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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11월 13일 오후 2시 35분]

나의 모습 그대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억압과 착취가 산산이 겹친 일터, 그 바깥으로부터 비교적 보호받을 집이 있기에 우리는 새 하루를 견뎌온 것일 테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몸 눕힐 곳은커녕 부서진 시멘트 잔해만 나뒹군다면? 집이 있다고 하나, 언제든지 바깥벽에 실탄이 박히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총을 든 채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과 마주쳐야 한다면?

이 일 모두 현재 서아시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식민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일상이라는 것을 알 때, 직전의 물음은 막연한 가정을 뛰어넘어 현 국가 폭력의 고발문이 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분쟁'이라는 말 아래 가려지고, 성서가 계시한 옛 땅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숭고한 이스라엘인 대 이들을 터무니없이 짓누르는 야만스러운 아랍인 프레임으로도 퍼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이 점령 지배가 시온주의자들의 '식민주의 기획'임을 알아야 한다. 서구에 횡행한 반유대주의를 벗어나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던 시기, 그들은 여러 지역을 검토한 끝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낙점했다. 문제는 그곳이 누가 원한다고 하루아침에 나라를 지을 수 있는 주인 없는 황무지가 아니라, 엄연히 오랜 기간 터전을 지어 살아온 땅이라는 점이다.

시온주의자들은 식민자의 언어로 부단히 정당화한 끝에 영국을 등에 업고, 결국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써 최소 80만의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난민'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라 부른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팔레스타인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 및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군사 점령했고, 1980년에는 동예루살렘을, 이듬해에는 골란고원을 불법 병합했다.

정착촌 확대하며 저지르는 전쟁 범죄

75년째 이어진 군사 점령하에서 팔레스타인 국내의 경제적 기반은 무참히 무너졌다. 정부와 국민 모두 이스라엘 및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일자리를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국제노동회의에서 발간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노동 실태는 여전히 암담하다. 분리 장벽과 검문소로 갈라놓은 지역 간 이동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등 최근 취업 허가 할당제를 확대한 이스라엘은 19만 명가량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값싼 부품처럼 대한다. 

서안지구만 하더라도 4만 명의 노동자들이 허가증 및 제대로 된 서류도 없이 '비공식 고용'으로서 불안정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때 허가증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경제 생활 억제의 유구한 수단인데, 유효 기간이 짧고 노동 가능 인구 대비 턱없이 낮은 비율에만 노동을 허가하기 때문이다. 당장 입에 풀칠할 것 없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브로커의 손을 빌리고, 이스라엘인 평균 최저임금의 절반을 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브로커들에게 또 달마다 임금의 14~21%를 지불한다. 

이런 방식으로 작년에 떼먹힌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혈만 한화 3760억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나 서안지구 내 불법 유대 정착촌에서 일해 버는 돈이 팔레스타인 전 지역보다 2.7배 높기에 이들은 속절없이 혹사의 현장으로 투신한다.

한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들의 삶을 개선할 만큼의 권한이 없다. 예산과 필수 서비스 제공, 인프라 개발 등은 정체된 지 오래이며, 지금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불법 정착촌 건설과 확장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점령지에서의 정착은 엄연히 국제법상 전쟁 범죄이다. 2016년 유엔 안보리 결의 2334호 또한 이스라엘에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의 모든 정착촌 관련 활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2023년 2월까지도 이스라엘 군사정부는 정착촌에 7000세대 이상의 불법 전초기지 및 주택 건설을 승인하였다.

이에 반해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는 토지 및 주택을 강제로 철거[압류] 중이며, 동시에 그들의 주택 계획 및 허가 신청은 끊임없이 불허해 왔다. 특히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 남쪽의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 마사페르 야타에서는 약 1150명의 팔레스타인이 강제 추방당할 위험에 처했고, 이스라엘군의 굴착기가 마을 주요 인프라 시설과 거주지들을 처참하게 쓸어 허문다. 

이 과정에서 2022년 들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군 혹은 서안지구 내 불법 정착촌에 사는 이스라엘 정착민의 폭력이 급증하였다. 한 해 동안 서안지구, 가자지구, 이스라엘 등지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191명, 부상자는 1만 345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에만 팔레스타인인 578명이 살해됐으며, 현재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대규모로 폭격하고 있어 희생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인종 청소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경제 생활은 물론 일상을 아우르는 생존권마저 옥죄고 파괴한다.

침탈 이후 원주민과 불법 정착민 혹은 식민 국민 간 차등을 두어 지배의 손아귀를 더 깊숙이 뻗치는 것. 이는 식민주의의 주요 기제로서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피식민을 경험하였던 뭇 국가들의 뼈저리고도 공통된 경험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호소

이런 역사를 고려할 때 최근 아쉬운 일이 하나 있다.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 현장에 등장한 'HYUNDAI'라 적힌 굴착기가 바로 그것이다. HD현대건설기계는 "우리는 이스라엘군에 중장비를 판매한 적이 없다.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동원된 굴착기 등은 현지에서 중고 거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해한다. 의도한 것이 아니고 제품이 그렇게 쓰이는 것을 기업에 뭐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22년 요르단강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한 마을에서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거주민의 가옥을 강제철거하고 있다.
 2022년 요르단강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한 마을에서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거주민의 가옥을 강제철거하고 있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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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의 "팔레스타인 문제 외면하는 HD현대"(2023. 4.17) 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굴착기를 생산하는 HD현대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에 편지를 썼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탄압하는 반인권적인 일에 현대의 중장비가 쓰이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HYUNDAI'라는 로고가 팔레스타인 인권 탄압과 연관되는 것은 현대에도 나아가 한국에도 좋지 않다. 자사 제품이 인권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점에 대해 HD현대가 관심을 기울이고 현장에서 장비가 철수되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12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팔레스타인, #이스라엘, #HD현대건설기계,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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