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통 글을 쓰거나 단순 업무를 할 때는 음악을 들으며 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면 효율이 조금 더 오르는 것 같다. 특별히 선호하는 음악이 있는 건 아니라서 유튜브에서 '공부할 때 듣는 음악' 또는 '일할 때 듣는 음악' 등을 검색해서 듣는다.

그러나 졸릴 때 듣는 음악은 따로 있다. 졸릴 땐 'KBO(한국야구위원회) 응원가'를 듣는다. 유튜브에서 'KBO 응원가'를 검색하면 2023년 10개 구단의 중독성 강한 응원가를 편집한 영상이 좌르륵 뜬다. 그중 하나를 클릭해 들으면 언제 잠이 왔었나 싶게 정신이 번쩍 든다.

졸릴 때뿐만 아니라 유독 기운이 없거나 우울할 때 들어도 효과가 있다. '그래, 힘을 내보자. 해 보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왜냐하면, 응원가의 특성상 모두 하나 같이 경쾌한 멜로디에 희망찬 가사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한 단어 단어마다 팬들의 염원이 가득하다.

'안타 안타 쌔리라 쌔리라 롯데 전준우!'
'노시환!상적으로 날려줘요, 환!상적으로 날려줘요~'
'무적 LG의 오스틴 딘! 날려버려라 오스틴 딘!'
'타이거즈,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오오오오~'
'김혜성, 히어로즈 김혜성, 저 멀리 날려라 워어어~'
'삼성의 김지찬, 안타를 날려라! 삼성의 김지찬, 찬찬찬 김지찬!'
 

야구팬인 나는 가사에 붙은 선수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생각나고, 그들이 열심히 했던 경기 장면이 떠오른다.

올해의 모든 야구는 이미 다 끝났고, 어김없이 1위부터 10위까지 등수가 매겨졌다. 그러나 응원가에는 결과가 없다. 당시의 현장만 있다. 그 순간 안타를 치려고, 홈런을 치려고 노력하는 선수만 있다. 그래서 응원가를 들으면 기운이 난다. 지금 나의 어떠함과는 관련 없이 그냥 애써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모드로 바꿔주는 노래 
 
유튜브 야직영(야구직관영상)의 일부를 캡처함. 10개 구단의 응원가를 모든 팬들이 함께 모여 부르고 있음.
▲ 2023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 후 10개 구단 팬들이 다같이 모여 응원하는 영상  유튜브 야직영(야구직관영상)의 일부를 캡처함. 10개 구단의 응원가를 모든 팬들이 함께 모여 부르고 있음.
ⓒ 야직영(야구직관영상)

관련사진보기


'누구는 지금 팀장이라는데, 연봉이 얼마라는데. 누구는 책을 낸다는데...' 하는 못생기고 비교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모드가 된다.

평일 저녁 식사 후, 아이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펼치고 나는 식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둘 다 한숨을 내쉰다. 일이나 공부를 하기는커녕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꾸 뒤적이기만 한다.

"아, 숙제하기 싫어."

아이가 말하면 나도 질세라 "엄마도 일하기 싫어" 하고 말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KBO 응원가'다. 거실 TV로 응원가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응원가는 우리의 시무룩한 기분을 끌어 올려 준다. 흥얼거리며 해야 할 일을 한다. 아이도 나도 롯데 팬이다보니 롯데 응원가가 나오면 손을 높이 들고 칼율동(칼군무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한 동작)을 한다.

응원가를 자주 듣다 보니 유튜브를 클릭하면 응원가 관련 영상들이 그 아래 주르륵 뜬다. 얼마 전엔 희망 더하기 자선 야구 뒤풀이 응원 영상이 올라왔다. '10개 구단 팬들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올해 마지막 응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어 호기심에 클릭했다.

자선 야구 경기가 끝나고 10개 구단의 몇몇 팬들이 주도해서 응원가를 부르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합류해 즐기는 모습이 담긴,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직캠 영상이었다.

팬의 마음은 팬이 안다 
  
경기 때는 상대 팀을 견제하며 자신의 팀만 최강이라고 응원하는데, 그 영상에선 모든 구단의 팬들이 함께 10개 구단의 응원가를 부른다. LG 유니폼과 한화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최,강,롯,데! 승,리,한,다!' 하고 함께 외친다. 그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 결국은 다 같은 마음이지.'
 
11월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kt에 6-2로 승리하며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LG 선수들이 염경엽 감독을 헹가래 치는 모습.
 11월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kt에 6-2로 승리하며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LG 선수들이 염경엽 감독을 헹가래 치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LG팬도 아닌 내가, 29년 만에 LG가 우승했을 때 눈물이 났던 걸 보면 말 다했다. 응원 팀이 다르더라도 팬의 마음은 팬이 안다(관련 기사: 20대 청년이던 아빠가 50대 중반에 우승을 보기까지 https://omn.kr/26edp).

비시즌인 지금, 서로를 향한 마음이 한껏 넓어진다. '그래, 그래, 너네 팀도 최강해. 우리 팀도 최강할게' 하며 경쟁의 마음을 내려놓고 한 박자 쉬어가게 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12월이다. 또 한 해를 달려왔다. 끝까지 와다다다 달리기보다는 한 박자 쉬어가야겠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열심히 했던 그 현장의 나를 떠올리며 수고했다 말해주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에게도.

2023년 연말, 우리 집에선 캐롤이 아닌 훈훈한 KBO 응원가가 울려퍼진다. 

태그:#KBO응원가, #연말, #야구, #응원가, #롯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