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2 13:29최종 업데이트 24.01.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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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재차 공습을 가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즈미이브 마을이 파괴되었다. ⓒ 연합뉴스


인간에게 과연 보편적 정신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회의하게 만드는 집단적 폭력이나 광기가 있다면,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전쟁이다. 그렇게 말살하고 짓밟고 빼앗으며 '문명'이란 것을 일구고 또 그 문명을 정복하고 약탈한 것이, 지성과 철학을 논해 온 인류의 역사와 한 궤적에 있다. 파괴된 이성이어야 가능한 전쟁이란 학살극이 지금도 이 문명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고, 그것에 우리는 파병으로 참여하거나, 무기로 협조하곤 한다. 지원물품이란 이름으로 전쟁에 쓰이는 물품을 보낸다. 

전쟁이 남의 일은 아니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거나 총격을 해대면 친분 있는 독일의 할머니는 내게 괜찮냐는 안부 메일을 보내온다. 사실 내 나이보다 더 오래전에 이루어진 휴전이라, 전쟁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닌, 내가 사는 이곳 한반도에서도 언제든 발발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은 의식적으로 자각해야 인지되곤 한다.

그러나 명백히 우리는 종전이 아닌 70년 넘도록 휴전 중인 나라,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 속에 살고 있다. 오래전 발발한 전쟁이지만, 끝나지 않은 전쟁의 토막들을 우리는 지뢰 '주의 경고'로 마주하곤 한다. 게다가 어딘지 모른 채 매설되고 유실된 지뢰는 주의 경고를 넘어 때때로 폭발하며 생명의 부분을 잘라낸다. 그렇게 육체와 정신을 앗아가는 지뢰 피해가 해를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닥에 떨어진 '지뢰' 표지판 ⓒ 녹색연합


독일 그뤼네스반트(동서독 접경지역 그린벨트)에 대해 잠시 조사한 적이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영토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의해 분할 편성되다, 1949년 서독과 동독 지역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면서 동서독 간 국경이 형성된다. 초기 동서독 국경은 삼엄하지 않았는데,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가는 사람들의 수가 늘면서 경계선은 철조망과 장벽 등 차단막을 두르게 된다. 게다가 동독 경계 지역 내에는 지뢰 130만 개가 매설되고 부비트랩 6만 개가 설치되어 죽음의 지대가 된 바 있다.

1983년부터 동독은 경계 지역 내 지뢰와 부비트랩을 모두 철거했는데, 매설위치를 정확히 기록해 두었기 때문에 제거에 문제가 없었다는 기록을 보았다. 통일 후 죽음의 경계선이라 불렀던 폭 50~200미터, 길이 1393킬로미터(면적 177㎢)의 동서독 접경지대는 평화와 생명의 녹색선, 녹색지대로 탈바꿈되고 보전된다. 우리는?
     
미확인지뢰지대 202곳

한국전쟁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에 매설된 지뢰는 약 100만 발이다. 2020년 현재 1308곳의 지뢰지대와 약 82만 8000발의 지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합동참모본부). 지뢰지대는 기확인지뢰지대와 미확인지뢰지대로 나뉘는데, 약 200곳이 미확인지뢰지대로 남이있다. 미확인이란 의미는 매설된 지뢰의 종류와 매설량, 매설 위치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전방에 사는 주민들은 일상적으로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지뢰 폭발의 위협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민간인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안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수해복구 중 지뢰 폭발로 다치거나 지뢰 탐지 중 지뢰 폭발로 병사가 부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뢰 사고는 한해도 빠지지 않고 발생해왔고,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파악된 지뢰 피해자는 약 1000여 명이며, 불발탄 피해자를 포함하면 3000여 명에 달한다. 연령별로 30대가 가장 많으며, 놀이나 나들이 중이 가장 많고 땔감 채취와 고물 수집, 농사 중 순이다.
 

우리나라 대인지뢰 매설지도. 주황색 접경지역 지뢰지대, 붉은색 후방지역 지뢰지대 ⓒ 녹색연합


20년도 더 전이다. 2001년 녹색연합은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와 함께 한국지뢰실태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후방지역 36곳의 방치된 지뢰지대를 직접 확인해 그 심각성을 알린 바 있다. 이후 군은 2006년까지 지뢰 제거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9년 녹색연합은 2차 지뢰 조사를 했는데, 군에서 지뢰 제거를 완료해 해제된 지뢰지대는 없었다. 군은 다시 2021년까지 지뢰 제거 완료를 약속했지만, 오히려 지뢰 제거를 통한 지뢰지대 해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 확인될 뿐이었다.


