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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 5주기를 고작 4일 앞둔 지난 12월 7일, 대법원은 태안화력발전소 경영진의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항상 열려있었던 컨베이어 덮개부터 2인 1조 근무 지침 미준수까지. 사망의 원인이 된 작업 환경을 '구체적으로 몰랐다'라는 이유로 원청 대표이사, 고위 경영진, 그리고 법인 모두에게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나마 산재유가족과 피해당사자, 노동계,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김용균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지만, 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논의가 지속되는 상황,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가 비평했습니다. - 기자말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 2023년 12월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 2023년 12월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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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심 : 대법원 제2부 천대엽(재판장), 민유숙, 이동원(주심) 대법관 2023.12.7. 선고 2023도2580
2심 : 대전지방법원 제2형사부 최형철(재판장), 유제민, 김명수 판사 2023.2.9. 선고 2022노462
1심 :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박상권 판사 2022.2.10. 선고 2020고단809

그날, 김용균은 혼자였다

그는 1994년에 태어났다. 외동아들이었다.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일이 크게 없이 잘 자라서 군대까지 다녀오고, 대학 졸업 후에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아래 '태안화력')에 입사했다.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나 입사하고 3개월 만인 2018년 12월 10일 밤, 일터에서 '끼임사'로 사망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목 부위의 외상성 절단"이다.

태안화력에서는 석탄으로 불을 때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요약하면 ① 발전소 안에 있는 부두까지 배가 들어와서 석탄을 내려준다, ② 컨베이어를 이용해서 석탄을 옮긴다, ③ 이 석탄으로 불을 때는 것이다. 컨베이어의 전체 길이는 10km가 넘고, 초속 4.3m, 시속 약 15.6km로 움직인다. 상상해 보자. 석탄을 실은 컨베이어가 눈 깜짝할 새 4.3미터를 움직인다. 여기에는 굉장한 힘이 필요하고, 실수로 끼일 경우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컨베이어는 석탄을 계속해서 실어 나르므로, 항상 탄가루(분진)로 가득하고 소음도 크다.

용균씨의 업무는 "현장운전원"이었다. 그는 컨베이어 근처를 도보로 순회하면서 설비 이상을 점검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에 보고하며, 수시로 컨베이어 근처에 떨어진 석탄(낙탄)을 치우는 일을 했다. 컨베이어는 커다란 함으로 쌓여있고, 이 함에 뚫려진 구멍(점검구)을 통해서만 설비를 점검할 수 있으며, 이 구멍에는 덮개가 있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컨베이어에 사람이 끼일 일이 없다. 그러나 덮개를 열고 닫으며 작업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으므로 덮개를 없앤 상태로, 다시 말하면 덮개가 항상 열려있었다.

즉 언제든지 사람이 끼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환경이었다. 이 경우를 대비해서 '풀코드 스위치'를 작동하면 컨베이어가 멈추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몸이나 작업복이 끼인 사람이 이를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2인 1조 근무가 필수적이었고, 회사 지침상에도 있었다. 그러나 2인 1조를 구성하기에는 하청업체에 내려지는 인건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용균씨는 혼자서 어둡고 분진이 날리고 시끄러운 컨베이어 인근을 도보로 순회하던 중, 설비의 이상을 느끼고 점검구를 통해서 점검하던 중에 옷이나 신체가 끼어서 사망했다. 동료들은 용균씨가 연락을 받지 않자, 주변을 찾아 헤매다가 몇 시간이 지나서야 그를 발견했다.

제1심과 제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달라진 판단

모든 심급에서 원청인 서부발전 대표이사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제1심은 원청 법인을 비롯하여 대표이사를 제외한 원청의 고위 경영진, 그리고 하청 법인과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에게는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제2심과 대법원은 원청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원청 법인과 고위 경영진에게도 무죄판결을 내렸다.

왜 달라졌을까. 제1심에서는 ① 컨베이어 외함의 덮개를 제거한 상태로 아무런 방호 설비 없이 작업을 하도록 한 점, ② 끼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므로 2인 1조 작업이 필요했지만 단독으로 작업하게 한 점, ③ 컨베이어가 고속으로 작동되는 상태에서 점검 작업을 하도록 한 점이 문제이고, 용균씨의 죽음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제2심에서도 ③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이 모두 문제이고, 죽음에 기여했다고 보았다.

