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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를 부르는 월정리 해녀들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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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리 해녀들이 2월 1일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부르며 활짝 웃었다.

1월 30일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김정숙 수석부장)가 월정리 해녀들과 주민들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공공하수도설치(변경)고시 무효 확인 소송에서 고시가 위법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판결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부하수처리장의 용량을 1일 1만2000톤에서 2만4000톤으로 늘리는 증설 공사는 위법한 공사가 되었다.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 

하수처리장을 둘러싼 월정리 해녀들의 반대 투쟁은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6년 월정리에 하수처리장이 건설된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와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가 2025년까지 하수처리시설 용량을 최대 1만2000톤으로 운영할 것이고 추가로 증설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자, 공익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하수처리장 건설을 받아들였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1997년 6000톤 규모의 동부하수처리장 공사가 시작되었고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2005년 거문오름게 용암동굴계의 일부인 용천동굴이 발견되었다. 용천동굴은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던 2007년에는 동부하수처리장도 완공되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용천동굴의 하류구간이 발견되어 2011년 문화재 구역으로 확대 지정되어 관리되는데 용천동굴 하류 구간은 동부하수처리장과 200여 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한편 제주도는 하수 발생량이 늘어나자 2014년 동부하수처리장의 처리 용량을 기존 6000톤에서 1만2000톤으로 증설하는 공사를 했고 월정리 해녀회는 하수처리장 처리용량이 늘어나면서 바다의 오염도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7년 제주도는 동부하수처리장 2차 증설 계획을 세운다. 이는 2015년 이후 관광객과 이주민의 급격한 증가로 도두를 비롯한 기존 하수처리장의 처리 용량이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정리 마을회는 마을 총회를 통해 증설 반대 입장을 결정하고 반대대책위를 꾸려 강력하게 반대 활동을 벌였고 이에 증설공사를 착공했던 제주도는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원희룡 당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역시 2018년 도청 앞에서 수차례 집회를 열면서 반대 입장을 밝히는 마을회와 해녀회에게 구두 약속을 통해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증설공사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임기 중인 2021년 증설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약속을 뒤집고 증설공사를 재개한 것에 대해 항의하며 마을회와 해녀회는 하수처리장 입구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24시간 농성을 하며 공사 차량 등을 막아섰다.
 
▲ 2023년 5월 19일 동부하수처리장 앞에서 집회하는 해녀들과 시민들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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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한 뜻으로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 목소리를 내왔는데, 2022년 7월 공사업체가 증설 반대 시위 시 500만 원씩 배상하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고 같은 해 11월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해 공사 방해 반대 시위 시 1인당 100만 원씩 배상하라고 결정하면서 그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다.

특히 마을회는 반대시위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받을 금적적 피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해 12월에 제주도와 증설공사 관련 협의체 구성에 동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해녀회는 증설공사에 대해 반대 입장을 유지하며 시위와 기자회견, 공사장 앞 농성을 이어가는 한편 공사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대부분 60세 이상으로 고령인 월정리 해녀들이 결사적으로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에 반대하며 저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지난 2023년 5월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하수처리수 혹은 오염수로 인해 월정리 연안 바다가 급격히 변화되어지는 것을 몸소 체감하는 해녀들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지경으로 생활터전인 바다가 죽어가고 그로 인해 해녀들의 생존권이 박탈당하는 것을 더 이상 당할 수 없다"며 수년간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를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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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5월30일 기자간담회 .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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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 무효를 주장하는 이유 

소송을 제기한 해녀들은 사업 고시가 무효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증설 사업 허가 신청 시 인근에 있는 용천동굴 누락 및 문화재위원회 심의 없이 보고로 대체한 점 등 구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

둘째,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아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했다.

셋째, 증설로 인한 공익보다 환경권, 재산권 등의 침해가 더 크므로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배된다.

넷째, 1996년 하수처리장 건설 당시 제주도가 1만2000톤 이상의 추가증설은 없을 것이라 확약했음에도 이를 어겼기에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한다.

