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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곶자왈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의 화산지형을 토대로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숲인 곶자왈은 독특한 미기후를 간직하고 있어서 이곳에 기대어 사는 식물들이 많은 곳이다. 제주도에 입도한 지 7년 차인 나는 곶자왈에서 매번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다.

화순곶자왈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만날 때, 동백동산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볼 때, 곶자왈도립공원에서 곶자왈을 알리려는 노력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 교래곶자왈에서 눈 시리게 푸른 고사리류를 볼 때, 항상 감사한 마음과 이곳을 더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안곤 했다.

그런데 2월 초에 다녀온 산양곶자왈(현재 '산양큰엉곶'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과 서광동리곶자왈탐방로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함과 속상함에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나는 곶자왈모니터링단인 시민단체 '곶자왈사람들'에 소속돼 있는데, 우리는 매월 1회 곶자왈의 보전을 위한 조사와 훼손을 막기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모니터링 3년차를 맞은 나도 이곳저곳의 곶자왈을 많이 다녀본 덕분에 이제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다. 모두가 '곶자왈 중의 곶자왈'이라고 손꼽은 산양곶자왈이 많이 훼손되어 속상했다.

산양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포토존?
 
탐방로 안쪽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나무집 등을 만들었다.
 탐방로 안쪽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나무집 등을 만들었다.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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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설치된 안내판과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잘 닦인 탐방로가 나타난다. 탐방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다 보면 곶자왈의 나무와 풀들보다 여러 가지 조형물들을 먼저 만나게 된다. 돌담과 문, 통나무집, 그네, 거대한 달 모형, 거울, 수도꼭지, 기찻길 등등. 산양곶자왈 어딘가에서 나왔을 돌들과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탐방로 옆을 확장하고 밀어냈는데, 그 자리가 선명하다.

최근에 추가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나무집과 버섯 조형물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들을 모두 들어내고, 원하는 모양대로 돌을 깎고 이동시키고, 주변 식물들을 정리하고 인공시설을 넣어둔 듯했다. 누군가는 감탄할 만한 조형물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엔 아니었다. 곶자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바로 용암 함몰지이다.
 
(왼) 화려한 색의 버섯 조형물이 놓인 자리 주변의 식물들을 싹 제거한 모습, (오) 근처에는 희귀식물인 밤일엽도 나타났다.
 (왼) 화려한 색의 버섯 조형물이 놓인 자리 주변의 식물들을 싹 제거한 모습, (오) 근처에는 희귀식물인 밤일엽도 나타났다.
ⓒ 이승은 오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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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을 대표하는 지형 특성인 함몰지는 사람의 발이 잘 닿지 않고, 곶자왈만의 독특한 미기후가 형성되어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곳은 습도나 온도가 바깥과 다르고 함몰지의 깊이에 따라 살아가는 식물 종도 다르다. 그러므로 거대한 수목도 보이지 않고 접근하기도 어려운 그곳의 작은 구멍, 돌 하나하나를 잘 보전해야 하고 관리해야 한다. 

비슷한 곳이 바로 숨골(궤)이다. 용암 지형 중 하나인 숨골은 작은 동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숨골을 통해서 빗물이 들어가면 중산간이나 바닷가에서 솟아나거나 오랜 세월 동안 지하로 서서히 들어가 지하수를 만든다. 이 숨골 주변에서도 과도하게 파헤쳐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이 건드려놨을까.
 
(왼) 산양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숨골(궤) 사진 (오) 숨골 주변으로 많이 파헤쳐진 모습
 (왼) 산양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숨골(궤) 사진 (오) 숨골 주변으로 많이 파헤쳐진 모습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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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화산지형 위에 형성된 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함몰지의 모습.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식생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울퉁불퉁한 화산지형 위에 형성된 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함몰지의 모습.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식생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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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을 안고 더 걸어가다 보면 최근 생긴 것으로 보이는 토끼 먹이 체험장이 나온다. 전부터 산양곶자왈 안에 소달구지, 말달구지 체험을 할 수 있게 해놨는데, 추가로 토끼 먹이 체험장을 크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아이들이 오면 참 좋아하겠지.

