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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회사법인 내포(주) 엄청나 상임이사가 4개월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에 성공한 ‘들깻묵연필’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내포(주) 엄청나 상임이사가 4개월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에 성공한 ‘들깻묵연필’을 보여주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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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들깨로 연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정확히 말하면, 들깨로 기름을 짜내고 남은 깻묵을 활용해 만든 '들깻묵연필'이다.

충남 예산지역 기업인 농업회사법인 내포주식회사(대표 박형, 아래 내포(주))가 갑진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또 다른 친환경 제품 들깻묵 연필을 출시했다.

신상품만이 입점할 수 있다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 지난 8일, '들깻묵 연필'이 소개되자 단 하루 만에 목표액 5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제품 개발을 주도한 엄청나 상임이사는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려면 '와디즈'에 펀딩하는 것이 좋다. 펀딩 기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게 잡아놨는데, 하루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다"며 "환경과 인체에 해롭지 않은 제품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는 가치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었던 셈이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엄 이사에 따르면 내포(주)가 계약재배를 통해 농가들로부터 1년에 수매하는 들깨의 양이 2톤가량인데, 들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의 양이 1톤 정도 된다. 깻묵 제품들을 만들기까지 전량 퇴비로 처리되면서 운명을 다한다. 

엄 이사는 이같은 상례를 깨는 일에 도전장을 던졌다. 출발은 좋은 들깨를 생산하는 농부들이 있어 가능했다. 질 좋은 들깨를 사용해 생들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그냥 퇴비로만 쓰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고 한다.

그는 "남은 깻묵을 볼 때마다 이걸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만으로 시작한 일이다. 처음 아이디어는 커피박으로 이와 비슷한 걸 만드는 것을 봤는데, 그래서 깻묵으로도 만들 수 있겠다고 착안했다"며 "제품화 시도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했다.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제품을 거쳐 정식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4개월 정도 걸렸다. 적정 수분 함유량, 건조 시간 등 농민들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정말 많은 실패를 겪었다"고 제품 탄생 배경을 전한다.

그러는 사이 생물학자, 과학자로부터 커피박으로 만든 제품은 독성 있는 곰팡이가 잘 피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데, 깻묵은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들었고, 이에 엄 이사는 더욱 확신을 하게 됐다. 

기존 플라스틱 제품 대체
 
물과 친환경 첨가물을 섞어 반죽한 깻묵을 추출하는 장비. 여기에 연필 흑심을 끼운 뒤 건조 과정을 거치면 ‘들깻묵연필’이 완성된다. 이어 건조과정을 마친 연필들에 각인을 새기고 포장하면 판매가능한 제품이 된다.
 물과 친환경 첨가물을 섞어 반죽한 깻묵을 추출하는 장비. 여기에 연필 흑심을 끼운 뒤 건조 과정을 거치면 ‘들깻묵연필’이 완성된다. 이어 건조과정을 마친 연필들에 각인을 새기고 포장하면 판매가능한 제품이 된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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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깻묵으로 쓰임을 다했던 깨를 한 번 더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렇게 만든 연필을 깎은 깻묵은 다시 퇴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원선순환에 충실한 제품이고, 환경에 좋지 않은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별도의 코팅이나 일체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 인체에 해롭지 않다. 기존 연필 제작에 쓰이는 나무의 사용을 그만큼 줄이는 효과를 내기에 탄소배출 감소에 기여하는 셈이다. 포장은 FSC인증종이(친환경 녹차지)를 사용해 한 번 더 환경을 생각했다. 

쓰다 보면 환경을 좋아하는 감성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기에 특히 자녀를 둔 가정에서 교육적 가치도 높아 이래저래 좋은 제품이라는 점이 그의 자랑거리다.

여기에 더해 깻묵 제품 판매로 얻은 수익으로 내포(주)에 계약재배 방식으로 깨를 공급하는 소농들에게 시중보다 높은 수매가를 유지할 수 있는 재원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들깻묵 연필' 제품화를 견인했던 중요한 동기다.