다섯째,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나 보존상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업이 진행될 때마다 구체적인 보고서와 영향 연구를 제출해야 한다'는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따른 보고서 제출과 영향 연구 제출을 제주도가 하지 않았다.

여섯째, 제주도는 고의로 하수처리시설 부근의 세계유산 완충구역을 축소하여 하수처리시설 일부만 세계유산완충구역에 포함하도록 하였기에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을 위반하였다.

일곱 번째, 하수처리시설의 반응조 시설이 건축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건축물이므로 이와 연결된 증설공사도 불법이다.

이에 대해 피고인 제주도는 해녀와 주민으로 구성된 원고들이 하수처리장 증설로 인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 없으므로 원고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재판부는 '공공하수처리시설이 위치한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지역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에 포함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보이므로, 위 지역 내 주민들에 대하여는 환경상의 이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있는 것으로 사실상 추정할 수 있다'며 최근 월정리로 주소지를 옮긴 1인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원고자격을 인정하였다.

제주지법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누락했기에 사건 고시는 무효"

또한 해녀들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고시 이전까지 이 사건 증설사업에 대하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되지 않은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고시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누락한 하자가 존재하고, 이러한 하자는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이고 객관적으로도 명백한 것이므로, 이 사건 고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1997년 2만4000톤/일로 증설하는 계획까지 포함하여 사전환경성검토협의를 완료하였기에 문제가 없다는 제주도의 주장에 대해서 법원은 당시 고시가 하수처리시설 처리 용량을 1만2000톤/일로 명시하고 있기에 2단계 계획인 2만4000톤/일에 대한 환경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고 1만2200㎡에 달하는 2단계 증설 면적의 규모가 상당하기에 증설사업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며 제주도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사건 고시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누락한 하자가 존재하고, 이러한 하자는 중대·명백하므로, 이 사건 고시는 무효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고시의 위법함을 인정하는 이상, 원고들의 나머지 주장에 대하여는 더 나아가 살피지 않는다'고 최종 판단했다.

즉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지 않은 위법성이 분명하기에 나머지 여섯 가지 주장에 대해서 검토하지 않고서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른 주장들까지 검토했다면 더 많은 문제들이 떠올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항소 절차 밟을 것, 1심 패소로 공사 중단은 무리"


이 판결 결과에 대해 해녀회는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고 있지만 정작 제주도 당국은 항소와 동시에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판결 직후인 2월 1일 제주도청 출입 기자단과의 차담회 자리에서 "판결에 대한 분석 후 항소 절차를 밟겠다. 1심 패소로 공사를 중단하는 건 무리"라고 밝혔다.

이러한 제주도의 강경한 입장은 제주도의 흉물로 자리잡은 '예래휴양형주거단지개발'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2005년 개발사업이 승인된 이후 부지조성 공사를 시작했던 이 사업은 2015년 대법원이 유원지 사업 인가 처분 무효와 함께 토지 강제 수용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되었다. 

대법원은 서귀포시의 유원지 사업 인가 과정에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무효라고 최종 확정판결하였고 이 판결은 2009년 1심과 2011년 2심 선고 내용을 대부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인가 당사자인 서귀포시와 사업 시행자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1심과 2심에서 인가과정이 무효이기에 토지의 강제 수용도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2013년 콘도와 상가를 짓는 공사를 착공하는 등 무리수를 두어 2015년까지 공사를 진행하였고 공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 후에야 전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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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물로 남아있는 예례휴양단지 .
ⓒ 카카오맵 스카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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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물로 남아있는 예래휴양단지 .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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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업 부지에는 짓다만 건물들이 흉물로 방치되어 있고 공동사업시행자인 버자야그룹과 제주국제자유도시, 제주도와 서귀포시, 토지를 수용당한 주민들 사이의 각종 소송이 이어졌으며 아직까지 상황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동부하수처리장 문제에 대해 제주도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공사를 강행하고 대법원에서 역시 고시 무효가 인정된다면 공사에 들어간 세금 및 행정의 낭비, 사회적 혼란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태그:#월정리해녀,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예래휴양주거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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