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리그를 호령했던 신인왕과 MVP 출신에게도 프로의 세계는 냉혹했다. KBO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200안타' 기록 보유자 서건창이, FA 4수 끝에 한 팀에서 두번이나 방출이라는 비운의 진기록을 세웠다.
 
2023시즌 프로야구 우승팀 LG 트윈스는 지난 25일 12명의 선수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송은범, 이찬혁, 김태형, 성재헌, 임정우, 정주현, 김성협, 최현준, 외야수 이천웅, 최민창, 이철민 등 팬들에게 익숙한 선수들의 이름도 다수 포함됐다. 이중 정주현은 은퇴를 선언하며 2009년 데뷔한 이래 LG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보낸 원클럽맨으로 남게됐다.
 
방출 선수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역시 서건창이다. 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한 시대를 호령한 서건창의 방출은, 2023년 스토브리그에서 김강민의 2차드래프트 이적(SSG→한화)과 더불어 가장 놀라운 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서건창은 올해 방출자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지닌 선수다. 서건창은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2008년 육성선수로 LG에 입단했으나 한 해만에 방출 당했다. 이후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육성선수로 히어로즈(당시는 넥센)에 입단한 서건창은 2012년 깜짝 신인왕에 등극하며 KBO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3년차인 2014년은 서건창 야구 인생의 하이라이트이자 한국프로야구에도 기념비적인 시즌이었다. 서건창은 박병호, 강정호, 앤디 밴 헤켄 등과 함께 주축 선수로 히어로즈의 돌풍을 이끌었다. 전 경기(128경기)에 출전하면서 201안타 7홈런 48도루 67타점 135득점 타율 .370, 장타율 .547, 출루율 .438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단일시즌 200안타-최다득점 신기록의 주인공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서건창은 그해 타격 3관왕(타율, 득점, 최다안타), 2루수 골든글러브, 정규리그 MVP까지 모두 휩쓸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후 서건창은 2010년대 후반까지 리그 최고의 2루수 중 한명으로 인정 받으며 맹활약했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시기에는 히어로즈 팬들로부터 애정을 담은 장난스러운 존칭으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 '서선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서건창만의 트레이드마크인 양쪽 무릎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다리를 최대한 모은 채 타석에 서는 독특한 자세로 회자되며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히어로즈에서 전성기를 보내던 서건창은 2021년 7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투수 정찬헌과 1대 1로 트레이드되어 유니폼을 갈아입게 됐다. 놀랍게도 서건창을 영입한 것은 프로 입문과 첫 방출의 아픔을 모두 경험하게 해준 LG였다. 당시 우승의 갈증을 풀기 위하여 2루수와 테이블세터 보강이 필요했던 LG는 서건창이 해답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서건창은 두 번째 만남에서도 LG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LG에 오자마자 '에이징커브'가 더욱 본격화된 서건창은 2021시즌 타율 2할5푼4리 6홈런 52타점 12도루(히어로즈 시절 포함), 2022시즌에는 77경기 출장 타율 2할2푼4리 2홈런 18타점의 초라한 성적에 그치며 커리어 로우를 잇달아 경신했다.
 
2023시즌에는 히어로즈 시절 사령탑이었던 염경엽 감독이 부임하며 마지막 기회를 잡는 듯 했다. 염 감독은 서건창의 부활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고, 실제로 서건창은 시범경기까지는 타율 1위(47타수 17안타 타율 .362)의 맹활약에 이어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도 포함되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정규 시즌에 접어들며 다시 부진에 빠진 서건창은 4월 한 달간 꾸준한 기회를 얻고도 81타수 18안타 타율 .222에 그쳤다. 결국 5월 1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세 달 넘게 2군에서 머물렀고 그 사이 신민재가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9월에야 확대엔트리 시행과 함께 1군으로 복귀했지만 서건창은 고작 13경기 23타수 4안타 타율 .174로 여전히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에도 실패한 서건창은 소속팀이 통합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 종료후 두 번째 방출을 감수해야 했다.

2014 시즌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종종 '과대평가된 MVP'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서건창은 2014시즌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리그 상위급 2루수로서의 활약을 여러 시즌 보여줬다.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율을 4번이나 기록했고, 골든글러브도 총 3회(2012, 2014, 2016)나 수상했다. 서건창의 전성기로 꼽히는 2019년까지는 3할타율 및 WRC +110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던 만큼 2014시즌의 활약도 한해 반짝한 우연이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전성기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MVP 출신중 서건창보다 전성기가 짧았던 것은 '원히트 원더'의 대명사였던 김상현(2009년 MVP)과 잦은 부상으로 33세에 은퇴한 윤석민(2011년 , MVP) 정도 뿐이다. 서건창의 나이 34세는 현대 야구에서 많은 나이가 아니며 실제로 이대호, 박병호, 김광현, 양현종 등 30대 후반이나 40대까지도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MVP 출신들도 다수다.
 
서건창은 한창 기량이 물이 오르던 시기에 2015년 십자인대 부상, 2018년 정강이 부상 등 큰 부상을 몇 차례나 겪으면서 조금씩 내리막길을 걸어야했다. 이는 서건창의 또다른 장점이던 주루와 수비능력을 크게 깎아먹는 원인이 되었고, 타격 부진에 대한 부담까지 더욱 가중시키는 악영향을 미쳤다. 서건창도 LG 코치진도 함께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끝내 부진의 본질적인 원인을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서건창이 단명한 다른 MVP들보다 더욱 운이 없었던 것은 'FA(자유계약선수) 불운' 때문이었다. 하필 서건창은 FA 취득시기를 앞두고 이적에 극심한 부진까지 겹치며 FA 신청조차 번번히 포기해야하는 불운을 겪어야했다.

과연 서건창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는 다시 한번 주어질 수 있을까. 서건창의 방출은 최근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도 외면당할 만큼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건없는 방출을 당하면서 내야보강이 필요한 구단에게는 서건창의 영입에 대한 위험부담이 그만큼 줄었기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은퇴와 재기의 기로에 선 서건창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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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창 방출 MVP 안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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