정보공개청구 결과 2020년 '지뢰제거작전'에서 군은 83억 원의 예산으로 430여 발의 지뢰를 제거했을 뿐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1발당 대략 1900만 원의 제거 비용을 들인 셈이다. 더군다나 이 속도라면 지뢰 제거는 요원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뢰제거, 왜 이리 더딘지?

1997년 국제사회는 대인지뢰 사용은 물론 비축, 생산, 이전을 금지하고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도록 하는 오타와 협약을 맺었다. 121개국 서명으로 채택된 이후 164개국이 서명했다. 우크라이나와 나토 회원국 등이 가입한 상황이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북한 등은 가입하지 않았다.

2022년 미국 백악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인지뢰 사용에 관한 정책을 오타와 협약의 주요 사항과 일치시킬 것이라며, 대인지뢰 개발, 생산, 이전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한반도는 안보 상황을 고려해 예외 지역으로 두겠다고 덧붙인 바도 있다.
 

2020년 9월 2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논에서 장병들이 지뢰 등 폭발물을 탐지하고 있다. 이 마을 농민들은 지난달 집중호우에 유실 지뢰가 농경지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위험 속에 추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이른바 지뢰오염국이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을 포함해 55개국 정도가 지뢰오염국에 해당한다.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국가들은 국제연합(UN)에서 개발한 국제지뢰행동표준(IMAS)에 따라 지뢰제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국제지뢰행동표준과 별개로 국방부 단독으로 지뢰 제거를 하고 있다. 문제는 남아있는 지뢰 83만 발 중  2020년 한 해 430여 발 제거라는 실적이 보여주듯, 군 단독 지뢰 제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우선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이 어렵다. 언뜻 군이 기민하게 대응할 것 같지만, 사실상 군 협조를 통해 지뢰 탐지를 할 경우 준비기간만 2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군 특성상 작전 시간 제한 등으로 인해 즉각 대응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전문성도 문제다. 지뢰 제거 병사들은 복무기간 중 지뢰 제거 교육과 제거 작업을 수행하는데, 지뢰 제거 기술을 습득하는데 현저히 부족한 기간이며, 이로 인해 오히려 담당 병사들의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또한 지뢰는 사전정보 수집, 지뢰 제거, 사후검증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군은 지뢰 제거 자체만 수행하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조사가 선행되지 않으며, 지뢰 제거 후에도 완전 제거 검증 작업을 하지 않아 지뢰지대를 해제할 수도 없다.

이와 달리 UN의 국제지뢰행동표준은 지뢰 문제를 국가안보 문제로만 보지 않고, 국가와 전 세계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 지뢰 제거와 전 과정에 필요한 분야별 전문가들과의 협조 및 신속대응체계 구축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국제지뢰행동표준에 입각해 지뢰 제거 나서야
   
이를 위해서는 지뢰제거기본법과 같은 법규 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뢰 등 특정 재래식무기 사용 및 이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지뢰 제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민간인이 지뢰를 포함한 화약류 등을 만지거나 해체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 지뢰 오염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 지뢰 전문 활동기구나 민간 전문가들이 국내에서 지뢰 제거 활동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전쟁잔류폭발물의 처리 등에 관한 훈령'에서는 잔류폭발물 제거 및 폐기 권한을 국방부 단독권한으로 두고 있다. 지뢰 제거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민간 지뢰 전문가의 활동을 차단하거나, 국방부 단독권한으로 두고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해 온 현재 법규들은 오히려 신속하고 안전한 지뢰 제거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국가지뢰대응기본법'과 같은 법률을 만들고 지뢰 제거를 위한 국제지뢰행동표준을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담아 관련 법률이 발의된 지 2년이 흘렀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 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이제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는 점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 지뢰, 방치할수록 유실 등으로 인해 위험을 가중시키는 지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살상무기 지뢰 제거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법률이 조속히 제정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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