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 서방, 그짝에 있는 놈 말고, 쩌짝에 있는 놈을 따야제. 아따 깝깝시라 죽겄네"

엄나무 앞에서 긴 장대를 들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둘째 사우(사위)의 행동이 답답했는지 장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새순은 달콤 쌉싸름하다.
▲ 엄나무 새순은 달콤 쌉싸름하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아따 깝깝해서 안되것구만. 내가 올라가서 큰놈 가지도 치고, 순도 딸랑께 언능 비켜 부르소"

집 뒤 편에 심어진 엄나무 한그루. 그 아래서 장인과 사우의 실랑이가 한바탕 있었다. 아니 사우의 답답한 행동에 애가 탄 장인의 가르침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봄철이 되면 장인·장모는 아들과 세 사우가 참말로 좋아하는 엄나무 순, 두릅나무 순, 머위 나물, 고사리, 취나물, 돌미나리 등등 보성군 득량면 산야에 지천으로 자라는 봄나물을 준비해 주셨다.

4월의 첫 주말, 전라도 광주에 사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시골집 수리를 위해 찾아 왔다. 늘 걱정이고, 늘 거처가 불분명한 둘째 사우도 간만에 처가를 찾았다. 시골집 찾아온 자석(자식)들이 반가워서였을까? 아들과 사우가 집수리(데크와 지붕 페인트 보강작업)가 끝나기 무섭게 엄나무 순 따기를 재촉했다.
  
시골집 데크에 페인트 칠을 했다.
▲ 주말 일손 돕기  시골집 데크에 페인트 칠을 했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아들과 사우는 선약을 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80세 장인은 키가 당신보다 크고 가시까지 돋친 그 엄나무에 장갑도 끼지 않고 재빠르게 올라가셨다.
  
엄나무 순을 따고 있다.
▲ 엄나무에 오르신 80세 어르신 엄나무 순을 따고 있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아따, 뭐달라고 나무에 올라가고 그라요. 연세도 있으신데, 떨어져서 다치믄 어쩔라고 그라요. 언능 내례 오시오"

"갠찬해야. 이참에 순도 따고 가지치기도 해불란다."

아들까지 나서서 말려도 소의 고집보다 더 센 장인을 말릴 수는 없었다. 장인의 뜻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바리바리 보따리를 챙겨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주말 저녁 밥상, 기름진 고기반찬은 없었다. 비싼 돈을 주고 대형마트에서 구매한 반찬도 없었다.

봄이 되면, 처가의 들과 산이 기꺼이 내어준, 값을 매길 수도 없는, 장인·장모와 함께 손수 딴, 봄나물만 밥상에 가득했다.

다행히 두 아들 녀석은 그 맛난 봄나물에 젓가락을 올리지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엄나무 순, 머위 나물, 취나물, 돌미나리, 부추는 온전히 나의 차지였다.
 
봄날에만 맛볼 수 있는 나물들
▲ 봄나물 만찬 봄날에만 맛볼 수 있는 나물들
ⓒ 김웅헌

관련사진보기

   
원래 나는 나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이 입맛이었다. 그런데 사십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봄나물의 쌉싸름한 맛에 빠져들었다.

살짝 데쳐서 조물조물하거나 그것 그대로 초장에 찍어 먹는 쌉싸름함을 맛보지 않으면, 식욕이 돌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시골 살던 어릴 적 추억이 그리운 것인가! 어찌 됐든 다행이다. 올해도 그 달콤 쌉싸름한 봄의 맛, 향연을 치렀으니.

내년 봄에도 이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정 많고, 투박하고, 고집 세고, 여린, 평생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만 한 사람과 한 많은 시집살이와 가부장적 한 시대를 자식만 바라보며 한과 눈물로 살아내신 또 다른 그 사람이랑. 

태그:#봄나물, #엄나무, #추억, #시골, #보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