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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니 정원은 아름다운 선물을 가득 안겨준다. 3월 말, 대문 앞에 있는 생강나무꽃을 시작으로 진달래꽃, 할미꽃, 4월에 접어들면서 앵두꽃, 금낭화, 무스카리, 목련꽃이 자기만의 색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침에는 터질 것만 같은 꽃망울이었는데, 잠시 뒤 돌아오면 살짝 꽃을 터뜨렸고, 또다시 찾아와 보면 예쁜 꽃이 피어있다.

궁금함과 설렘으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눈길이 가고, 조금씩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꽃을 피워낸 모습에 감탄도 한다. 벚꽃, 서부해당화, 라일락, 미산딸나무는 꽃망울은 보여주면서 시간과 햇볕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한다. 정원이 펼치는 꽃의 향연이다. 갓 만든 정원이 이러한데 내년의 봄은 어떠할까?
  
앵두꽃이 활짝 피어 빨간 앵두를 기다리고 함
▲ 앵두꽃 앵두꽃이 활짝 피어 빨간 앵두를 기다리고 함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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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흩어져 있던 금낭화를 한 곳으로 옮겨놓았는데 그래도 잘 피워줌
▲ 금낭화 곳곳에 흩어져 있던 금낭화를 한 곳으로 옮겨놓았는데 그래도 잘 피워줌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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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려온 어린 목련이 몇 송이라도 꽃을 피워줘 감탄함.
▲ 목련꽃 지난해 데려온 어린 목련이 몇 송이라도 꽃을 피워줘 감탄함.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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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꽃들 가운데 진달래꽃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진달래꽃은 앞산에 그리고 우리 앞뜰과 뒤뜰에도 피어있다. 진달래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이 꽃에는 나의 소심함, 무능함, 억지스러움 그리고 배움이 담겨 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꽃 몇 그루를 올해 데려왔는데 잘 피워줌.
▲ 진달래꽃 진달래꽃 몇 그루를 올해 데려왔는데 잘 피워줌.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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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배우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사뿐히 즈려밟고'를 선생님이 '사뿐히 짓밟고'로 가르쳐주셨다. 어떻게 사뿐히 짓밟을 수 있지. 하지만 질문을 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며 크게 혼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국어 교사가 되었다. 이 부분을 역설로 가르쳤다. '사뿐히'는 나를 보기 싫어 떠나는 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짓밟힌'은 버림받은 시적 화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가르쳤다. 덧붙여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도 반어로 가르쳤다. 임이 떠나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밖에 없으니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교실 문을 나설 때 뒤통수가 따끈따끈했다. 참 무능한 교사이다.

이 찝찝함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김소월 시를 읽으면 임과의 이별 그것도 임의 죽음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임의 죽음을 격정적으로 토로한 '초혼' 그리고 임이 죽은 뒤 잊지 못한 그리움을 노래한 '금잔디'가 있다. 그러면 '진달래꽃'도 임의 죽음과 연관 있지 않을까?

첫째 도막에서 시적 화자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고 말한다. 이 도막은 죽은 사람에 대한 남아 있는 사람의 넋두리로 읽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홀로 남은 할머니가 장례식에서 '나 보기 싫다고 당신 혼자 좋은 곳으로 가면 나는 어떻게 하나'라고 넋두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첫째 도막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절제된 탄식, 하지만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남아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꽃을 뿌리며 명복을 비는 것이다.

셋째 도막의 '즈려'를 풀지 못했다. 그런데 '관북유람일기'에 '즈레'라는 말이 나온다. '즈레'는 '지레'의 평안도 사투리라고 한다. '지레'가 평안도에서 '즈려', '즈레'로 쓰인 말이 아닐까? '지레'는 '미리'라는 뜻이다. 그러면 '사뿐히 먼저 밟고'로 읽을 수 있다. 임이 어쩔 수 없어 먼저 저승에 갔으니 나도 임을 따라 곧 가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넷째 도막에서 시적 화자가 눈물을 참는 것은 죽은 사람을 편안히 저승으로 보내주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간다. 그런데 이승에 남아 있는 사람이 너무 슬퍼하면 죽은 혼이 이승에 얽매여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된다고 한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이다. 그러므로 죽은 혼이 저승에 편히 갈 수 있도록 애써 눈물을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

아프셨던 어머니 생각

수업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읽기는 두 방식으로 했다. 기존의 읽는 방식대로 먼저 수업하고 아이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하도록 했다. 실망스럽게도 거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의 이러한 읽기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억지스러움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내가 읽은 방식으로 이 시를 읽기를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라고. 이 억지스러움은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나는 과거 병환으로 아프신 어머니를 두고 중국으로 떠난 적이 있다. 잠시나마 어머니 곁을 떠난다는 말이 입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기에 중국으로 가는 사정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의 변명을 다 듣고 물으셨다. 임기는 몇 년이고? 2년입니다. 어머니는 의연하게 말씀하셨다. 내 2년 동안 살아 있을게.

이 말씀에 떠나가는 아들의 마음은 참 편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잘 버텨 주셨다. 중국 학교 측에서 임기 연장을 권해 연장했다. 그런데 두 달 후 어머니께서 위독하다고 연락이 왔다. 급히 병원으로 갔다. 따뜻한 어머니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날이 내가 어머니 곁을 떠난 지 딱 2년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과의 '2년' 약속을 지키셨다.

나는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모진 놈이라고 말한다며 누군가가 일러준다. 아픈 어머니를 두고 외국으로 나가더니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못된 놈이라고. 사람들은 오늘 하루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슬퍼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앞으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계속 흘려야 한다. 어머니께서 이제 나에 대한 걱정을 다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 곳에 가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눈물을 참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 버겁다.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돌아가신 사람에게 그동안 자신이 잘못한 온갖 것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후회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 감당할 수 없는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그 슬픔과 아픔을 사람의 힘으로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 때 그 슬픔을 절규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리면서 세상을 떠난 임이 좋은 곳으로 가 편히 머물길 간절히 바라면서 애써 눈물을 거두는 것은 어떨까?

태그:#시골살이, #김소월,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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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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