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언주 13회 부산반핵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이 10일 부산시민운동센터 혁신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언주 13회 부산반핵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이 10일 부산시민운동센터 혁신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보성

관련사진보기


해운대와 광안리 등 바다 주변으로 하얀 백사장과 높은 고층 빌딩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부산. 인구가 줄어 걱정이라지만, 여름 휴가철이나 주말이 되면 이곳을 찾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그러나 부산에서 이것만 보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지난 2020년, 부산의 한 해수욕장 취재 사진을 본 누군가가 "정말로 이런 곳이 있느냐"고 되물은 적이 있다. 회색빛 콘크리트돔의 원자력발전소를 배경으로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탓이다.

원전과 해수욕, 어울리지 않는 배경의 사진 

사진의 현장은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인근. 질문을 던진 이는 평소 위험하다고 느낀 원전과 부산이 이처럼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수도권에 사는 그에겐 대도시의 모습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부분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 듯 보였다.

부산을 끼고 있는 원전은 무려 10여 기.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이라는 오명을 감내하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안에 수백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산다. 원전 앞 해수욕은 사실 거리에 차이가 있을 뿐 일상이다. 덩달아 원전을 둘러싼 찬반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로 13회째인 부산반핵영화제에서 개막작 영화 <마리 퀴리>는 이러한 동전의 양면 같은 현실을 조명한다. 마리 퀴리는 1890년대 후반 우라늄 연구에서 라듐·폴로늄을 발견했지만, 1943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으며 원자핵 연구의 문을 열었으나, 치명적 문제가 있단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폐막작 다큐멘터리 '핵유랑민들'에서도 드러난다. 원자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노동자들. 값싼 전기 생산의 이면엔 이들의 고된 노동과 피폭 위험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전 인근에서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 "핵발전소와 함께 살고 있는 주민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전 인근에서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 김보성

관련사진보기

 
모두 8편의 영화와 다큐 등을 선보이는 부산반핵영화제가 벌써 열세 살을 맞았다. 그동안 세 번의 정부가 교체됐고, 해마다 쌓인 누적 작품을 모아보면 거의 100여 편에 이른다. 색깔이 분명하면서 규모가 작은 이 영화제가 이까지 온 건 '핵발전'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단 방증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 여건은 행사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과거와 사정이 다르다. 7번이나 장소를 빌려줬던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는 영화제 조직위에 정당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대관 불허를 통보했다. 영화제가 출범한 이후 진보-보수 정부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차질을 빚지 않으려 조직위는 애초 10월이었던 영화제를 11월 24~25일로, 장소도 BNK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으로 급히 변경했다. 10일 부산시민운동센터 혁신홀에서 두 주 뒤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는 강언주 부산반핵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반드시 초청하고픈 대상이다. 그는 이번 영화제 공간에 "윤석열 대통령을 초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초대하고 싶다"

- 최근 장소 대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사실 처음 겪는 일이다. 그동안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도 했었고, 기장군청에서도 했다. 공공기관이 협조를 잘해주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정당 참여를 이유로 대관을 불허해 일정을 변경했다.

정당을 제외해야 열 수 있다는 데 (그동안) 함께해 온 취지와 의미가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영화 제작사에 재협조도 요청하고, 모퉁이극장의 상황도 고려해야 해서 결국 예정된 계획보다 한 달 정도 시간이 늘어났다. "

- 이번 정부 들어 처음 겪는 일이라고?

"아무래도 주제가 탈핵, 반핵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윤석열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 중 하나가 핵진흥이다. 만약 윤 정부와 각을 세우지 않는 의제를 담은 다른 영화제가 장소를 빌렸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시청자미디어센터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론 정당을 내세웠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다. 아무튼 일정에도 혼동이 생기고, 좌석이 줄거나 대관료 등 추가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

- 그런데도 여전히 무료 상영을 고수하나?

"(도시 안에 공존하는 존재이지만) 시민에게 핵 자체가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벽이 높다. 이 문제를 대중적으로 풀어가고자 영화제를 열었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무료 상영을 할 거다. 관람료를 받는 건 애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개인 추진위원과 단체들이 분담금을 더 냈다. 근근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반핵, 어려운 주제다. 영화제를 짧게 소개한다면?

