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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해 2학년이 되는 아이의 학교 방과 후 수강신청 날이다. 만약 이 수강신청이 실패하면 한 학기 내내 아이가 다닐 학원을 알아봐야 한다. 좋은 학원을 알아보는 것도 힘들고, 추가로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방과 후 수강신청에 성공한다는 전제 하에 다른 학원 시간과 모든 스케줄이 맞춰져 있다. 워킹맘인 나는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취소를 한다는 전제하에 매달 수강신청의 기회는 있었지만, 인기강좌는 좀처럼 취소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작년에는 한 학기 내내 구멍 난 1부 방과 후 수업 시간을 메꾸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2학기에는 모든 수강과목이 초기화되면서 새롭게 신청할 수 있었고, 1학기와는 다르게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수강신청 성공 여부는 나의 하루를 통째로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 된 것이다.

수강신청을 한 시간 남겨두고 같은 라인에 사는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오늘 수강신청 하시죠?"
"네!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조마조마하고 있어요. 혹시 성공 못하면 전 끝장이거든요."
"그럼 지금 수강신청 홈페이지 로그인하셔서 보호자 이름, 연락처 정보 입력하세요."
"아, 그거 작년에 이미 했는데 또 해야 돼요?"
"네, 또 해야 된대요. 2학년이 되면 정보가 초기화되나 봐요. 만약 그 정보가 입력 안 돼 있으면 수강신청 버튼을 누르고 나서 그걸 입력하느라 시간이 지체된대요."


바로 그 이유로 작년에 수강신청에 실패한 전적이 있다. 다시는 그 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서둘러 그녀의 말을 듣고 정보를 입력해 두었다. 드디어 8시, 미리 맞춰 둔 알람이 울리자마자 계획한 대로 남편과 동시접속을 시도해 빠르게 희망과목 수강신청 버튼을 눌렀다. 역시나 보호자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미리 입력해 둔 덕에 지체 없이 '수강신청 완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수강신청은 그야말로 '1초 컷'이었다. 1초 만에 1부 <한자>와 <과학실험>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연이어 2부 <미술공예> 수강신청도 신속하게 마쳤다. 단 5초 만에 희망하던 3과목의 수강신청을 끝냈다. 인기가 많은 1부 개설 방과 후 과목들은 모두 신청이 마감되었다.

"휴... 내가 아이 수강신청을,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 밥 먹자!"
"고생했어..."


남편은 수강신청을 성공한 후에야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저녁을 차리러 부엌으로 향하는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보호자 이름과 연락처를 미리 입력해 두세요'라고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떠올랐다. 

'그 정보가 없었더라면...' 

아찔한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당장 그 자리에서 모바일 치킨 쿠폰과 메시지를 보냈다.

'나의 6개월(한 학기)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며칠 뒤 다른 학부모를 만났는데 그 엄마는 남편과 동시에 수강신청을 했지만, 남편이 보호자 정보를 빠르게 입력하지 못해서 시간이 지체됐고 결국 한 과목을 신청하지 못해 대역죄인이 된 웃픈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한번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내가 같은 라인에 사는 학부모를 통해 그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대체 '방과 후 수강신청할 때, 2학년이 되면 보호자 정보가 초기화되니 미리 입력해 두면 빨리 신청할 수 있다'라는 정보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모르면 불편하고, 알면 편리해지는 '고급정보'가 있는데 그것은 Chat GPT나 네이버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정보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으로 온다. 결국엔 사람이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고급정보'는 온라인 수강신청이 경쟁이 되는 시대에 돈과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교환가치'를 지녔다. 클릭 한 번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는 오늘날, 수월한 삶에 로그인 할 패스워드를 얻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태그:#초등학교, #방과후, #학부모, #정보력, #수강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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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개발자를 거쳐 현 대학 교직원 & 워킹맘 2023년 8월 <우리의 겨울이 호주의 여름을 만나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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