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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학원에서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먹어."
"마시고 싶으면 너도 사지 그래?"
"아니, 나는 안 사먹을 거야. 그건 SDGs가 아니잖아?"


지난 주말, 일본 동경 시내의 한적한 상점가. 내 옆을 지나치며 다정히 손을 잡고 걷는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를 듣고는 흠칫 놀랐다. 중학생쯤 되었으려나. 손녀 아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SDGs(국가 지속가능발전 목표)'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 "그래서 SDGs가 정확히 뭘 말하는 건데?"라는 나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집 초등학교 1학년 큰 아이였다.

"SDGs는 지구한테 좋은 일을 하는 거야! 지구가 죽으면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이랑 놀 수도 없다고 선생님이 가르쳐줬어."
 
SDGs 17개 목표
 SDGs 17개 목표
ⓒ 한국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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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일본 생활도 어느덧 15년 차. 아이의 막연한 대답을 계기로 우리 가정은 SDGs에 대해 다같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일본 서점에 들러 아이와 같이 볼 수 있을만한 책을 골랐다. 그림책, 도감, 퀴즈 등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어 연령과 관심사에 맞는 적절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국가 지속가능발전 목표'로 번역되는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지난 2015년 9월 유엔에 의해 설정된 국제 행동 목표이다. 인류의 보편적 문제와 지구 환경 문제, 경제 사회 문제를 17개의 주 목표와 169개의 세부 목표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빈곤과 기아퇴치, 성평등 확립 등 전 세계적인 문제를 각 국가가 함께 위기의식을 가지고 바꿔나가자는 얘기다.

일본 TV서 '지속가능발전' 개념 쉽게 바꿔 만화로 방영, 이런 건 좋네요
 
SDGs 관련 아동서적들
 SDGs 관련 아동서적들
ⓒ 長谷川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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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게 한다(Leave No one Behind)'를 슬로건으로 삼아 2030년까지의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며 국제 사회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SDGs가 채택된 2015년부터 정부는 물론 민간차원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2021년에는 한 해 동안의 유행어를 뽑는 투표에 `SDGs`가 후보로 오를 정도였다. 시민들의 생활 속에 SDGs라는 개념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학부모로서 교육 분야에서의 노력이 눈에 띈다. 아이의 학교에서도 SDGs를 의식한 수업이나 방과 후 활동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TV를 켜면 SDGs를 주제로 한 교육 용 프로그램들이 정규 편성되어 방영되고 있다.

민간 기업들은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SDGs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례로, 감자칩 전문 기업인 '코이케야'는 SDGs의 S(Sustainable)에서 따 온 '사스와 테나'라는 이름의 만화를 제작, 방영 중이다.

사스와 테나, 부르 세 주인공이 SDGs를 위협하는 각종 괴물들과 싸운다는 내용으로 괴물 캐릭터는 일반 공모를 통해 모집하고 있다. 당선된 사람에게는 오십여만 원의 상품권과 감자칩 한 박스를 선물한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17개 목표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괴물을 구상 중이다. 
 
SDGs를 테마로 한 만화
 SDGs를 테마로 한 만화
ⓒ koik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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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SDGs 달성까지의 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최근 유엔에서 발표된 평가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일본의 SDGs 달성률은 79.4%로 166개국 중 21위에 해당했다. 

17개 항목 중 일본 사회가 이미 달성되었다고 평가받는 것은 양질의 교육 보장, 사회 기반 시설 산업화 및 혁신의 두 항목이었다. 17개 중 11개의 항목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빈곤퇴치 분야에서의 개선이 가장 도드라졌다. 

정치권 내 여성 의석수 적은 한일... 그럼에도 일본은 변화하고 있다
 
2023년 일본의 SDGs 달성도
 2023년 일본의 SDGs 달성도
ⓒ SDG Transform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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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같은 자료 기준 한국의 SDGs 달성률은 78.1%로 166개국의 31위에 해당했다. 이미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평가받은 항목은 없었으나 빈곤퇴치와 양질의 교육, 지속가능한 도시와 지역 사회 등의 항목에서 높은 달성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중 13개 항목들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된 점도 주목할만하다.   
 
2023년 한국의 SDGs 달성도
 2023년 한국의 SDGs 달성도
ⓒ SDG Transform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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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Gs 달성도를 들여다보니 양국의 공통 과제도 보인다. 성평등, 책임감 있는 소비와 생산, 해양 생태계 보전, 목표 달성을 위한 파트너십 등의 4개 항목은 양국 모두 달성에서 거리가 먼 상태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평등 부문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정치 및 경제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2023년 1월 유엔 여성 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의 여성 의원의 평균은 26.5%. 국가별로 보면 르완다가 61.3%로 의석 대비 여성 의원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OECD 국가들을 살펴보면 뉴질랜드 50%를 시작으로 스웨덴 46.4%, 프랑스 37.8%, 영국 34.5% 등 여성 의원의 비율이 30% 이상인 나라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9.1%로 186개국 중 120위를 기록했다. 2023년 1월 1일 기준, 전체 의석 299중, 여성 의원은 57명이었다.

일본의 상황은 더 나빠 여성 의원은 전체의 10%로 164위를 기록했다. 전체 의석 462석 중 여성은 46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기시다 내각에서 주요 직책을 담당하는 관료 24명 중 여성은 5명이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미미한 수준이다.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일본 정치권. 여성들이 진짜 리더십을 발휘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이유다. 
 
기시다내각. 여성 관료는 소수에 불과하다.
 기시다내각. 여성 관료는 소수에 불과하다.
ⓒ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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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올해 들어 교토대를 비롯한 국립 대학교에서 여학생 정원을 늘리겠다는 발표가 연이어지는 걸 보면, 여성 리더들을 기르겠다는 국가 차원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고립과 안정을 추구해 오던 섬나라 일본에 SDGs가 변화의 촉매제가 되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 개인의 생활도 SDGs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을 통해 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와 함께 SDGs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고 나니, 문득 코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결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초등 1학년 아이에게 "정치는 남자 어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자 어른도 함께 하는 거란다"라고 일러주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에서 좋은 여성 정치인들이 발굴되고 눈부시게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해보게 된다. 

태그:#SDGS, #성평등, #여성정치인, #국회의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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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화와 미학을 공부했습니다. 번역을 하고 글을 씁니다. 번역 및 원고 의뢰 36.5.transla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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