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23년 10월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지난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2023년 10월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지난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하철 탔는데 코트에서 빈대가..."
"이거 빈대 맞나요?"


요즘 SNS를 타고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다. 빈대라고 하면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또는 남의 일이었다. 프랑스에서 빈대가 출몰해 내년 올림픽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때도 거참 별일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일이 되고 있다.

빈대는 왜? 혹시 기후변화일까, 궁금해 지난 7일 검역 분야 곤충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짧게 통화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빈대 한 주제를 갖고 20여 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통화를 마친 뒤 나의 첫마디는 이랬다. 빈대, 장난 아니네.

웬만해선 안 죽는 빈대, 약점은 바로

빈대를 외국에서는 베드 버그(Bed Bug)라고 한다. 침대에서 나오는 벌레라는 뜻, 침구류나 옷, 가구 등에 숨어있다가 피를 빠는 흡혈 곤충이다. 모기처럼 피를 빨아먹고 부화를 하고 성장한다. 알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피를 빤다. 더구나 살충제에도 내성이 있다. 약을 쳐도 잘 안 죽는다. 곤충 전문가는 과거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갔는데 그 집에 빈대가 드글드글한 거예요. 몰랐죠. 밤에 잠을 못 자겠더라구. 물리면 너무 가려운 거야. 그래서 잡으려고 불을 켜면 쏙 숨어. 불을 끄면 어디선가 나와서 또 물어. 잠을 못 자는 거죠."

그러면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오래전부터 뭔가에 물려서 가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고. 그게 빈대라는 걸 몰랐을 뿐.

어떤 이는 침대 밑에 끈끈이를 붙이고 잤다고 한다. 바퀴벌레 잡듯 빈대를 잡기 위해 그랬더니, 빈대들이 천장으로 올라서 위에서 떨어지더라고 했다. 피를 빨기 위해 집요하게 꾀를 쓰는 걸까. 약을 써도 잘 안 죽는 것은 내성 때문이다.

"약을 써도 잘 안 죽는 이유가 계속 약을 뿌리다 보면 내성이 있는 녀석들만 살아남아서 나오니까..."

그렇다면 빈대는 어떻게 잡을까? 열이다. 빈대의 약점은 열에 약하다는 거다. 일명 스팀 소독. 그러다 보니 이불 등 침구류는 살균 소독하거나 가구의 경우는 아예 갖다 버리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예로부터 초가삼간 불태운다는 말까지 나왔다. 모두 빈대를 열로 잡기 위함과 연관되는 말이다.

"그래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운다는 게, 그만큼 얘들이 안 죽어서 결국 불로 얘들을 잡으려다가 집 한 칸 다 탄다는 거죠. 그때 우리 가족은 결국 하다 하다 안돼서 정말 맹독성 농약을 집 전체에 뿌렸어요. 훈증 처리라고 하죠. 확 뿌리고 하루 종일 집에 못 들어갔죠. 그때 고생한 것 생각하면..."

급격한 세계화가 빈대 창궐 불러

그렇다면 왜 요즘 다시 빈대일까? 전문가는 급격한 세계화를 꼽았다.

"옛날처럼 상사맨들만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오가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누구나 해외여행을 가고 온갖 물류가 국경을 넘어 다니죠. 당연히 외래 곤충, 동·식물, 병원균도 국경 없이 빠른 속도로 퍼지는 세상이죠."

그래서 프랑스 파리라고 한다. 프랑스 파리의 방역이 특별히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유럽의 교통 허브로 전 세계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곳이기에,
 
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해충 퇴치 업체가 파리의 빈대 문제를 다룬 지역 신문 <르 파리지앵> 1면을 가게 문 앞에 붙여놓고 있는 모습.
 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해충 퇴치 업체가 파리의 빈대 문제를 다룬 지역 신문 <르 파리지앵> 1면을 가게 문 앞에 붙여놓고 있는 모습.
ⓒ EPA/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금 유럽에서 창궐하는 게 '반날개 빈대'라고 아열대 지방에서 서식하던 종입니다. 그게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거죠. 파리뿐 아니에요. 빈대 창궐 외신을 찾아보면 런던, 뉴욕, 샌프란시스코, 많아요. 모두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교통 허브죠."

