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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감독의 다큐 영화 <1923 간토대학살> 시사회
 김태영 감독의 다큐 영화 <1923 간토대학살> 시사회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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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00년 전의 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로 옮기는 페치카들"에서 이어집니다)

"저도 누군가의 페치카가 되어야겠어요."

지난 번 글에 이런 댓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없애줄 수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지만 그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것, 최대한 끝까지 붙들어 주는 것 그것이 영성이자 누군가의 페치카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고는 모른 척하지 않는 것, 그것이 페치카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김현성씨는 100년이나 지난 일임에도 기꺼이 페치카가 되어 지난달 24일, 관동대학살 다큐 영화 제작의 후원 공연을 했고, 김태영 감독은 이렇게 각계의 후원을 받아 영화를 만드는 페치카가 되었습니다.

듀오아임(주세페, 구미꼬)은 뮤지컬로 페치카의 불을 지피고, 씨알재단은 100년 만에 첫 추모제를 올린 후 국제사법재판소를 향해 페치카의 불길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저는 저대로 '기록의 페치카'가 되어가고 있고요.

100년 전 무참히 학살 당한 6661명을 더는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최대한 끝까지 기억하면서 그 한과 그 역사를 제대로 붙잡기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페치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 <1923 간토대학살>이 제작되어 내년 4월에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러가는 것이 우리 모두 페치카가 되는 길이겠지요.

유태인은 자기네 역사가 잊힐 만하면 영화를 만든다고 합니다. 2차 대전 때 박해 받은 일이 세상에서 잊히지 않도록 말이죠. 우리도 이제 영화를 만들었네요. 100년 만에 말이죠.

오래 된 일도 아닌데
깡그리 잊어버린 일이 있다.
먼 곳의 일도 아닌데
아득히 제쳐 놓은 일이 있다.
남의 일도 아닌데
누구도 생각 않는 일이 있다.
그러나 언제인가 그런 일은
새록새록 숨어서 숨을 쉬는 법이다.
때만 되면 억세게 튕겨져 나와
만갈래 비사(祕事)를 외치게 한다.
의리가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머리가 나빠서
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좋아서
없는 걸로 해두었던 것은 아니다.
새록새록 그것은
우리 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잊고 싶어도, 까먹고 싶어도
아예 없었던 걸로 해두고 싶어도
그것은 이제 너무도 억세어서
고스란히 잠재울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

/ 간토대학살을 다룬 김의경의 희곡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중에서


지난 금요일 <1923 간토대학살> 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위의 시를 이렇게 바꿔 읽어봅니다. 

잊고 싶어도, 까먹고 싶어도
그것은 너무나 억세어서
잠재울 수가 없다.
그래서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했다.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했다.
뭔가를 했다. 뭔가를 했다.


영화 <1923 간토대학살>은 속된 말로 '이 잡듯 뒤진' 100년의 진실이었습니다. 비사(祕事)를 모조리 담아냈습니다. 이제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간토 100년의 침묵을 깨웠습니다.

영화에는 지난 9월 3일, 씨알재단 주관으로 동경 아라카와 강변에서 100년 만에 열린 추도제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희생자의 유족 및 생존자와 목격자의 증언, 은폐와 조작을 증명하는 각종 문서 등도 영상에 담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 찾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집요한 추적이었습니다. 없었던 일로 덮어둘 수는 없었던 한일 양심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잡듯 뒤졌다는 감상이 가장 컸던 것이죠. 관동대학살에 관한 진실 접근으로는 더 이상의 영화는 없겠다 싶습니다.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태그:#관동대학살, #관동대지진, #1923간토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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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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