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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예람은 2017년 <새벽항해>를 발매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데뷔는 그보다 앞서 거리에서 이뤄졌다. 현장에서 음악 신(scene)을 만났다는 그는 이후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 이야기를 담은 <새 민중음악 선곡집>, 제주도 난개발 이야기를 다룬 <섬의 노래>에 참여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로 사촌 동생 진세은씨를 잃은 그는 여전히 노래의 힘을 믿고 있었다.
 
가수 예람.
 가수 예람.
ⓒ 김지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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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이야기를 쓰고 따뜻해지기를 꿈꾼다." 평소에 본인을 이렇게 소개하신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봤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추운 이야기'라고 한 건 제가 음악을 만드는 순간이 주로 쓸쓸하고 외로울 때라서 그랬어요. 그런데 음악이라는 게 그냥 혼자 노래하고 끝이 아니잖아요. 노래를 듣고 함께 부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따뜻해지기를 꿈꾼다'는 건 제 추운 감정을 같이 나누면서 서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에요."

- 여러 현장에 연대 공연을 다니시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시작은 2016년이었어요. 그때 저는 노래 부르고 기타 치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는데, '우장창창' 연대 공연에 참여할 뮤지션을 모집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게 됐어요. '우장창창'은 건물주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한 곱창집이었어요.

많은 뮤지션분이 연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이라는 게 운동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진 것이 운동의 방식이 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구나. 이런 마음에 바로 지원해서 공연하게 됐어요. 우장창창 이후에도 '아현포차', '궁중족발'과 같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 연대했어요. 낙태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집회에도 함께하고요.

거리에서는 항상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 같아요. 현장이라는 무대가 없었다면 인디뮤지션으로서 저는 조금 더 막막했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늘 감사해요."

- 대안학교에 다니실 때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했다고 들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계속 나눴어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지하철역에서 서명을 받았어요. 제가 직접 거리로 나선 첫 현장이 세월호였던 거죠. 돌이켜보면, 그때 그 서명운동이 제 슬픔을 해소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 한 번 해주세요!'라고 외치면서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 세월호 참사 8년 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어요. 이태원 참사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오셨나요?

"참사 즈음 저는 2집 발매를 앞두고 앨범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참사가 있고 다음 날 아침 자다가 일어나서 가족들 전화를 받았어요. 다들 저보고 괜찮냐고, 별일 없냐고 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뉴스를 보고 세은이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가족들이 다 충격에 빠진 상황이라, 장례를 치를 때 사촌들이 상주를 함께 맡았어요. 조문객들이 대부분 세은이 또래 친구더라고요.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어요. 그 뒤로는 제가 일정이 많아서 바쁘게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제대로 슬퍼할 시간을 많이 못 가졌던 것 같아요. 2023년으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슬픔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 이태원 참사 추모 공연을 많이 하셨어요. 다른 현장과는 느낌이 또 달랐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음악 활동을 하면서 제가 이태원 참사에서 사촌 동생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불특정 다수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까 이 일로 저나 사촌 동생이 주목받게 되는 게 걱정스러웠어요. 세은이 가족에게 먼저 허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러다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 가게 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거기만큼은 세은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 현장이었어요. 다른 유가족분들과 시민분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제게는 용기가 됐어요. 처음엔 조심스러운 마음에 '저는 세은이 사촌 언니입니다' 정도로만 이야기했는데, 점점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어요. 제 안에 있는 분노에 대해서도 말하기 시작하고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이 없더라고요.

처음에 세은이 이야기를 하기 주저했던 이유가 또 있어요. 자꾸만 스스로 제 자격을 묻게 되더라고요. 사촌 언니라는 위치는 사실 세은이의 가까운 친구들보다도 조금 먼 존재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서도 되는지 따지게 되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계속 나보다 슬퍼할 누군가를 떠올리며 제 마음을 많이 억눌렀던 것 같아요. 혹시라도 그때의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가 슬퍼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안 해도 돼요. 그냥 충분히 슬퍼해도 돼요."

- 이태원 현장에서는 주로 무슨 노래를 부르시나요?

"<바다 넘어>, <세상의 끝에서>, <호흡>을 자주 불러요. <바다 넘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대한 곡이라서 많이 부르고요. <세상의 끝에서>는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이전에 알던 세상이 전부 다 사라졌지.' 참사 이후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불러요. 마지막으로 <호흡>은 응원하는 마음, 그러니까 지치지 말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불러요."

- 잔혹한 현실과 마주하는 곳에서 노래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노래는 그 어떤 언어보다도 우리를 결속하는 말을 대신해준다고 생각해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매체기 때문에 현장에서 제일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사실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른데, 어떤 음악이 흐르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이 만들어지기도 하잖아요. 또 투쟁 현장에서의 노래는 잠깐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하고요."

- 노래 말고 또 중요한 게 있다면 뭘까요?

"저는 대화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사람이 너무 소중해요. 대화하면서 나의 감정을 조금 더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지금은 방관만 하고 어떻게 보면 2차 가해를 하고 있잖아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으셨고요. 그런 점이 너무 안타까워요."

- 사회적 참사 이후 추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따뜻해질 수 있도록 곡을 하나 추천해주신다면요?

"저는 아까 말씀드린 <호흡>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공연할 때도 마지막 곡으로 자주 부르는데요. 이 길을 걷는 우리를 응원한다. 잘하고 있다. 같이 나아가자. 이런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호흡을 해야 살아갈 수 있잖아요. 멈추지 말고 숨을 계속 잘 쉬자.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태그:#세월호, #세월호참사, #가수예람,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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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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