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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우연한 기회에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병원에서였다. 극한의 고통과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 속 글쓰기는 나에게 일종의 해방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과 희망 사이를 넘나들던 내 감정은 글이 되어 훌훌 날아갔다. 마치 마음속 찌꺼기를 씻어낸 듯 후련했다.

병원 생활을 마무리 하고 한 뭉텅이의 글쓰기를 끝내고 나니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뭔가 쓰고 싶어 끼적이다 보면 내용이 산으로 가기 일쑤고 일기인지 푸념인지 알 수 없는 느낌에 글을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쓰고 싶다는 열망은 가득했다. 아마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책장 속에 꽂혀 있었지만 조금 읽다 방치된 <유혹하는 글쓰기>에 손을 뻗었다. 제목처럼 누구든 유혹하고 넘어오게 만드는 글 솜씨를 갖고 싶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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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끌리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계속 읽게 만든 건 인터넷에 떠도는 '글쓰기 책의 고전'이란 수식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보물 찾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몇 년 전 책을 읽다 그만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 대한 팁을 얻고자 혈안인 내게 주야장천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을 지켜보는 일은 꽤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 저렇게 멋지고 훌륭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궁금해 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홀어머니 밑에서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지냈다. 엄마는 항상 일을 하러 나가야 했고, 아홉 살 즈음 귓병을 앓아 근 1년간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환경 덕에 그 역시 학창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이는 스티븐 킹이 대학에 가고 인생의 동반자 태미를 만나 결혼할 때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어린 스티븐 킹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는 때가 더 많았다. 가난과 부모의 부재가 비극으로 귀결되는 일반적 정서와 달리 그에겐 그 무엇도 결핍의 향기를 풍기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입담 덕분인지 그의 성장 과정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고 유쾌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답게 그 역시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다. 놀라운 건 어린 시절부터 습작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도 어린이 독서광은 많지만 글 쓰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9살 때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고 모방작을 썼다. 첫 독자는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스티븐 킹의 글을 읽고 깜짝 놀라 폭풍 칭찬을 한다. 하지만 그의 글이 베낀 것임을 안 그녀는 '기왕이면 너의 이야기를 써봐라'라고 조언한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이야기'를 썼고 엄마는 책값으로 25센트를 주었다. 엄마의 조언과 격려는 분명 그를 계속 쓰는 사람으로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 그는 자신이 만든 소설을 친구들에게 팔며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는다. 선생님들의 배려로 모 잡지사에 연재 아르바이트도 하고 형과 함께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일상과 놀이는 글쓰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꾸준함과 재능이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드는 열쇠가 아니었을까?

난 어린 시절부터 싹수가 달랐던 스티븐 킹의 재능과 꾸준한 습작 열정에 풀이 죽었다. 하지만 그 즈음 자연스레 글쓰기 팁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는 수필, 에세이보다 소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는 일단 진지한 자세로 나만의 '연장통'을 구비하라고 말한다. 연장통은 목수였던 그의 이모부와의 일화와 함께 등장하는데, 집을 잘 짓기 위해 망치, 못, 드릴 등 여러 가지 연장이 필요하듯,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에게도 연장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작가의 연장통은 낱말(어휘), 문법, 문장, 문체, 형식, 문단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어휘력을 높이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역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어 '창작론'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불의의 교통사고와 함께 '인생론'으로 끝을 맺는다. 딱딱한 챕터의 제목과 달리 그의 창작론과 인생론 역시 술술 익힌다. 산책 중 온몸이 으스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소설 같았다. 하지만 소설 같은 그의 이야기는 의외로 상당히 실용적이다.

나는 그의 직설적인 조언에 몇 번이나 가슴이 뜨끔했다. 가령, "수동태의 글을 남발하는 사람은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다, 부사를 남발하는 글은 결코 멋진 글이 아니다, 독자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생략된 부사를 상상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주제를 관통하지 않고 길기만 한 글은 독자의 시간을 갉아먹을 뿐이다"라는 지엽적인 부분에서부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만 있지 과연 나는 진지한 자세로 실천하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까지.

마지막 챕터에서는 그와 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어 기뻤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산책 중 승합차에 받혀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척추는 물론 다리 곳곳이 파열돼 다섯 번의 마라톤 수술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아내의 보살핌과 그의 끊임없는 재활 의지 덕에 다시 글 쓰는 단계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의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켜 준 건 글쓰기에 대한 의지였다. 그의 몸은 온전하지 못했지만 책을 완성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은 강건했다. 글을 쓰고 창작하는 동안은 현재의 자신을 깡그리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글 쓰는 일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과의 정신 감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생사를 오가는 치료 과정 중 불쑥 글쓰기를 떠올렸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아직 병원을 오가며 그 불청객과 고군분투 중이지만, 세상에 내가 알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책이 있고, 나도 무언가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괴롭지만은 않다. 

스티븐 킹이 그랬듯,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불씨 하나가 내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고 행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단순한 글쓰기 실용서를 넘어 치유의 힘을 주었다. 누구든, 어떤 상황에 있든 자기가 진정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그래서 나 역시 행복하다.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하는 데도 나쁘지 않다. 땅 속에 깊숙이 박혀 있던 화석처럼 나에게 진정 행복한 일이 뭔지 힌트를 얻었으니까.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p.309)
 

태그:#스티븐킹, #유혹하는글쓰기, #글쓰기책, #병원,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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