하지만 산양곶자왈은 좀 다르길 바랐다. 곶자왈은 과거부터 제주도 사람들이 소나 말을 풀어서 키우던 곳이었다. 곶자왈을 걷다 보면 보이는 돌담들도 소나 말이 넘어가지 말라고 쌓아놓은 흔적이다. 이 때문에 곶자왈에서 소나 말을 만나는 일은 과거의 곶자왈에서의 인간 활동과 곶자왈이 어떻게 이용(버려진 땅이 아니다)되었는지 알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토끼 먹이 체험장이 아니라 곶자왈의 가치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볼 수 있게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산양곶자왈 내부에 새로 생긴 토끼 먹이 체험장과 카페
 산양곶자왈 내부에 새로 생긴 토끼 먹이 체험장과 카페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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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곶자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것들에는 제주도라는 정체성도, 곶자왈이라는 곳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핼러윈을 연상시키는 해골 인형들, 빗자루 탄 마녀,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 인형들까지 보고 나면 곶자왈에 들어온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또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기찻길 포토존이 두 군데 있었는데, 계속 기찻길을 연장하면서 곶자왈 내 대형공사를 진행하지는 않을지 우려도 되었다. 대형공사가 돼버려도 예쁘거나, 사진에 찍히기 좋거나, 한번 와서 사진 찍고 가기 좋으면 그만인 걸까. 

산양큰엉곶 담당자를 통해 내가 의아했던 부분들을 확인해 봤다. 담당자에 따르면, 산양리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돌을 옮기고 죽은 나무들을 모아 조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추가 시설 설치 계획을 물어보니 지금은 거의 다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산양리를 더 많이 알리고 마을의 자원을 잘 활용하려는 노력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산양곶자왈의 진짜배기는 많은 사람들이 "별거 없네"하며 지나가는 그 부분에 있다는 것을 더 알려주면 좋겠다.
 
핼러윈 관련 조형물과 기찻길 조형물
 핼러윈 관련 조형물과 기찻길 조형물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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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바로 옆에는 제주도 보존자원인 빌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빌레나무는 2003년 곶자왈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기찻길 바로 옆에는 제주도 보존자원인 빌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빌레나무는 2003년 곶자왈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 오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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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곶자왈에는 크게 두 가지 탐방로가 있다. 중앙을 따라 걷는 탐방로(유모차나 휠체어도 지나갈 수 있다)와 원으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원형 탐방로(야자매트가 깔려있지만 울퉁불퉁한 돌길을 포함하고 있다)이다. 나는 중앙 탐방로와 원형 탐방로를 모두 돌아봤는데, 중앙 탐방로를 걸으며 만난 다수의 관광객을 원형 탐방로에서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다행인지 원형 탐방로를 돌아볼 때는 산양곶자왈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다.

당장에 관광객들이 흥미를 가지고 보러 오는 부분이 포토존과 조형물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제주도 어딜 가나 있다. 더욱이 곶자왈에서 제주스럽지도 않는 조형물들을 만나는 생경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곶자왈에 가보려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론 산양곶자왈을 추천해줄 수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곶자왈 안에서까지 들어와서 굳이 음료를 사 마시게 하는 카페를 만드는 대신에 산양곶자왈 구석구석에 있는 보물 같은 진면목을 설명해 줄 해설사들과 해설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라진 곳자왈 원형은 쉽게 복원하기 어렵다. 곶자왈을 훼손하고 모양을 변형시켜 눈길을 끄는 것보다는 곶자왈의 속살을 조심히 구경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탐방로들을 그대로 남겨두면 얼마나 좋을까. 산양곶자왈에는 아직 그런 가치가 충분히 있다.

