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지난 3월 28일 박찬대 의원(인천 연수구갑/더불어민주당)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0인의 발의로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인 활쏘기(궁도)의 진흥과 체계적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제안 이유'에 따르면 "우리 민족 고유의 무형유산인 궁도를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더 나아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 국제적 확산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 지원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에 궁도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여 국민의 체력과 정신건강의 증진, 나아가 궁도의 세계화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복을 입고 활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 (서울 공항정)
 한복을 입고 활쏘기를 즐기는 대학생들 (서울 공항정)
ⓒ 한복인플루언서 "신순이순신"

관련사진보기

 
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활쏘기 진흥에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고, 기본계획을 5년마다 세우자는 게 골자다.

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인 궁도의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명랑한 기풍 진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함(안 제1조).

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궁도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고, 국민의 궁도 활동을 보호하여야 함(안 제3조).

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궁도의 보존 및 진흥을 위한 궁도 진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함(안 제5조).

라. 궁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제고하고 궁도 진흥을 도모하기 위하여 매년 7월 30일을 '궁도의 날'로 정함(안 제7조).

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궁도 진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궁도단체와 궁도시설에 대하여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궁도시설을 조성·운용할 수 있도록 함(안 제8조).


'궁도'라는 표현이 아쉬운 이유
 
지난 3월 28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궁도진흥법안'이 제출됐다.
 지난 3월 28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궁도진흥법안'이 제출됐다.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관련사진보기

 
법안 발의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뻤다. 나는 올해 초부터 <오마이뉴스>에 '활 배웁니다'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연재 바로가기),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무관심 속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전통활쏘기(국궁)와 활터(국궁장)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왔다.

그런데 마치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국회에 '궁도진흥법안'이 제출됐다고 하니 고무적일 수밖에. 정치권에서도 비로소 우리 전통활쏘기의 보존과 계승에 의지를 드러낸 것 같아서, 늦었지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작년 부여 육일정의 강제 철거와 같은 안타까운 사태를 겪을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싶어 무척 기대 중이다(관련 기사: 양궁은 세계 최강인데... 국궁장은 왜 이 모양일까 https://omn.kr/27efl )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법안의 명칭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명칭은 '궁도진흥법안'이다. 그런데 궁도(弓道)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이후 정착된 일본식 표현이다.

과거 문헌을 살펴보면 궁도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사예(射藝), 사후(射帿), 궁술(弓術) 등으로 활쏘기를 표현해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전통활쏘기의 명맥을 보존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의 이름은 '조선궁술연구회'였고, 조선궁술연구회의 주도로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중화(李重華)가 편찬한 활쏘기 교본의 제목 역시 <조선의 궁술>이었다.

일제가 민간에 보급하기 시작한 이름들
 
3.1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조선의 궁술> 글씨
 3.1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조선의 궁술> 글씨
ⓒ 국립민속박물관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일제에 의해 우리의 궁술은 궁도로 바뀌게 된다. 일제는 국민들에게 군국주의 정신을 심어놓기 위한 차원에서 무도(武道) 교육을 강화하며 유술은 '유도'로, 검술은 '검도'로 그리고 궁술은 '궁도'로 이름을 바꿔 민간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무술의 끝에 '도(道)'가 붙게 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신도(神道)·황도(皇道)·무사도(武士道) 등을 강조하면서 도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실시한 조치였다. 

식민지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일제로부터 유입된 궁도라는 표현이 기존의 궁술을 대체하면서 조선궁술연구회 역시 1932년 '조선궁도회'로 명칭이 바뀌었고, 해방 직후인 1948년 '대한궁도협회'로 다시 이름이 바뀐 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다만, 과거 <조선왕조실록>에 궁도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한다. <세조실록> 세조 14년 1월 16일자 기사 중 "날으는 사슴을 죽여 떨어뜨리고, 놓인 준마에서 이탈하여 서는데 이르렀으니, 이는 모두 궁도(弓道)의 여기(餘技)이며"(至於飛鹿殪墜, 逸駿離立, 是皆弓道之餘奇)라는 구절과 "말이 준마인 것은 하늘의 용맹이고, 화살이 가늘은 것은 사람의 공력이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궁도(弓道)를 다한다"(馬駿者天勇, 矢細者人功, 如是然後, 弓道盡矣)는 구절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통틀어 딱 한 번 등장한다. 한 번 나오는 단어에 보편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책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의 저자인 역사학자 최형국 박사 역시 "궁도라는 명칭의 보편화는 일제 군국주의를 통해 확산된 만큼, 우리의 고유 표현을 놔두고 궁도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에서도 궁도(Kyudo)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전통활쏘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궁도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파생된 만큼, 그 단어는 일본식 활쏘기를 가리키는 표현이지 한국의 활쏘기를 가리키는 표현이 될 수 없다.

한국의 활쏘기와 일본의 궁도는 활의 형태에 있어서나, 사법(射法)에 있어서나 전혀 다른 별개의 무술이다. 자칫 궁도진흥법이 외국인들에게 일본식 궁도에 대한 진흥법으로 비추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일본식 표현을 법안에 쓰는 것은 민족 정서에도 반하는 일일 것이다.

궁도라는 단어는 공식용어(규칙, 대회, 시설명)로는 보편화되어 있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구두로는 '국궁을 한다'고 말하지 궁도를 배운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일제 유산이라는 점에서 궁도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든다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일본의 궁도(弓道),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재팬(kyudo).
 일본의 궁도(弓道),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재팬(kyudo).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궁도를 대체할 만한 표현들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그러한 단어들 중에는, 오래도록 쓰이지 않아 정서적 괴리감을 주는 표현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흔히 우리의 전통활쏘기를 일컫는 명칭인 '국궁(國弓)'을 쓰면 되지 않을까. 순우리말인 '활쏘기'라는 말도 있다. 지난 2020년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등재한 명칭도 바로 활쏘기이다.

법안이 한 번 통과되면 다시 바꾸기 어렵다. 우리 활쏘기에 대한 법안을 제정하는데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인 궁도라는 표현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요즘 흥행 중인 영화 <파묘>에 빗대어 굳이 얘기하자면, 궁도라는 말 자체는 우리의 역사에서 뽑아버려야 할 또다른 '쇠말뚝'인지도 모르겠다.

궁도진흥법안의 빠른 통과를 촉구한다. 그러나 그 전에 법안 명칭에 대해 재고해주기를 동시에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참고 문헌: 최형국,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 민속원, 2020.


태그:#활쏘기, #국궁, #궁도, #궁술, #박찬대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