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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한 국내 여론은 '엄벌주의'에 가깝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학생은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가해자들의 모습이 미디어에 비칠 때, 여론은 가해자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

엄벌주의 여론은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연구소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2023년 3월 13~17일 성인남녀(19~59세) 1500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대응 정책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 폭력 기록을 대입 정시 반영 찬성한 비율은 91.2%였다. 학생부 보존기간 연장에는 95.3%가 찬성했다. 이는 지난 4월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학교 폭력 대책이 엄벌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이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의 이해준 소장이다. 그는 학교 폭력 예방책으로서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학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학교 폭력 처리 절차를 겪었던 그의 경험에 있었다.

이해준 소장은 학교 폭력 피해 자녀를 둔 한 아버지다. 2020년 5월 자녀가 학교 폭력을 당하기 전까지 후불제장례회사대표였던 그는 자녀와 함께 학교 폭력 피해를 극복한 이후 2021년부터 지금까지 학교폭력연구소의 소장으로서도 활동 중이다.

궁금했다. 왜 이해준 소장은 우리 사회가 학교 폭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이 소외되고 있다고 말하는지, 왜 '학부모 역할'이 학교 폭력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지난 6일 이해준 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정부 정책, 피해 학생 상처 치유에 도움되기 어려워"
 
이해준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소장
 이해준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소장
ⓒ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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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피해 학생이 학교 폭력 대응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보는가?

"학교 폭력 사건은 학교에서 먼저 인지한 다음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아래 학폭위)로 넘어가는데, 우선 선생님의 경우 학교 폭력에 대한 권한이 부족하다. 현재 선생님은 피·가해 학생의 진술만 작성하게 돼 있다. '강제 조사권'이 없다. 그러다 보니 피·가해 학생을 구분할 증거를 알고 있어도 공식적으로 피·가해 학생을 구분할 수 없고, 가해 학생 진술의 허위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자칫하다간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선생님에겐 가해 학생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 그렇다면 학폭위는 학교보다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한 권한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학교에서 넘어온 사안을 검토하고 최종 판결까지 내리는 기관이니 권한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권한을 이행하기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학교 폭력 사안을 검토하기엔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 학교폭력심의가 열리면 10명 내외의 심의위원들이 참석한다. 심의 시간은 20~30분 내로 끝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학교 폭력 사안을 심의위원들이 숙지하기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피해 학생들과 그 가족들도 그 시간 내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 역부족이다."

- 지난 4월 정부가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경각심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학교 폭력 예방책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이 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이 학교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피·가해 학생 부모들 간의 소송전이 이어질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선 학교 폭력 보존 기록 2년에서 4년으로 늘려 사회진출에 영향을 줘 가해 학생에 대해 경각심을 주자는 취지인데, 그 기록을 삭제하기 위해 가해 학생 학부모 측에서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정책이 피해 학생의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돈이 없는 학부모라면 소송으로 인해 더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 그렇다면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제도적 차원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학교 선생님들에겐 교육자로서 소명 의식을 갖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진술 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전부인 선생님 입장에선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피해 학생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권한이 없더라도, 선생님이란 학생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인 만큼, 스승으로서 피해 학생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폭위의 경우 사안을 검토할 시간과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제일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심의위원들이 피해 학생의 목소리를 듣고, 사안을 충분히 검토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심의가 진행되는 곳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아니라 학교폭력대책소심의위원회다. 검토할 학교 폭력 사건이 많은 만큼, 교육청 안에 여러 개의 소심의위원회로 나눈 것이다. 문제는 적은 인원의 심의위원들이 여러 개의 소심의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심의위원회가 사안을 검토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소심의위원회를 둔 만큼의 인력을 채워야 한다고 본다.

선도조치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더 세분화해야 한다. 학교 폭력 유형이 사이버 폭력으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 3~4시간만으로 가해 학생에게 반성의 기회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선도조치가 학교 폭력 유형과 피해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돼야 한다. 충분히 강력 범죄에 준하는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똑같이 사회봉사 조치를 내린다면, 그 조치가 선도라는 의미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해결하고자 하는 부모 모습에 자녀들 힘 얻어"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사진.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사진.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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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폭력 예방법으로 학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강도가 높아도 피해 학생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예방책으로선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학부모가 학교 폭력 사안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에서 학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부모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일 때 자녀는 그 모습을 보고 힘을 얻는다. 자녀가 자기 자신을 부모의 그런 모습에 투영함으로써, 자신도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 학교폭력연구소장으로서 많은 학부모들을 상담해왔을 텐데, 그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한 학부모들의 공통점, 그렇지 못한 학부모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종전에 언급했다시피 위기를 극복한 학부모들은 학교 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자녀와의 유대관계도 좋았다. 자녀와의 관계가 좋을수록 자녀의 성향, 친구 관계, 학교생활 등을 빠르게 파악했다. 이는 자녀가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 사건의 정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더 나아가 사건에 적절히 대응하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학교 폭력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대체로 학교나 학폭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기대가 큰 만큼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 상처로 돌아온 것이다."

- 정부 차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현재는 우리 사회가 학교 폭력 처리 절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절차에 관한 정책보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와의 유대관계를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를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부모는 부모가 처음 아니겠는가? 정부 차원에서 학부모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학교 폭력 예방책으로서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해준 소장은 한국 사회의 학교 폭력 대응책이 학부모들을 각자도생으로 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권한이 부족하며, 학폭위는 역량이 부족하다. 정부도 피해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단 학교 폭력 처리 절차에만 신경 쓰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일수록 학부모들의 마음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리 절차에 따른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 '내가 자녀와 함께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도 학교폭력연구소장으로서 여러 곳을 누비며 학교 폭력 예방책으로 '학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하고 있다.

태그:#학교폭력예방,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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