문제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였다. 제1심에서는 서부발전 본사의 기술안전본부장이나 태안화력 본부장 모두 재직 당시에, 이전에 발생했던 컨베이어 끼임 사고를 알았고, 끼임의 위험성에 관해서도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았으므로 용균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하청 대표이사도 마찬가지의 논리로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2심에서는 서부발전과 하청사 모두 규모가 크고 작업 인원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이 컨베이어 작업의 위험성을 '추상적으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용균씨와 같은 "현장운전원"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러한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없고, 다만 그 아래의 실무자급은 구체적으로 위험을 알고 있으므로 처벌받는 것이 맞다고 판결했다.

남은 것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적어도 이 사건과 같이 '구체적으로는 몰랐다'라는 이유로 원청과 고위경영진이 처벌을 피하는 일은 앞으로는 줄어들 것이다. 용균씨 어머니를 비롯한 산재유가족과 피해당사자, 노동계, 그리고 넓게는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2가지 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로 원청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김용균법', 즉 2019년 1월 15일 자로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이 있다. 둘째로, 원청 대표가 원하청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아래 '중처법')이 2021년 1월 26일에 통과되었다. 다만 형벌규정은 소급적용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두 법은 이 사건에 적용될 수는 없다.

개선된 점은 분명히 있으나, 여전히 더 개선되어야 할 점도 있고, 반동과 퇴행의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안전수준을 높이는 문제는 곧 생산방식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고, 이는 이익과 직결된다. 개정 산안법과 중처법 덕분에 대표가 처벌될 위험도 높아졌다. 따라서 기업은 산안법과 중처법을 둘러싼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윤석열 집권 후에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이들은 ① 중처법상 의무의 완화, ② 중처법상 처벌에서 징역형 삭제, ③ 안전인증을 받을 경우 기소와 처벌에서의 면제 등을 요구했다.

가장 최근에 문제 되는 것은 50인 미만 기업(50억 원 미만의 공사)에 대한 적용 재재(再再)유예다(여기서 '재재'는 오타가 아니다). 이 법은 2021년 1월 26일 제정되며 1년 이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50인 미만 기업 등은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년을 더 유예해서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또 2년을 유예해서 법 제정일로부터 5년이 지난 2026년 1월 27일부터 적용하자는 것이다. 유예에, 유예에, 또 유예를 더하자는 것이므로 재재유예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여기에 민주당은 3가지 조건(▲ 정부 측 사과, ▲ 2년의 재재유예기간 동안 계획과 예산 마련, ▲ 경영자 단체의 이행 약속)이 충족되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 중처법 재재유예는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 선언'이다. 그리고 도대체 지난 3년간 무엇을 했기에, 이 법을 대비하기 위해서 2년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현재 정부·여당이 집권 직후부터 중처법을 완화하겠다는 식으로 군불을 때어왔기 때문에 소규모 사업장의 준비가 늦어진 점도 있다. 또한 이 법이 통과된 이후 지난 3년 중에서 1년 4개월은 민주당 정권이었으므로, 민주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애초에 재유예가 끝나는 시점이 총선을 앞둔 24년 1월이었으므로, 민주당이 여론 악화를 우려해서 재재유예에 동의할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으므로 이는 예고된 촌극이다.

2022년 산재 사고 사망자는 874명이다. 1일 2.39명꼴이고, 영업일(주 5일) 기준으로 보면 평균 3.34명이 사망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중에서 80%의 사망자는 50인(50억 원) 미만 기업 소속이다. 태안화력에서도 용균씨 사망 이전의 6년 동안 59명의 산재피해자가 발생했는데,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하청 소속이었다. 물론 엄한 처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가 법적용에 차별을 두어선 안 된다. 이는 국가가 더 열악한 노동자들을 무관심하게 방치한다는 사인을 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태그:#참여연대, #판결비평, #김용균, #하청노동자,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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