당연히 그 와중에 우리나라도 노출되었을 것이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저와 함께 곤충학을 공부한 친구가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데 그 친구가 빈대 연구로 날렸어요. 미국에 빈대 창궐이 이슈였으니까요. 그때 그 친구가 제게 묻더군요. 한국은 빈대 없냐고. 그때가 10여 년 전의 일이에요."

이미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 사이에서는 빈대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유럽 여행 갈 때 침대에서 빈대 나오는데 엄청 가렵더라, 어디 어디 게스트하우스는 특히 조심하라 등등(생방송 중에도 청취자 문자로 6년 전 헝가리 배낭여행 때 빈대에게 물려 고생했다는 경험담 등 다양한 의견이 답지했다).

여행 다녀오면 가방과 짐은 열 소독해야

"한국에서도 빈대 창궐 등 공중 방역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있었어요. 7~8년 전쯤 됐죠. 그러나 사회적 관심은 없었어요."

곤충 전문가는 이제라도 국민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하며 빈대 방역의 심각성에 대해 귀띔해 줬다.

"최근 사설 곤충방제업체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디클로르보스(DDVP) 살충제를 매일 뿌려도 계속 나온답니다. 이미 내성을 가졌다는 거죠. 결국은 화학적 방제뿐 아니라 스팀 소독을 해야 해요. 해외 여행 다녀오면 가방과 짐은 열소독을 해야 합니다."

침구류나 옷도 열 소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뜩 떠오르는 것이 스팀다리미. 그런데 이걸로 얼마만큼 가능할까?

"사실 이게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공중 방역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원룸이나 고시원, 오피스텔, 게스트하우스, 이런 곳에서 한군데 방에서 한 마리라도 빈대가 나왔다면... 그 건 건물 전체에 이미 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공공 보건 시스템 정책이 필요하다

이날 대화에서 곤충 전문가가 가장 강조한 부분은 공공 영역에서의 방역이 필요하다는 부분이었다. '약 뿌려라' '약 뿌려라' 해서는 안 죽는 게 빈대이고, 스팀 소독은 개인 차원에서는 난감한 게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농촌 지역 고령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결국 공공의 보건의료 차원에서 방역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미국은 이미 그런 체계를 갖췄다고 한다.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쪽방상담소 입구에 '빈대주의'라는 문구와 함께 방제방법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서울시는 쪽방촌·고시원 등 주거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유형의 공동주택에 집중되는 상황을 감안해 위생 취약 시설 빈대 방제에 예산 5억 원을 긴급 교부하고 빈대 발생 가능성이 큰 숙박시설, 목욕장, 찜질방 총 3175곳의 전수 점검을 시작했다.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쪽방상담소 입구에 '빈대주의'라는 문구와 함께 방제방법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서울시는 쪽방촌·고시원 등 주거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유형의 공동주택에 집중되는 상황을 감안해 위생 취약 시설 빈대 방제에 예산 5억 원을 긴급 교부하고 빈대 발생 가능성이 큰 숙박시설, 목욕장, 찜질방 총 3175곳의 전수 점검을 시작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과거에는 마을 공동으로 모기 방제 등을 했잖아요. 요즘에는 그런 공동 방역이 거의 사라지고 그 역할이 대부분 사설업체로 넘어간 듯 해요. 미국에서는 몇 번의 소동을 겪은 뒤 심각성을 깨닫고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갔죠. (어떻게?) 우리나라 질병관리청 같은 곳에서 예방 교육도 하고 공동방역도 하고 검역도 철저히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거죠."

결국 빈대는 과거 못 살던 시절의 복기가 아니다. 세계화와 기후 위기가 만나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했듯 외래 곤충도 우리 예측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모기를 매개로 하는 말라리아 감염 사례도 지난해 700여 건이나 발생했다. 말라리아 방재는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해야 하는데 난망한 부분이 많다. 공공의 영역에서의 체계적인 방제, 기후 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숙제이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스팀 고열, 진공청소기 사용 등 물리적 방제와 환경부에서 허가한 살충제 사용 등 화학적 방제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며 올바른 빈대 퇴치법을 알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3년 11월 8일 OBS 라디오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방송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만 매일 2시간 편성제작되고 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경기, 인천 전역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빈대, #방역, #기후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FM 99.9 OBS 라디오에서 기후 프로그램 만들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