서광동리곶자왈탐방로의 실수들

점심 식사 후 오후 시간에 들린 서광동리곶자왈은 안덕면 서광리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에 탐방로가 개설되었는데, 1시간 이내로 가볍게 방문하여 걷기 좋은 2.3km 코스이다. 나는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편하게 걸어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수목 안내판에서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왼) 참식나무에 후박나무라고 잘못 붙여진 수목 안내판, (오) ‘머위나무’라는 나무는 없다. 왕초피에 잘못 붙여진 수목안내판
 (왼) 참식나무에 후박나무라고 잘못 붙여진 수목 안내판, (오) ‘머위나무’라는 나무는 없다. 왕초피에 잘못 붙여진 수목안내판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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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부터 열 발자국에 하나씩 보이는 수목안내판은 옛날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최근에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나무를 잘 알고 나무의 이름을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나무 이름표를 보면 그냥 맞겠거니, 하고 만다. 그렇기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후박나무 아니지 참식나무야. 층층나무 아니지 누리장나무야. 초피나무 아니지 왕초피야. 단풍나무 아니지 팽나무야. 곰의말채 아니지 꾸지뽕나무야. 수목 안내판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었고, 한두 개만 빼고 전부 틀린 이름이 걸려있었다. 이 이름표를 다는 데 돈도 적지 않게 들었을 텐데, 반드시 수정이 필요하다.

탐방로 옆으로 왕초피를 비롯한 수목들을 잘라내고 정리해서 공간을 마련해 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훼손된 수목 아래로 희귀식물인 새우난초가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서광동리곶자왈탐방로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위해 서광동리사무소와 이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 내용을 종합하면,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공사하는 사람들이 나무 표찰(수목 안내판)을 붙였다고 하는데, 잘못된 부분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추후 전문가와 상의 후 점차적으로 수정한다고 한다. 또, 탐방로 옆 나무들을 자른 것에 대해서는 앞서 탐방로를 정비할 때 옆 수목들도 같이 정리해 둔 것이며, 당장 계획된 내용은 없지만 나중에 공간을 활용해서 데크 등을 설치할 수도 있다고 한다.
 
탐방로 옆 수목 훼손 모습.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잘려나간 수목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탐방로 옆 수목 훼손 모습.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잘려나간 수목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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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잘려진 수목 아래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새우난초, (오) 잘려나간 수목들이 흩어져있다.
 (왼) 잘려진 수목 아래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새우난초, (오) 잘려나간 수목들이 흩어져있다.
ⓒ 오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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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탐방로 끝에 자리한 거대한 정자 휴게공간이었다. 2023년 여름에 새로 지었다는 이 정자는 2층짜리고 규모도 꽤 컸다. 산책을 마친 사람들이 앉아서 잠시 쉴 공간이면 충분하건만, 거대한 휴게공간까지 만들다니, 왠지 곶자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 올라가서 볼 전망이 있거나 2층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주도에 좋은 곳들이 너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곶자왈은 내가 가장 애정하고 많은 감동을 받는 곳이다. 곶자왈은 제주도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동서남북에 있는 여러 곶자왈은 각각 특징, 분위기, 식물 특성, 유산으로서의 가치 등을 가지고 있다. 

산양곶자왈과 서광동리곶자왈은 탐방로가 생긴 뒤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제주도의 곶자왈이 이어주고 있는 과거의 기록이며 미래의 가치이기도 하다. 함부로 그 원형을 훼손하지 말고 더욱 소중히 지키고 알려나가야 할 몫이 우리에게 있다.
 
아무런 조형물이 없어도 곶자왈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디에도 없는 제주만의 사진을 남기게 한다.
 아무런 조형물이 없어도 곶자왈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디에도 없는 제주만의 사진을 남기게 한다.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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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곶자왈, #훼손, #탐방로, #산양곶자왈, #서광동리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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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실크로드 간사입니다. 더 많은 자료와 활동소식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earthlifesilk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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