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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플랜 없이 철거부터?… "신중한 접근 필요" 
 
과거 예산군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옛 충남방적주식회사 예산공장 담벼락을 따라 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고 있다.
 과거 예산군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옛 충남방적주식회사 예산공장 담벼락을 따라 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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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폐쇄 뒤 23년 동안 방치된 상태로 지역의 흉물이 된 옛 충남방적주식회사 예산공장(아래 충방)은 한 때 예산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업의 공장이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녹슨 철문으로 굳게 잠긴 적벽돌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 스산한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여기에 더해 신례원의원 건물 뒤 옛 충방 직원 숙소 자리에 짓다만 아파트 건물은 충방 공장 건물과 함께 주민들의 골칫 덩어리다. 또 요즘 한창 활기를 띠고 있는 예산상설시장, 삽교곱창거리와 상대적으로 대비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실망감은 더 깊어진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예산군이 충방 관련 정부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충방 자리가 개발된다는 소식에 신례원 주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사람마다 기억의 차이는 있지만 '잘 나가던 시절'의 충방 직원 수가 3000명에 달할 정도로 창소리와 신례원리 일대의 활력소 역할을 했던 충남방적이었기에 이를 선명히 기억하는 주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잡한 심경을 내비친다.

공장과 직원 기숙사가 연결되는 길목에 위치한 충방 정문 왼쪽 골목엔 상가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내부 콘크리트 골조까지 드러낸 빈 가게들도 있다.

마침 골목을 지나가던 한 어르신(72, 창말로)은 "충방이 살아야 이 동네도 살텐데"라며 "공장이 한창 돌아갈 때는 여기가 읍내 명동거리처럼 밤에도 번쩍거리던 동네였다. 이불, 화장품, 겉옷·속옷, 생활용품 가게들이 있던 곳이다. 월세집도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최혜영(67) 벧엘세탁소 주인도 당시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이곳에서 1985년부터 벧엘의상실과 잡화점을 운영하다가 1995년에 세탁소로 전환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씨는 "이 골목이 기숙사로 연결된 출퇴근 길이었다. 당시 충방에서 운영하는 실업학교도 있었기 때문에 여직원들의 나이가 주로 17~23살 됐던 것 같다. 3교대로 출퇴근하는 직원들로 북적됐던 골목이었다"며 "옷가게, 치킨집, 튀김집, 라면집, 탕수육 전문식당, 금은방, 그릇가게, 도장가게, 인문서점도 있었는데, 충방이 문을 닫으면서 하나씩 없어졌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부터 충방 정문 앞 길 건너편에서 대명슈퍼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70대 중반의 가게 주인은 전성기와 사양길에 있던 충방의 상황을 전한다.

그는 "충방이 평생 가는 줄 알았지, 이렇게 문 닫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잘 돌아갈 때는 2500명 가량의 여직원들이 이 앞 거리를 지나 다닐 정도였다"며 "무엇보다 이종성 회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국민당 부총재까지 지냈던 사람인데, 낙선되자 지역 주민들을 향한 배신감이 상당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상가 주인도 이와 비슷한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는 주민들 사이에 정설로 통하는 듯하다.

충방의 전성기 시절을 곱씹어봐야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법,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야할 지역주민들은 예산군이 충방 부지를 개발한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며, 폐허가 되다시피한 공장 자리에 새로운 희망의 꽃이 피어나길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농촌공간정비사업'에 예산군이 신청한 충방부지 내 유해시설 철거 사업이 지난해 2월 최종 확정되면서, 예산군의 난제 하나가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농촌공간정비사업은 농식품부가 선정한 지자체별 농촌공간전략계획을 바탕으로 농촌지역의 축사, 공장, 빈집, 장기방치건물 등 난개발 요소를 정비하고 정주환경개선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1년 공장 폐쇄 뒤 23년이 넘도록 방치된 충방 부지와 건물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애물단지였다. 각종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마다 충방 개발 방안을 단골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쳤던 것에 비추어보면, 지난해 군이 '쾌거'라고 홍보할 정도로 충방 개발을 위한 정부 재원을 확보한 것은 그동안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던 예산군의 입장에선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이고, 움츠렸던 지역 주민들에게도 희망의 기지개를 펼 소식이다.

충방 부지 개발 가시화... 환영하되 접근 신중히
 
지난 2001년 문을 닫은 뒤 23년 동안 방치되면서 골목 상가들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01년 문을 닫은 뒤 23년 동안 방치되면서 골목 상가들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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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2023~2027년 5년 동안 농촌공간정비사업 180억 원(국비 90억 원, 도비 27억 원, 군비 63억 원)과 부지 매입에 따른 별도 군비 216억 원 등 총 396억 원을 들여 지난해부터 부지매입과 기본설계 등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사업 내용이 충방부지 내 슬레이트 폐공장을 전부 철거한다는 것이어서, 지역사회 일각에선 군의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단 군 관계자는 "공장 철거는 사업비 확보를 위한 공모 선정을 위해 제시했던 것이다"라며 "충방에 무엇을 어떻게 넣을지에 대해 주민 의견을 들은 뒤 이를 바탕으로 용역을 통해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충방을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이음창작소에서 열린 '도시재생 포럼'에 모인 군내 도시재생 실무 경험자들과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충방 개발을 성급히 추진하는 것에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최대한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테마를 더하거나 공장 건물 1동 정도 남기고 나머지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 등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구동성으로 기존 충방 건물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포럼을 준비하기 위해 충방 인근 창소리 마을 주민들을 취재했던 유삼형 예산군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주민들도 예산군도 잘못한 게 아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여파로 충남방적이 문을 닫은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형무소 담벼락도 이것보다 멋있겠다는 말을 한다. 불안과 불편이 내면화돼 있고,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도 읽힌다"며 "어느 누군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행정을 포함해 지역사회가 바람직한 해법을 함께 찾자"라고 호소한 바 있다.

신암면에 거주하는 70대 어르신은 "충방을 어서 살려야 신례원도 살고 예산도 살 수 있다. 다만 바로 옆에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환경유해업체 말고 건설적인 사업체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굳이 철거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충방 정문 앞에서 1986년 개원해 38년 동안 신례원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현순(74) 원장은 "충방이 탄탄하게 지은 건물로 알고 있다.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철거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라며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미술관, 박물관, 전시관을 조성하는 추세인데, 충방 자리를 자연사 박물관 같은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이리저리 엉킨 충방 해법의 실마리를 붙잡은 군의 올해 행보가 과연 희망으로 풀릴지, 청룡의 해를 보내는 예산군민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충남방적, #도시재생,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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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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