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개 도살장과 번식장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잔인한 환경과 인간성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번식장에 갇힌 개들은 그저 새끼를 낳기 위해 죽지 않을 만큼만 살고 있었으며,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진 개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중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개도 있었고 죽으러 가는 길을 아는 듯이 발버둥 치는 개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끌고 가 머리를 내리치고 땅에 내던졌다.
이것은 마치 악마가 살아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아무 감정 없이 해치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주안쉼터 김영란 소장님의 눈에 띈 선학동 도살장은 뜬 장에 개들을 가둬 밥도 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힘없는 아이들을 가두어 놓고 돈 몇 푼에 도살하여 떠넘기는 개농장이기도 했다.
소장님은 이 모습을 결코 지나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눈은 삶을 포기한 듯했지만 그럼에도 살려야만 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이곳을 찾았다. 틈틈이 짬을 내어 본인의 식사는 거르더라도 개들의 식사는 챙겨주어야 했다.
물론 도살장 주인에게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차피 죽을 것한테 왜 밥을 주냐는 말이었다. 다시는 찾아오지도 말라며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소장님의 발길을 잡은 것은 이 아이. 눈이 어딘지, 입이 어딘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누더기 상태였다. 목욕은커녕 미용도 이루어지지 않아 털이 엉키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군데군데 시커멓게 때가 타 악취가 났다.
가녀린 네 발로 뜬 장 위에서 겨우 버티고 있었고, 소장님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어 밥을 얻어먹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마음이 쓰였던 아이라고 했다.
결국 소장님은 아이를 구조했다. 도저히 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의 아이를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들쳐업고 무작정 뛰었다. 도살장 주인은 끈질긴 소장님의 방문과 설득에 몇 마리를 내어주었고 그렇게 소장님은 도살장에서 첫 구조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소장님의 집은 어느덧 보호소가 되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눈에 밟히는 아이를 데려오다 보니 어느새 수십 마리의 유기 동물이 지내게 되었다.
때로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현관 앞에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를 소장님은 내칠 수가 없었다. 밥도 먹이고 따뜻한 잠자리를 내어주며 너는 이제 우리 식구라고 말해주었다.
주안쉼터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후원자의 도움과 소장님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수십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모여 살며 온기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 아프고 노령인 아이들이라서 소장님의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김영란 소장님은 70세를 앞둔 나이임에도 여전히 아이들의 돌봄이 우선이다. 가끔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럴 때면 곁에 다가와 안기는 녀석들을 도저히 내칠 수가 없다.
인천에 위치한 주안쉼터는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설유기동물보호소이다. 다행히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밥을 굶길 일은 없지만 여전히 밀려 있는 세금과 병원비는 소장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의 삶에는 숨은 영웅이 있다. 어쩌면 이러한 영웅 덕분에 이 사회가 아직은 살아갈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럿의 생명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주안쉼터 김영란 소장님은 아이들의 영웅이자 엄마이자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