엄 이사는 "깨값이 내리면 대부분의 가공업체들이 그 마진폭을 가져가는데 비해 내포(주)는 깨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깨 생산 농민들에게 공정가격으로 수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라며 "시장에선 들깨 1kg을 8000원에 수매하는데 우리는 1만 5000원에 산다. 이제 깻묵 제품을 출시한 단계라 아직 판매 수익이 나진 않았지만, 수익금은 좋은 가격으로 깨를 수매하기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들깻묵으로 연필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가격은 책정되진 않았지만 깻묵으로 윤봉길 의사, 보부상 캐릭터를 형상화 한 열쇠고리도 인상적이다. 분말 형태로 제작해 아이들의 촉감 체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깻묵 점토 분말' 키트는 화학성분이 함유돼 인체에 해로운 '슬라임'을 대체할 만큼 훌륭하다.

일단 연필 제품화에 성공한 그는 깻묵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용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특히 자원선순환의 장점에 더해 기존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걸로 뭔가 활용해 봐야겠는데 자꾸 생각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라며 "농촌에서 많이 쓰이는 플라스틱 포트를 깻묵으로 만들면, 자연도 농민도 이롭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라고 후속 제품을 예고했다. 

'들깻묵 연필'도 참신한 제품이지만, 내포(주) 사무공간 옆에 마련된 작업실에는 또 다른 친환경 생활용품들이 고객들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농촌·농업·농민에 대한 애정 각별
 
깻묵으로 연필 외에 키링, 체험키트 등 다양한 용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회사 작업실에는 최신작 들깻묵연필과 함께 천연 수세미로 만든 각종 친환경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깻묵으로 연필 외에 키링, 체험키트 등 다양한 용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회사 작업실에는 최신작 들깻묵연필과 함께 천연 수세미로 만든 각종 친환경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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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포장 용기를 양말목으로 짠 그물주머니로 대체하고 천연 수세미로 △삼베 수세미 △수세미 타올 △비누 받침대 등을 만들었다. 비누바의 경우 생들기름을 짜내고 마지막에 나오는 기름을 모아 만들었다. 모두 생분해돼 환경에 해롭지 않은 제품들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농사 외에 소일거리도 생겼다.

"수세미도 우리 지역 농민들이 계약재배해 생산한 토종 수세미다. 가위로 재단해 박음질해 만든다. 처음부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며 "특히 국내산으로 만든 업체는 저희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농업회사법인 내포주식회사(봉산면 봉산로 60-2, ☎041-337-0815)는 지난 2013년 농민운동을 하던 '예산군 농민회' 주축으로 설립됐다. 쌀값이 폭락했을 때 농민들이 생산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농민회가 직접 쌀을 팔아보자며 시작한 일이다. 유채 농사도 지어봤지만 경제적으로 법인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2020년부터 지역의 다양한 소규모 가족농들이 계약재배로 생산한 들깨, 참깨를 좋은 가격에 수매한 뒤 '매헌생명창고'라는 브랜드로 들기름을 생산·판매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사를 할 수 있도록 협업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엄 이사는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했다. 첫해엔 일 년 내내 만들어 팔아도 매출이 3500만 원에 그쳤는데 지난해 4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라며 "계속 성장하고 있어 농민들에게 좋은 가격으로 수매할 수 있게 됐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현재 생들기름, 생참기름, 볶은 참기름, 볶은 들기름, 씨앗을 발아시킨 들깨로 짜낸 기름, 몸에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사과 발효한 들기름 등 다양한 종류의 기름을 출시하고 있으며 △자사몰 △네이버 블로그 △쿠팡 △카카오톡 스토어 등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기름 한 병을 사면 앞서 말한 양말목으로 만든 포장 용기에 담아 고객에게 전달한다.

엄 이사는 예산군 농민회 사무국장 출신이다. 대학 시절 농활을 즐겨 다녔고, 졸업 뒤 고향 예산으로 내려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에서 일하며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농민들이 정당한 소득을 보장받으면서 마음 놓고 농사 짓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농업회사법인을 운영하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농민운동인 셈이다.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인한 농촌 인구의 감소로 농촌 현장에서 일할 사람은 점점 줄고,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 대내외적 경제 여건에 따른 생산비가 증가 등 농민들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농촌·농업·농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엄 이사 같은 청년 농부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들깨재활용, #깻묵연필,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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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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