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김주성-하승진-함지훈-오세근의 공통점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며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 위대한 토종 빅맨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KBL에서 합작한 우승트로피만 무려 15개에 이른다.
 
특히 전성기에 이 선수들은 사실상 외국인 선수들 못지않은 위력을 과시하며 이들의 존재 자체가 전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KBL에서 강력한 토종빅맨은 우승의 보증수표'라는 공식이 성립된 이유다.
 
현재 KBL에서 가장 강력한 토종빅맨을 꼽으라면 단연 하윤기(수원 KT)의 이름이 먼저 거론될 것이다. 24세로 올해 프로 3년차를 맞이한 젊은 빅맨 하윤기는 올시즌 물오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소속팀의 주전을 넘어 리그 전체에서 손꼽힐만한 엘리트 빅맨으로 당당히 올라섰다.
 
하윤기의 소속팀 KT는 지난 11월 13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를 77-61로 꺾었다. KT는 지난 11일 홈(75-74)에서 1점차 신승을 거둔데 이어 이틀 만의 리턴매치에서 현대모비스를 또 한번 제압했다. 이로써 5연승을 질주한 KT는 안양 정관장과 공동 2위(이상 6승 3패)에 오르며 1라운드를 마감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송영진 KT 감독은 하윤기를 일등공신으로 꼽으며 1라운드 MVP 후보로 추천했다. 송 감독은 "하윤기는 외국인 선수와 매치업하는 플레이가 많았음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하윤기는 올시즌 1라운드 9경기 전경기에 나서서 32분 36초를 소화하며 19.6점, 7리바운드, 야투율 63%를 기록중이다. 이는 2021년 데뷔 이후 하윤기의 커리어하이 기록이다.
 
현재 득점은 전체 8위이자 국내 선수로는 드래프트 동기인 이정현(20.9점, 고양 소노)에 이은 2위다. 리바운드도 전체 10위(국내 2위)로 외국인 선수의 전유물이던 리바운드 부문에서 7개 이상을 잡아낸 국내 선수는 이대헌(7.1개, 가스공사)과 하윤기 단 2명뿐이다. 웬만한 1옵션 외국인 선수의 기록과 견줘도 크게 뒤지지 않는 성적이다. 하윤기보다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미세한 차이로 앞선 이정현-이대헌이 소속팀 성적은 하위권인 것과 달리 하윤기는 팀성적동 우수하다.
 
또한 하윤기는 올시즌 1라운드 9경기중 6경기에서 20+ 이상의 득점을 기록했으며 전 경기에서 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20-10(득점-리바운드)도 벌써 2번이나 기록했다. 하윤기가 올시즌 한 자릿수 득점에 그친 것은 지난10월 28일 안양 정관장(59-63 패) 전의 9점이 유일하며, 나머지 경기에서는 최소 16득점 이상을 꼬박꼬박 기록했다.
 
무엇보다 하윤기의 활약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플레잉타임의 상당 시간을 외국 선수와 매치업하면서도 이룬 기록이기 때문이다. KT는 211cm의 마이클 에릭이라는 정통센터가 있지만, 1옵션은 스윙맨에 가까운 199cm의 파워포워드 패리스 배스(21.3점. 10.8리바운드)다. 이로 인하여 204cm의 하윤기가 주전 센터 역할을 맡아 상대 외국인 빅맨과 매치업되는 빈도가 높다.
 
KT가 포워드형 외국선수를 1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하윤기의 성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하윤기는 토종빅맨중에서는 손꼽히는 높이와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기동력도 뛰어나 속공에도 가담할 수 있다. 여기에 중거리 점퍼의 완성도까지 높아지며 더욱 다양한 개인 공격옵션을 갖추게 됐다.
 
KT는 하윤기-배스에 이두원(205cm)까지 포함한 장신라언업을 가동하며 외국인 정통빅맨 없이도 당당히 리바운드 1위(43.9개)를 달리고 있다. 실점 역시 73.4실점으로 리그 최소실점이다.

KT의 장신라인업은 배스의 수비 부담을 덜어 공격에 좀 더 집중하게 할 수 있고, 빅맨들의 스피드가 좋아 기동력에서 밀릴 이유도 없기에 수비 밸런스 또한 이상적이다. 리그 선두팀인 원주 DB 역시 포워드형 디드릭 로슨인 외인 1옵션으로 기용하면서 김종규-강상재와의 트리플포스트를 가동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하윤기는 데뷔 첫해인 2021-22시즌 7.5점, 4.7리바운드, 2022-23시즌 15.3점, 6.4리바운드로 매년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비시즌에는 생애 첫 성인국가대표팀으로서 메이저대회인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발탁되기도 했다. 비록 대표팀 성적은 좋지않았지만 하윤기는 국제대회에서도 해외 빅맨들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투지넘치는 플레이로 호평을 받았다. 어느덧 30대를 넘긴 라건아-김종규-이승현 등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골밑을 책임질 주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하윤기 이전에 리그를 풍미한 엘리트급 토종빅맨들도 경기 내내 외국인 선수와 매치업되는 경우는 드물다. 외국인 선수와 상대가 가능하다고 해서 국내 선수와 매치업될때만큼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함께 뛰는 파트너가 정통빅맨이 아닌 스코어러 유형의 스윙맨이라면 부담은 더 커진다.
 
하지만 하윤기는 경기당 30분 이상을 뛰며 외국선수를 수비하면서 공격에서까지 꾸준히 자기몫을 해주고 있다. 내외곽을 넘나드는 배스가 수비를 흔들어놓고 상대가 올 스위치로 수비범위가 넓어지면 하윤기가 사이즈를 앞세워 골미을 공략하는데 최근 KT의 핵심적인 패턴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오히려 상대팀들이 하윤기를 막기 위하여 먼저 외국인 빅맨을 수비수로 붙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기복없이 일정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하윤기의 최대 장점이다.
 
현대모비스와의 2연전은 하윤기의 성장세가 단연 빛을 발한 경기였다. 엄청난 힘과 높이에서 KBL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게이지 프림을 상대하면서도 1차전 18점 5리바운드, 2차전 23점 6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프림 역시 개인 기록에서는 준수했지만 하윤기와 배스의 적극적인 몸싸움에 막혀 페인트존에 진입하는데 애를 먹으며 중거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이는 프림이 막힐 경우 확실한 2옵션이 없었던 현대모비스의 공격 흐름을 흔들어놓기에는 충분했다.
 
KT의 최근 상승세가 더 고무적인 것은 아직 국가대표인 문성곤과 허훈이 합류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올시즌 FA 자격을 얻어 KT로 이적한 문성곤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데뷔전이 늦어졌지만, 안양 정관장에서 4년연속 수비왕을 차지할만큼 검증된 리그 최고의 수비스페셜리스트이자 우승청부사다. 여기에 에이스 허훈에서 상무에서 전역하여 조만간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2라운드부터 문성곤과 허훈까지 가세한 '완전체' 전력이 된 KT의 기세는 더욱 무서워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강력한 도우미들을 얻게 될 하윤기도 부담을 덜고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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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기 수원KT KBL 프로농구경기일정 토종빅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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