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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달라고 보채는 고양이들
▲ 세냥이 아침밥 달라고 보채는 고양이들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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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겨울밤은 흐르는 시간 속에 공간마저 삼켜버리는 듯하다. 바깥은 농도 짙은 어둠 속에 파묻혀 근처의 소나무 숲도 나무도 시커먼 덩어리로만 존재했다. 타닥타닥 토도독. 꽉 닫힌 창을 뚫고 빗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소파에서 튕기듯 일어난 남편이 선룸으로 나가는 창을 열자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비 소식은 없었는데? 뒷마당에 있는 반려견 '두강'이 생각나 퍼뜩 다용도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비를 맞으며 서성대고 있었다. 남편이 서둘러 두강을 주차장에 데려다 놓고 오자마자 천둥 번개와 함께 세찬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생후 6개월에 가족이 된 두강은 차를 쫓아내고 주차장에서 생활하다가 봄부터 뒷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당 살이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돼가는 데도 매번 비만 오면 주차장에 있는 제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 비를 피할 줄 모르는 건지, 즐기는 건지 종종 내리는 비를 그냥 맞고 있는 까닭이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온다니 당분간은 주차장에서 지내게 해야 할 것 같다.

일기예보에 부쩍 귀 기울이는 이유   

벽에 온풍기까지 달아 두었으니 두강의 겨울나기는 문제없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 정작 걱정은 따로 있다. 마당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두리와 두랑이 때문이다.

시골에 살고부터 부쩍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고양이들을 만난 후부터는 더욱더. 2022년 이른 봄 가끔 마당을 드나들던 수컷 고양이 두 마리가 아예 마당에 눌러앉아 두랑이, 두식이라고 이름 지었다. 어느 날 두랑이는 중성화 수술을 한 암컷 한 마리를 데리고 왔고, 애교 많은 여자아이는 두리라는 이름으로 한식구가 되었다.
    
길고양이에게 정을 주며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비가 쏟아지는 밤이나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날이면 조바심에 긴 밤을 보냈고, 녀석들의 안녕을 확인한 아침이면 저절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문득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작년 여름, 태풍 힌남노가 불던 날이었다. 두리와 두랑이의 잠자리는 우리 집 옆의 비닐하우스였다. 주인이 태풍 갈무리를 위해 오후에 하우스 문단속을 했다.
 
두랑이와 보금자리였던 비닐하우스
▲ 창가의 고양이 두랑이와 보금자리였던 비닐하우스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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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두 시를 넘긴 시간,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 마당의 테이블 밑에 오종종하게 붙어 앉아 비를 피하는 녀석들을 보자 아차 싶었다. 갈 곳이 없나 싶어 녀석들을 붙잡아 선룸 안으로 데리고 오다 놓쳤다.

퍼붓는 빗속으로 사라진 녀석들을 한 시간도 넘게 찾다가 나는 흠뻑 젖은 채 들어와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태풍이 위력을 뽐내며 태양광 패널을 부수고 썬룸 유리지붕을 산산조각 냈다. 패널 두 개는 마당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한 시간 후, 언제 그랬나 싶게 말간 하늘에 태양이 비추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닐하우스를 향해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냐옹' 하며 털끝 하나 젖지 않고 뽀송한 얼굴로 밥이나 달라고 빤히 쳐다보는 눈망울을 보는 순간, 태풍 뒤 아수라장이 된 집 꼴에도 웃음이 나왔다.

올봄이 되면서 고양이들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두식은 오월에 고양이별로 떠났고,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두랑은 걸핏하면 집을 나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며칠 만에 돌아오곤 했다.

유월의 마지막 날. 반려견 두강이 짖는 소리에 휴대전화로 CCTV 화면을 확인하던 남편은 고양이 두랑이 왔다고 했다. 쏜살같이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일주일 만이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침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들어왔다.

뒷발 하나 피범벅돼 온 두랑
 
▲ 발을 다친 두랑이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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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고양이 밥을 챙겨 주러 나갔다가 두랑의 발은 본 나는 비명을 질렀다. 왼쪽 뒷발의 발가락이 뭉텅 잘려 나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전날 밤엔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끔찍한 일을 겪고도 고통을 무릅쓰고 집을 찾아 돌아온 녀석이 안쓰럽고 대견했다. 앞뒤 가릴 것 없었다. 이대로 두면 더운 날씨에 상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지퍼 달린 장바구니에 녀석을 넣어 병원에 데려갔다. 마취 주사를 놓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발가락 세 개가 잘려 나갔다. 의사는 2주간 효과가 지속되는 항생제 주사를 놔주었다. 상처가 곪으면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해야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두랑은 의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하루에 두 번 꼬박꼬박 밥을 먹으러 왔고 그때마다 내가 조심스럽게 소독약을 발라 주었다.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물었고 평생 다리를 절뚝이며 살 줄 알았던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두랑의 움직임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길고양이의 삶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니 정말 녹록지 않다. 길에서 아깽이(아이 고양이)로 태어나 성묘가 될 확률은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 자란 녀석들조차 수명이 3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굶주림, 질병, 영역 다툼, 게다가 사람들의 학대까지.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바깥 생활을 하는 고양이들의 좀 더 안전한 삶과 인간과의 공존을 위한 방법은 뭘까.         

길냥이 겨울밥 주는 법 
 
사마귀를 보고 장난치는 두랑이와 두리
▲ 장난치는 고양이 사마귀를 보고 장난치는 두랑이와 두리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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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이 녀석들과 보내는 두 번째 겨울이다. 걱정되는 마음과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작년 겨울 고양이들에게 옷을 더 입혀 보기도 했고, 겨울 집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녀석들은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뭔가를 했다'는 내 만족뿐이었다. 올해는 좀 더 영양가 있는 사료와 좋아하는 간식을 듬뿍 준비해 두었다. 길고양이들은 겨울이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더 불린다.

혹시라도 길고양이를 처음 돌보시는 분들은 겨울엔 사료 양을 좀 넉넉히 주고 물이 얼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실패했던 두랑이의 TNR(중성화)을 다시 시도할 생각이다(TNR : 길짐승을 포획(Trap)해 중성화(Neuter)한 다음 방사(Return)하는 것을 말한다. 생식 기능을 제거하는 중성화 수술을 통해 대상 동물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 목적이다).

두랑을 위해 최선일지는 모르나 두랑의 '길 위의 삶'을 멈추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위험할 것 같다. 그동안은 날이 따뜻했지만 이번 주말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삶은 없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관심밖에서 소외된 묘생을 사는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온 힘을 다해 산다.
- 고양이 사진작가 이용한 저서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중에서

모진 추위에 사람도, 고양이들도 너무 힘겹지 않게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양아, 너의 삶을 응원한다. 

태그:#고양이, #길고양이, #길냥이겨울나기, #추위걱정, #길고양이보살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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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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