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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2월, 안창호 선생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도산안창호기념관에 전시중인 안창호 선생의 편지.  1910년 2월, 안창호 선생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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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련 여사... 상해 일본 영사관에서 편지한 것을 보셨겠는 고로(보았을 테니) 긴 말씀을 아니 합니다. 이달 초 七일에 조선 경성(서울)에 와서 경기도 경찰부에 유치되었나이다. 이곳 경관들이 특별히 동정하고 우대하므로 매우 편히 지내고 또는 내 평생에 과격한 동이 직접 간접간 도무지 없었으므로 오래지 아니하여 나올는지도 모르겠나이다. 부탁할 말씀은 당신이나 누구든지 조선에 오지 마시오. 장차 내가 나온 후에 서로 만날 것을 경영하겠나이다. 아무쪼록 안심하시오. 나의 사랑하는 아내... 당신의 남편"

1932년 4월 안창호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로 상해에서 국내로 압송, 4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위 편지는 같은 해 6월, 안창호 선생이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안창호 선생은 살아생전 미국에서 또는 중국에서, 국내에서 그의 아내인 이혜련 여사와 그 자녀들에게 많은 편지를 남겼다.

도산 안창호 선생 145주년 탄생일 맞아 '안창호체' 나와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아래 위원회)는 지난 9일, 안창호 선생 145주년 탄생일을 맞아 안창호 선생의 편지에 담긴 글씨를 토대로 '안창호체'를 제작해 공개했다. 오픈 폰트 라이선스(Open Font License)로 글꼴 파일을 그대로 판매하지 않는 한 저작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공개한 '안창호체'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공개한 '안창호체'
ⓒ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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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안창호체'는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가 안창호 선생의 편지글을 정리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산안창호기념관(아래 기념관) 측은 "필립 안 커디가 이를 의미 있는 사업이라 생각해 폰트 제작 사업에 적극 협조했고 도산의 정신이 담긴 안창호체가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기념관 측은 또 시민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도산 공원 내 '도산 공원의 유래', '도산의 명언' 등 5개 안내문을 '안창호체'로 교체했다.

'안창호체'는 공유마당 안심글꼴파일 모음집(https://gongu.copyright.or.kr)에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조성두 흥사단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창호 선생께서는 생전 부인 이혜련 여사와 아들들에게 많은 편지를 쓰셨다. 나라를 걱정하는 편지부터 부인과 아들을 염려하는 편지, 선생 자신의 활동을 알리는 편지 등 다양하다. 이 편지글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실제 글씨체가 아니라 그 편지글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번에 편지글을 토대로 한 '안창호'체가 나와 무척 반가운 마음"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조 이사장은 또 "하나의 '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 의미가 상당한 것이다. 더더욱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쳤던 사람의 육필을 바탕으로 하는 서체는 인포메이션의 메신저뿐 아니라 정서의 메신저라는 의미도 크다"며 "많은 분들이 도산 선생의 애국의 마음이 이 안창호체를 통해 조금이나마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그:#안창호, #안창호체, #안창호편지, #한국저작권위원회, #필립안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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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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