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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낮 일본 시가현 고노(滋賀県蒲生郡日野町小野)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마을 회관 안 방 가운데 충청남도 은산면 이기배 면장님 글씨가 표구에 넣어 잘 모셔져 있었습니다. 

은산백과만년복 
소야오곡천대집 축 고노회관준공 기념 서기 2000년 봄, 대한국인 은산면장 이기배 


은산의 백 가지 과일이 만년에 걸쳐서 복되고, 고노(小野)의 오곡은 천대에 걸쳐서 모아진다. 
  
         충청남도 은산면 이기배 면장님의 글씨가 고노 마을 회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충청남도 은산면 이기배 면장님의 글씨가 고노 마을 회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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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은산면과 일본 시가현 고노 마을 두 지역의 풍요로움이 천만대에 걸쳐서 복되고 풍성하게 모아진다는 덕담입니다. 두 마을은 왜 이렇게 서로 풍요로움을 빌어주는 사이로 가까워졌을까요?

668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일본과 백제 부흥군의 필사적인 노력과 전투가 있었지만 백제가 다시 일어서지 못합니다. 이때 백제 귀족들과 백성 수만 명이 일본행 배를 타야 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렇게 건너온 백제 사람들을 문화인이라고 대접하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고, 집단으로 살 수 있는 땅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고노 마을에 있는 귀실신사 정면입니다. 건물은 아담하고 둘레는 나무로 둘러싸여있습니다.?
  고노 마을에 있는 귀실신사 정면입니다. 건물은 아담하고 둘레는 나무로 둘러싸여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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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조정은 나당 연합군이 조선 반도를 통일하고, 여세를 몰아서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라에 있던 도읍지를 시가현으로 옮겼습니다. 지금도 시가현에 오츠교(大津京)라는 땅이름은 그때 생겼습니다. 그리고 당시 건너온 백제사람들도 시가현 고노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시가현 고노 마을에 있는 귀실신사는 당시 백제 귀족 귀실집사(鬼室集斯)의 무덤과 그 영혼을 모신 사당입니다. 지금도 신사 건물 뒤 뜰에는 돌로 만든 돌무덤이 있고, 돌무덤 안에는 귀실집사 위패가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귀실신사 건물 뒤에 모셔져 있는 돌 무덤입니다. 이 무덤 안에 돌 위패에 귀실집사 무덤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귀실신사 건물 뒤에 모셔져 있는 돌 무덤입니다. 이 무덤 안에 돌 위패에 귀실집사 무덤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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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은산면 별신당에는 복신장군의 영혼을 모시고 그 영혼을 위무하는 별신제가 이 년마다 한 번씩 열립니다. 이 복신장군(福信將軍)은 귀실집사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 복신장군과 귀실집사의 사이가 알려져 충청남도 은산면과 시가현 고노 마을은 2002년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 찾아가면서 교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충천남도 부여군 은산면 이기배 면장님 글씨 속에는 668년 이후 서로 떨어져 살다가 묻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어서 두 지역이 서로 발전하면서 풍요롭게 관계를 이어가자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핏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집사정, 은산면과 교류 20년 주년을 기념해서 2022년 고노 국제교류위원회에서 성금을 모아 한국식 6각 지붕으로 지었습니다.?
  집사정, 은산면과 교류 20년 주년을 기념해서 2022년 고노 국제교류위원회에서 성금을 모아 한국식 6각 지붕으로 지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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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법> JR오사카역이나 교토에서 비와코센 전차를 타고 구사츠(草津)역과 기부카와(貴生川) 역에서 갈아타고 히노(日野)역에서 내려 고노(小野)행 버스를 타고 갑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귀실신사, #은산면, #시가현, #고노마을, #집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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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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