 격동한다. 그러자 격분한 감영군이 점심이 되기도 전 총을 쏘며 강을 건넌다. 화승총과 수백 정의 양총으로 무장한 감영군은 제법 많은 군량미도 꾸려 부대이동이 더디다. 감영군이 강을 건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며칠이 지나 태인 화호 나룻가에 이르러 진을 치고 총을 난사하였다. 무서운 양총 소리가 무섭게 천지를 진동하고 총알은 펑펑 날아가 거의 5리 가까운 백산 꼭대기를 훌훌 넘어간다. 이에 익숙하지 못한 고부 백성이 공포에 겁을 집어먹고 사방으로 도망하는 자가 태반이다.

다만 의연한 무리는 동학군뿐이다. 이렇게 도망하는 백성을 본 관병들은 급히 달려 들어온다. 양군이 서로 응사하며 싸우다가 돌연 동학군이 거의 패하여 서남 두 갈래 길로 나누어 달아났다. 반수는 서쪽으로 부안읍 소로를 향하여 가고, 반수는 남쪽으로 고부읍 대로로 향하여 간다. (앞의 책 p210~211 의역 인용)

 
감영군관 이경호의 진격 명령에 콩 볶듯 총을 쏘아대며 금방이라도 몰살시킬 기세로 백산으로 진격해 온다. 비에 젖은 혁명군은 패잔병처럼 부안 방향으로 후퇴한다. 반도인 부안은 삼면이 바다다. 부안으로 들어가는 건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다.

유인 전술

이에 감영군은 한껏 느긋해진다. 백산에서 혁명군을 몰아냈으니 나름 명분도 세웠다. 비가 내려 싸울 마음도 없다. 그저 백산 부근에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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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계교 멀리 사진 좌측 자라고개를 넘어 온 혁명군이 지나간 도계마을 앞 지금의 도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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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도망치던 혁명군이 길을 되짚어 백산으로 진격해 온다. 감영군이 응사하자 길을 틀어 고부천을 거슬러 읍내 쪽으로 향한다. 감영군을 무시하는 태도다. 특히 보부상 부대를 충동질한다. 격해진 보부상 부대가 홀로 공격에 나선다.
 

부안으로 가는 길은 들판 험한 길이고, 고부로 가는 길은 평지 대로다. 동학군보다 수가 적은 관군은 군세를 나누어 둘 다 쫓을 수 없어, 편의를 따라 또는 동학군 대장기가 남쪽을 향하고 있어 바로 남쪽 길로 쫓아 들어갔다. (앞의 책 p211 의역 인용)

 
이에 혁명군이 줄행랑을 놓자, 추격하던 보부상 부대가 공격을 멈춘다. 그러자 혁명군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격동한다. 공격하면 또 도망친다. 보부상 부대에 공을 빼앗길까 염려한 이경호가 군사를 몰아 빠르게 진격해 온다. 감영군은 점심도 먹지 못한 상태다.

혁명군이 말목장터 쪽으로 길을 돌리자, 보부상 부대가 기세 좋게 공격해 온다. 이경호 부대도 혁명군을 포위하려고 길을 앞질러 전속력으로 추격해 온다. 혁명군이 앞서기는 했으나 양쪽에서 협공당할 위기다.

이때 혁명군이 갑자기 길을 틀어 고부 방향 운학리로 빠져나간다. 지금까지의 행군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들판을 지나 은선리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치닫는다.

끼니도 거른 감영군이 급한 행군에 점차 지쳐간다. 멀리 은선리 가는 고개 꼭대기에서 감영군을 지켜보던 혁명군이 화승총을 쏘며 또 공격해 온다. 감영군은 밀고 당기는 혁명군의 행태에 격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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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선리와 자라고개 은선리 3층 석탑에서 바라 본 자라고개. 사진 가운데 가장 낮은 곳이 자라고개로 혁명군이 감영군을 유인, 황토현으로 스며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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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이경호가 다시 진격 명령을 내리자, 혁명군은 은선리 3층 석탑을 지나 천태산 자락 자라 고개에서 삽시간에 종적을 감춰 버린다. 감영군은 다만 정신없이 추격할 뿐이다.

폭풍 전야, 혁명군은 벼르고 있다

혁명군은 자라 고개 꼭대기에서 방향을 잡아, 감영군의 동태를 살피면서 느긋하게 황토현 방향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황토현에 다다르자 감영군이 멀리서 움직이는 게 보인다. 감영군이 가까이 다가오도록 물끄러미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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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현에서 본 자라고개 천태산 자락의 혁명군이 관군을 유인해 온 길을, 황토현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앞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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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서양 총 사거리에 들기 전에, 혁명군은 황토현의 여러 봉우리 사이로 자취를 감춘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그 길로 십여 리를 쫓아가 바라보니 동학군은 벌써 황토현 중봉에 진을 치고 있다. 동학군 뒤를 쫓던 관군들은 다만 바라볼 뿐이오, 감히 그 산 밑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그곳을 멀리 돌아 중봉과 거리가 조금 떨어진 상봉에 진을 쳤다. (앞의 책 p211 의역 인용)

 
감영군도 어쩔 수 없이 황토현에 진을 치고 하룻밤을 지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혁명군을 쫓아 점심도 굶고 정신없이 내달린 후였으므로 무척 피곤하다. 젖은 의복이며 병장기, 빗물 먹은 황톳길 흙이 신발에 달라붙어 발걸음도 천근만근이다. 급히 추격할 마음도 힘도 없다.

반면, 혁명군은 미리 계획한 작전대로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황토현 밖은 손화중 부대, 정읍 쪽은 김개남과 김덕명 부대, 태인과 말목 쪽은 손여옥 부대가 겹겹으로 포위하고 있다. 혁명군들은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옷을 말리며 허장성세를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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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현과 백산 황토현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앞에서 본 백산. 사진 한가운데 희미하게 봉긋 솟아 오른 사발 모양의 백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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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격은 전봉준 부대 몫이다. 황토현 밖 손화중 부대에서 봉화가 오른다. 황토현 중봉에서도 봉화가 오른다. 공격 신호다. 그토록 공들인 첫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