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요트들이 정박한 여수 웅천마리나 인근 찻집에서 조원옥씨를 만났다. 염색을 안해 머리와 수염이 하얀 조원옥씨. "왜 염색을 하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가 살아온 내력을 몸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이도 나와 동년배다. 살아온 이력도 거의 비슷하다.
전남대학교 상대를 졸업한 그는 잠깐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시골에 내려와 30년 동안 정원수를 생산했다. 나무와 자연속에 묻혀 살던 그는 언젠가부터 바다 위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꿈을 꿨다. 친분이 있던 코리아나호 선장 정채호씨의 배를 타고 항해하며 요트 항해술을 배웠다.
2000년에 개최된 일본 나가사키 범선 축제에 참가했다. 2012년에는 인천직할시가 중국 위해시, 청도시와 공동 주최한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황해컵에 참가해 서해를 거쳐 독도를 일주하는 코리아컵에 참가하며 태평양 항해의 꿈을 키워갔다.
항해술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내친 김에 요트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나이 65세가 되던 2018년 1월, 미국 서부 LA 인근 '옥스나드(Oxnard)'에서 85세로 투병 중인 '소트버그(Sorteberg)'로 부터 '미드나잍스타(Midnight Star)'호를 구입했다. '옥스나드'씨는 젊은 시절 요트대회 우승자이고, '미드나잍스타' 호는 앞 돛이 2개인 커터 형식의 요트다.
LA에서 하와이까지 큰 어려움 없이 항해한 요트, 그러나
'미드나잍스타(Midnight Star)'호의 제원은 선체 길이 11m, 폭 3.3m, 흘수 깊이 1.8m, 총무게 12톤으로 선체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되었다. 배를 구입해 점검과 보수를 마치고 인근 LA 한국총영사관에서 임시선박 국적증명서를 발급받아 2018년 1월 5일 '채널 아일랜드 하버(Channel Island Harbor)'를 출항한 배의 목적지는 하와이 호놀룰루다.
LA에서 하와이에 도착하기까지의 22일간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풍랑과 돌풍, 메인세일 트랙파손, 제노아세일 부분파손, 오토파일럿 고장, 엔진 트러블 등이 있었지만 항해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LA에서 하와이까지 동행한 김현곤씨는 귀국하고, 2월 16일 괌을 향해 출발한 요트는 20마일도 못가서 자동항해장치와 엔진 이상으로 호놀룰루로 회항을 결정했다. 호놀룰루에서 재점검 중 돛과 돛대를 지탱하는 스텐와이어를 고정하는 뱃머리 말뚝이 완전히 부식된 것을 발견했다.
재점검을 마친 조씨는 3월 17일 목적지를 괌이 아닌 일본 오키나와로 바꿨다. 돛에 북동 무역풍을 받은 요트는 순조롭게 바다를 달렸다.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바닷길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하와이에서 새로 구입한 자동항해장치(오토파일럿)가 고장이 났다. 오토파일럿은 선원이 수면, 휴식, 식사 등을 할 시간에도 배가 정해진 항로를 따라 항해하게 하는 장비다. 어쩔 수 없이 수동으로 항해하는 그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왔다. 선내의 12볼트 직류를 110볼트 교류로 바꿔, HP노트북에 전기를 공급하는 변압기가 고장이 났다. 노트북에는 전자해도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었다.
하와이를 떠난지 10여일이 됐기 때문에 강하게 불어오는 북동무역풍을 거슬러서 호놀룰루까지 회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컴퍼스(Compass)를 이용해 방향을 잡고 GPS만 보고 방향을 추정해 12시간 항해 후 자거나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해도를 보면 어제 떠났던 원위치로 돌아와 있었단다.
망망대해에서 떠올린 얼굴
그때를 회상하며 보여준 항해일지에는 '황천항해'라는 글귀가 있어 "황천항해가 뭡니까?"라고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태풍과 같은 최악의 바다 날씨 중에도 항해를 계속하는 것을 말하며 2~3일 정도 태풍이 지속되는 동안 배가 60도 정도 기울어지며 피칭과 롤링을 합니다. 피칭은 배가 옆으로 흔들리는 것을 말하며 롤링은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는 선실로 통하는 모든 문을 잠그고 로프를 이용해 의자에 몸을 묶어놓고 운명을 하늘에 맡겼죠."
