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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속화된 경제 환경 변화로 기업에 종속되어 사업을 영위하는 일명 ‘종속적 사업자’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에 따라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이들이 처한 버거운 현실과 불안정한 미래를 몇 차례에 걸쳐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카센터(자료사진)
 카센터(자료사진)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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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카센터는 특정 자동차 제조사와 계약을 맺고 보증수리를 수행하는 곳이었다. 사업장 입구에는 해당 브랜드 로고와 'OO자동차 서비스센터'라는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었고 작업 공간도 꽤 커 보였다. 이 카센터를 소개한 관계자는 이 정도면 규모가 꽤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작업장은 분주했다. 작업용 유니폼을 입은 다수의 기술자가 이런저런 장비를 들고 차량을 수리하거나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중년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작업복을 입고 한 손에 공구를 든 채 필자 옆 관계자를 알아보고는 눈인사를 건넸다. 그가 이 카센터의 사장이었다.

사실 뜻밖이었다. 이 정도 카센터 사장이라면 평상복차림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거나 뒷짐 지고 센터를 둘러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그 사장도 필자의 생각을 읽은 듯 밝게 웃으며 이런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이고, 사장인데도 이젠 나도 직원들과 같이 일해야 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카센터 인근 카페에서 사장과 마주앉은 난 이번 기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거부할 수 없는 종속적 사업 환경

- 프랜차이즈 분쟁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합니다. 그러나 카센터의 갑을 분쟁은 필자에게도 좀 생경했는데요. 카센터는 기술과 자본이 요구되는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으로 독립형 카센터로도 사업이 가능할 텐데 굳이 특정 자동차 기업에 종속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계약이 1년 단위로 상당히 짧고 더욱이 비슷한 가맹사업이나, 하다못해 부동산 계약에도 있는 '계약 갱신 요구권'이 없던데,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었나요?

"먼저, 계약 기간이 1년인 건 당연히 알았어요.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동료 점주들 모두 이게 문제가 되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내게 특별한 문제가 없고 본사와 잘 지내면 문제없을 것이고 또 주변에 보면 다들 멀쩡하게 장사하는 것처럼 보이니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1년 단위 계약은 형식적 행위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본사도 상담 때 '이건 요식 행위다'라고 이야기했고요. 실제 몇 년 전까지는 계약 갱신은 의례적 행위였어요."

그는 이 분위기가 몇 년 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본사는 이런 저런 명분으로 이전보다 강하게 계약 카센터를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동료 카센터 사장들이 부쩍 사업의 지속성 여부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차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전에는 독립 카센터를 해도 문제없었죠. 차들이 단순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전자제어 시스템이 거의 모든 장치를 제어하고 있어서 자동차 제조사의 기술 지원을 받지 않으면 심도 있는 정비나 수리를 할 수 없어요.

엔진처럼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수리는 제조사로부터 정보 제공과 기술 제공이 안 되면 아예 못해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자동차 소유주가 보증 기간이 끝나면 집 근처 독립 카센터에서 수리를 받았는데 지금은 고객들이 보증 기간이 끝나고도 우리처럼 자동차 제조사와 보증수리를 계약한 카센터에 정비를 맡기는 추세예요."

- 결국 제대로 수리·정비를 하려면 특정 자동차 제조사에 계약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로 분쟁이 생기나요?

"현재는 본사가 온라인으로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카센터가 그걸 사용하려면 라이센스 비용을 내야 해요. 차를 고치기 위해 온라인에 접속해서 정비 데이터를 보고 싶다 그러면 인증 토큰을 꽂고 그 인증에 비밀번호를 넣어야 정보가 있는 서버에 접속되거든요. 자동차 진단 장비 구맷값만 수백만 원이고 서버 접속 및 관련 소프트웨어 사용료는 매월 육칠십만 원입니다. 이렇게 전에 없던 추가 비용들이 계속 늘어나니 우리와 같은 보증수리 카센터의 수지는 점점 악화하는 거죠.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본사 입장에서는 우리가 자기네 차 보증수리(A/S)를 일반 수리보다 싸게 해주고(보증수리 인건비는 본사가 책정하는데 일반 수리보다 싸게 정한다고 했다. 이유는 보증수리는 인건비를 고객이 아닌 본사가 카센터에 지급하기 때문이다-기자 말) 더욱이 본사는 여기서 부품 팔아 이익을 보니까 기술 정보 시스템 이건 그냥 깔아줬었어요. 다 공짜였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사용료를 받기 시작하더군요."

모세혈관까지 지배하려 하는 기업
 
카센터(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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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오일 누가 만드나요? SK, LG 이런 거대 정유회사들이 만들죠? 배터리와 타이어는 누가 만드나요?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다른 대형 기업들이 만들어요. 그런데 이런 것까지 '순정'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우리에게 구매를 강요하는 거예요. 거기에 이윤을 붙여서요. 더욱이 본사는 대량으로 구매할 텐데 그러면 우리에게 더 싸게 공급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우리가 구매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들어오는 거죠. '순정'이란 타이틀 하나 붙이고요.

이런 범용 부품들은 예전에는 정말 예의상(?) 본사가 건드리지 않았어요. 우리 보증수리 카센터들은 본사의 통제에 마진이 거의 없어도 부품은 순정을 써야 합니다. 그들의 간판을 달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범용 부품 마진으로 직원들 데리고 먹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역을 다 침탈한 거죠. 이게 돈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매출에 부품 등의 원가가 낮아야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합당한 급여를 받고 사장도 정당한 수입을 챙기고 그렇게 카센터를 더 성장 발전시킬 여력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게 다 없어졌어요. 아까 밖에서 보신 것처럼 여기 기술자들 꽤 있어요. 그런데 요즘 사람 못 구해요. 저는 저 사람들 지켜야 해요. 다른 곳보다, 사무직보다 더 돈을 주고 잘해줘야 안 나가겠죠. 그런데 그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카센터는 사장도 작업해야 합니다."
 

직접 들어보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웠던 해당 업종만의 문제를 인터뷰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번 인터뷰에는 모든 종속적 사업자들이 숙명처럼 겪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공정은 물론, 현재 모든 산업 현장이 당면한 경제 환경의 변화와 구인난까지 담겨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본사와 상생을 바라는 것이지 싸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영업하기도 벅찬 가운데 굳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는 것도 그런 뜻"이라는 말을 더했다. 그러면서 다시 기름으로 얼룩진 장갑을 끼고 바쁘게 걸음을 옮겨 작업장으로 사라졌다.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떠나는 기자의 뇌리에는 오래전 우연히 읽었던 모 일간지의 어느 일본 교수의 인터뷰가 스쳤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큰 기업들이 골목 상권 구석구석까지 진출하여 경제의 모세혈관까지 지배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의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태그:#종속사업자, #카센터, #보증수리, #가맹사업, #대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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