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복합상영관 이른바 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단관극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극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우리나라에 있던 모든 영화관이 단관극장이었다. 이름도 모두 달랐던 단관극장들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람들의 '영화 볼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극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예술영화전용관'이다. 개발 논리와 대형자본의 위협 속에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버텨내고 있는 극장,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연재는 노회찬재단과 한국예술영화관협회와 함께 기획했다.[기자말]
 광주극장 전경.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 위치해 있다.

광주극장 전경.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 위치해 있다. ⓒ 권지현

 
공간에는 힘이 있다. 본래 사용의 목적 외에도 그곳을 이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기 때문이다. 극장도 그러하다. 우리는 많은 시간 극장 앞에서 친구와 연인을 만났고,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으며, 예매 시스템이 없던 시절 흥행 영화를 보겠다고 매표소 앞에서 줄 서서 기다렸던 기억 또한 극장이란 공간에 남아 있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넘어 근대 문화와 시민들의 추억이 쌓여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관극장이지만 광주에 가면 세월의 풍파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랜 극장이 있다. 바로 광주극장이다. 원도심 개발로 인해 고층 건물이 빼곡한 가운데 나지막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광주극장. 그곳에서 20년 넘게 극장을 지키고 있는 김형수 이사를 만났다.
 
개관 88주년 '광주극장' "너무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광주극장. 856석으로 이루어진 상영관.

광주극장. 856석으로 이루어진 상영관. ⓒ 권지현

 
광주극장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다. 88년 동안 한자리에서 단관극장을 고수하며 지금까지 남아있다. 광주극장이 단관극장으로 존재하기까지는 그 세월이 수월하지 않았다.
 
"많은 극장들이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과거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모두 무너지고 먼지가 돼서 사라졌죠. 제가 입사하고 나서 광주극장도 여러 번 폐관 위기가 있었어요. 1998년인가 광주극장이 학교보건법상 환경정화 구역 내 유해업소이기 때문에 자진 폐쇄 또는 이전하라는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고, 부동산 개발업체에서 극장을 팔라고 설득과 회유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죠.

그럴수록 이 자리에 광주극장이 어떻게 세워졌고, 어떤 시간을 걸어왔는지 극장 관련 자료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는데요. 그런 위기의 순간과 급변화된 관람환경에서도 광주극장을 찾아 주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주극장이 유해업소 취하 소송으로 정신없던 시기 멀티플렉스가 등장했다. 극장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여력조차 없던 김형수 이사는 극장을 살릴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2002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모하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 공모를 했고, 그때부터 광주극장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지금까지 광주극장은 계속해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일 년에 한 150편 정도 영화를 상영하는데 거의 모든 영화를 다 보는 분도 계시고, 극장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시는 분도 계시고, 직원들과 친구가 된 분들도 계시고, 그렇게 찾아오는 한 분 한 분의 애정과 관심이 광주극장을 있게 하는 거죠. 코로나 전에는 연간 3만 명 가까이 관객이 들었는데, 지금은 1만 명대로 떨어졌어요. 긴 고민 끝에 2010년 이후 처음으로 3월부터 관람료를 8천 원에서 1만 원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관객분들이 오히려 왜 이제야 올렸냐, 진작 올리지 그랬냐고 말씀해주셔서 송구하면서도 감사했습니다."
 
"극장이 사라지면 추억, 문화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
 
광주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1980년 5월 그때 광주극장은 어땠을까.
 
"여기 바로 옆이 금남로잖아요. 그때 총격전이 있었을 때, 사람들이 극장으로도 숨어들었다고 들었어요. 어쨌든 상영관은 영화를 틀고 있으니까, 어두컴컴하잖아요. 일단 상영관에 들어가 앉으면 관객하고 섞여서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되니까. 그때 계시던 대표님이 시민들에게 그렇게 문을 열어줬다고 하더라고요. 광주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무등산은 다 보고 있었다고. 광주극장도 어쩌면 그 시대를 다 보고 있었던 거죠."
 
사람이건 장소건 오래된 것들은 그만큼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광주극장에 쌓인 이야기는 1년을 한 페이지라고 쳐도 여든여덟 쪽짜리 책인 셈이다. 김형수 이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광주극장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극장 설립부터 지금까지의 광주극장 자료를 꾸준히 모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광주극장을 통해 극장이 걸어온 극장사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를 전하고 싶어서요."
 
 7기 영화간판학교에 참여한 18명의 시민들이 완성한 광주극장 영화간판.

7기 영화간판학교에 참여한 18명의 시민들이 완성한 광주극장 영화간판. ⓒ 권지현

 
광주극장은 또 하나의 특별한 한 가지가 있다. 아마 이것도 전국 유일한 것이지 않을까 추측이 되는데 영화 간판을 아직도 손수 직접 그리고 있다는 것. 단관극장들이 사라지면서 그림 간판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광주극장만은 여전히 손으로 그린 간판이다. 광주극장에 내걸리는 모든 영화 간판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 박태규 화백이 담당하고 있다.
 
"아직도 1층에 간판실이 있어요. 거길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박태규 화백이 지도하는 '시민영화간판학교'를 시작했어요. 지금 8기째 운영 중인데요, 이제는 입소문이 나서 모집 공고가 뜨면 하루 이틀 만에 마감이 돼요."
 
광주에서 '광주극장'이란 공간, 그리고 지역에서 예술영화전용영화관의 존재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극장은 지역 문화의 허브입니다.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만들어지고 또 확산되어 나가는 곳이에요. 예술영화전용관을 통해 다양한 영화가 소개되니 지역의 문화 다양성에 소소하게라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소중한지 생각하고 고민할 새도 없이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은 '자본'의 가치에 밀려 '진짜 가치'의 가치는 쉽게 외면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위로하는 건, 물질적인 것이 아닌 추억과 기억과 낭만일지 모른다. 삶이 힘들 때 우리에게 진정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건 언젠가 봤던 영화 한 편이었던 것처럼.
 
 광주극장 매표소.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매표소 풍경이다.

광주극장 매표소.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매표소 풍경이다. ⓒ 권지현

광주극장 예술영화전용영화관 6411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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