"일본의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 핵무기와 평화, 에너지의 문제 등을 좀 더 알려내고자 시작했다. 핵 관련 사회성이 짙은 작품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영화로 알리겠다는 거다. 윤 정부는 수많은 예산과 기관을 통해 핵 관련 정책을 홍보한다.

그런데 우리는 힘이 적고 소수다. 하지만 일방적인 정부의 핵진흥 정책을 두고 볼 순 없다. 그래서 영화제이면서 사회운동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것도 탈핵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단 한 편이라도 본다면 정책 유지 못 해"
 
강언주 13회 부산반핵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이 1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초대를 언급하고 있다.
 강언주 13회 부산반핵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이 1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초대를 언급하고 있다.
ⓒ 김보성

관련사진보기

 
-슬로건이 부산이즈핵인데?

"작년엔 다이내믹 핵도시였다. 이번엔 부산시의 올해 슬로건을 좀 풍자하며 각을 잡았다. 부산에 아주 많은 사람이 관광을 오지만 인근에 핵발전소 10기가 있단 사실은 잘 모른다. 외부적으로 홍보할 때는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핵발전소가 대거 존재한다. 이를 위해 송전탑이 엄청나게 들어서고, 핵폐기장을 만들어야 하고, 노후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등 여러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했다."

-벌써 13회째인데 눈여겨 볼만한 작품은 뭐가 있나?

"개막작은 <마리 퀴리>, 폐막작은 <핵유랑민>이라는 작품이다. 마리 퀴리를 보면 위대한 발견이 인류의 역사를 많이 바꿨지만,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았다. 그리고 멀리 보면 여러 핵 재난 참사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핵유랑민은 프랑스 원전 노동자들이 캠핑카를 타고 발전소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내용이다.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고된 노동과 안전 우려 등) 원전의 이면을 담아 폐막작으로 선정했다. 또 갑상샘암 공동소송을 다룬 다큐멘터리 <월성>, 추적60분의 후쿠시마 관련 방송, 지역의 오염수 투기 반대 운동 영상 등이 선보인다."

-전 세계에 핵만 다루는 영화제가 별로 없다. 3년 전엔 호주 우라늄 영화제와 뭔가를 해보려 한다는 구상도 들었다. 

"반핵영화제가 지속되면서 호주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23반핵아시아포럼에서도 여러 활동가가 한국에 왔을 때 부산반핵영화제의 의미가 크다고 했다. 호주엔 아직 원전이 없지만, 우라늄 광산 문제로 영화제를 열고 있다.

핵자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로 인한 원주민의 생존권 등 여러 문제를 다룬다. 그동안은 코로나19로 접근이 어려웠다. 호주 활동가를 통해 연결해볼 생각이 있다. 다시 시도해보면 좋겠다."

-앞으로 반핵영화제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보나?

"벌써 13회가 됐는데, 앞으로 전국 유일의 반핵영화제란 설명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랜 기간 여러 영화를 발굴하고, 상영작을 리스트업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연락이 온다.

최근에 전남에서 탈탈(탈핵 탈석탄) 영화제라는 걸 열었다. 우리가 상영작에 도움을 조금 줬고, 경주에서도 연말에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문의가 들어왔다. 이러다 방방곡곡에 핵 영화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 고민이 많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북구의 화명동 대천마을 공동체에서 동시상영이 이루어진다. 일본 오염수 강연 과정에서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영화제에 반드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꼽는다면?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이다. 가끔 이분이 핵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기 위해 공약을 내걸었고, 지금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핵의 위험성이나 문제 등을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 무지한 건 아닌가.

반핵영화제에 상영하는 작품 중 단 한 편이라도 본다면 지금과 같은 정책을 유지할 수 있겠나. 핵은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에너지원이다.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자연재해에 취약하며, 핵쓰레기는 처치불능이다. 당장 오염수 사태만 봐도 그렇지 않나.

다른 나라는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늘리고, 핵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간다. 원전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핵의 진실,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영화제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오신다면 자리를 만들어 두겠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그:#부산반핵영화제, #고리원전, #윤석열대통령, #13회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