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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고요한 시간, 홀로 시를 곱씹는다. 독수리 타법으로 시를 가슴에 새긴다. 송경동 시인의 시집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를 한 달 넘게 붙들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놓고 싶었다. 시집을 덮고 가장 맘에 꽂히는 첫 문장을 생각했다. 시인의 시 '내 삶의 서재는'을 선택했다.
 
새벽녘에 송경동 시인의 시집을 읽고 쓰다.
▲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새벽녘에 송경동 시인의 시집을 읽고 쓰다.
ⓒ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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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을 읽던 내 서재는 어떤 상아탑의 권위나 고담준론이 아니었고, 객관적 서술은 더더욱 아니었고, 뒤늦은 평론이나 형이상학이 아니었다. 밑줄 그을 문장보다 부둥켜안아야 할 일이 많았고, 미문과 은유를 쓸 틈 없이 직설의 분노만 새기며 살아왔던." 

송경동 시인의 시에서 김남주 시인과 맞닿다 있는 듯한 시선 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김남주 시인은 '사상의 거처'라는 시에서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고 표현했었다.

송경동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만남이 있었다는 걸 그의 시 '그나저나 배린 인생'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시인은 여류시인 '김남조'였는데 앞에 앉은 이는 '김남주'라는 짝퉁이라고 했다. 무엇이 그리 고소한지 실실 쪼개기만 하는 실없는 사내. 기분 나빠 그냥 나와버릴까 했지만 생각하니 나는 짝퉁도 못 되는 불량품. 짝퉁에게서라도 배우면 어떠리 싶었다."

나는 아직도 가방끈에 대한 집착이 있다. 나는 아직도 못다 한 4년제 대학교 졸업장을 따고 싶어 한다. 나는 아직도 먹물처럼 화려한 수사로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멀었다.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배움의 진정한 학교는 어디에 있는지, 삶과 직결된 솔직한 글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부끄럽고 보잘것없이 살아온, 평범한 노동자인 나에게, 김남주와 송경동 시인은 다시 가르쳐 주었다.

"우선은 살려야 하니 군불을 지펴준다고 했다. 땔감을 몽땅 기업과 은행의 뜨뜻한 아궁이에 넣어 지펴주었다. 아랫목이 조금 훈훈해지자 금세 땔감을 아끼고 모아야 한다는 긴축론이 나왔다. 다시 도래한 긴축이라는 살얼음과 국가라는 차별적인 웃풍에 시달려 많은 사람들이 고사하고 난 후에 오래된 집의 무너진 구들은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시인의 '오래된 가옥'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일하는 노동현장과 일치한다. 산업은행이 17.02%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국지엠. 그 과거는 절망 끝에 죽어 나간 사람들, 수천 명이 희망퇴직을 하고,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고, 수백 명이 무급휴직을 당하고, 군산공장에서 부평공장으로, 부평공장에서 창원공장으로, 다시 창원공장에서 부평공장으로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닐 때도 '우선은 살려야 하니'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8100억 원을 지원해줬다. 그러나 그 오래된 집에 군불을 지펴준 구들은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

"멀리 갔다 왔다고 해서 인생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떠나온 고향 전남벌교 바닷가 뻘밭에서, 햇볕에 노출된 채 힘써 폴짝폴짝 뛰어다닌 짱뚱어나, 눈 쫑긋 세우고 설설설 옆으로만 걷던 게가, 나보다 훨씬 풍요로운 세상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뻘밭'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시어는 향수에 젖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보성 벌교를 지나, 고흥 녹동을 거쳐 파도를 타고 가면, 내 고향 거문도에 도착한다. 다시 돌아오는 길, 득량만에 다다르면 아내의 고향인 오봉산 끝자락 득량면 화죽리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남도 바다는 지친 삶의 넘치는 에너지다.

시를 읽는다는 게 버틸 수 없는 고통일 때가 있다. 시를 담는다는 게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다가올 때가 있다. 슬펐다. 아팠다. '지금 내리실 역은 이태원역입니다' 국가는 이태원역에 있었습니까?

"2022년 10월 30일 오전 9시 30분 소방당국, 사망자 151명, 부상자 82명 발표···2022년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 이후 주도면밀하게 이 죽임의 축제를 주최한 자는 대한민국 정부지. 11번의 긴급구조 신고를 받고도 156명의 숨이 멎어갈 동안 있지 않았던 정부는 있을 필요가 없는 정부지. 그 책임을 거부한 정부는 정부가 아니지. 아무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지."

참사 전날이었다. 오후 4시쯤 부평경찰서 앞에서 서울로 향하는 광역버스 1200번을 탔었다. 잠시 후 부평구청 정류장에서 핼러윈 데이를 즐기러 가는 복장의 청춘들이 삼삼오오 버스에 탑승했다. 그들은 밝은 얼굴로 축제를 즐기기 위한 계획들을 여기저기서 말했었다. 지금도 청춘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오후 늦게 군산에 사는 중학교 2학년 첫째아들이 상경했다. 그날 나는, 아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이태원에 함께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아빠와 아들은 외출하지 않고 함께 있었다.

새벽잠을 자지 않고 있던 아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를 황급히 깨웠다. "아빠 큰일이 났어요.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데요. 우리도 그곳에 갔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아들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었다. 나도 내 아들도 이태원역에 갔었더라면···어찌 됐을지 모른다. '사고'가 아니라 '참사'였다.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었다.

송경동 시인의 시집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의 마지막 에세이 '0.68평의 時'처럼 부끄러웠던 과거보다, 나의 말과 글과 행동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내 시의 언어들이 그런 현장에서의 작은 배움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 시가 그럴듯한 명분들에 기대지 말길 바라며,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나로 현재의 나를 가리거나 치장하지 않길 바랍니다. 분노하는 일이 관습이나 체면치레처럼 굳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한다는 일들에 대한 언급이 조금은 더 깊어지기를 기다리며 적어지기를 바랍니다."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송경동 (지은이), 도서출판 아시아(2023)


태그:#송경동, #시인, #시집, #내일다시쓰겠습니다, #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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