조씨에게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들 생각이 나다가, 갑자기 아내가 정말 미워졌어요. 내가 배를 산다고 하자 절대로 안 된다며 반대했는데 (결국) LA로 돈을 송금해줬어요. 끝까지 돈을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나서요."
좌절과 자학의 시간이 지난 이틀 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그에게 퍼뜩 떠오른 생각 하나는 이순신 장군의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문장이었다. 긍정마인드로 돌아선 그는 "나에겐 충분한 식량과 부식 식수가 있고 튼튼한 돛과 지금까지 험한 태평양 파도를 견뎌준 튼튼한 배가 있다"며 서쪽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필사의 신념으로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항해, 12시간 표류를 계속하는 가운데서도 규칙적인 생활과 철저한 건강관리를 해야만 한국까지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바람이 없는 시간에 불어오는 미풍, 찬란한 일출과 일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닷물이 만드는 파란색의 향연, 가끔 찾아오는 돌고래떼와 바닷새들의 비상은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진 그에게 위안이 되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매일 매일 지척에 죽음의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 사육신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소달구지에서 지었다는 '임사절명시(臨死絶命詩)'가 생각났단다.
'형장의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고 고개를 돌리니 해는 기울고 저승길에는 주막도 없는데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묵을꼬?'
5월 20일 주간 항해 중 여태 맡아보지 못한 비릿한 냄새가 잠시 바람결에 흘러와 "무슨 냄새일까" 하고 잊어버렸는데, 3일 후 멀리 수평선에 여태껏 보지 못한 검은 구름이 보여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육지였다. 그제서야 그 비릿한 냄새가 원양항해 선원들이 얘기한 땅냄새였음을 알았다. 70일 만에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 지치지마섬(父島)에 도착한 그는 요트 선수와 선미에 술을 부으며 감사를 표시했다.
"나는 단지 배안에 있었을 뿐이며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일본 지치지마섬에 도착한 그는 심신이 너무 지쳐 요트를 해체해 다른 큰 배에 싣고 광양항으로 가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본 섬에는 해체할 수 있는 시설과 기중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6월 1일 일본해상보안청 직원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한 배는 규슈 근해에서 태풍을 만났다. 점점 다가오는 태풍의 위력 소식에 아내와 가족 지인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SOS를 요청하라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험한 파도와 태풍에도 나를 지켜준 요트를 버리고 나만 살 수 없다"며 선내에 들어가 밧줄로 몸을 묶고 태풍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도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 규슈를 거쳐 시코쿠, 세토나이카이를 지난 요트는 대한해협을 지나 2018년 6월 23일 전남 여수 웅천 마리나에 도착했다. 6개월 동안 약 1만 2천킬로미터를 항해해 여수에 도착한 그는 요트 명칭을 아내의 천주교 세례명인 '율리아나(Juliana)'로 바꾸고 감사하다는 의미로 아내의 발을 씻겨줬다.
또다시 세계일주여행에 나서는 그
당시 6개월간 목숨이 경각에 달할 만큼 수많은 위험을 겪어 다시는 배를 안 탈줄 알았던 조씨는 그러나, 조만간 또 다시 세계일주여행에 나선단다.
내년 말부터 2027년 6월까지 세계일주여행을 세워놓은 그의 항해계획일지에는 들어보지 못한 여러 나라의 항구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항구 입출항 시 꼭 필요한 동력 엔진도 '볼보 펜타 29마력'에서 일본제 '얀마 53마력'으로 바꿔 장착했다.
도전하는 자에게만 보람찬 결과가 돌아온다는 걸 믿는 나는 그의 성공을 빌었다. <갈매기의 꿈>을 쓴 저자 '리처드 바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눈이 말하는 것은 믿지 마라. 왜냐하면 그것들에는 항상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