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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를 잡고 있는 다람쥐. 다람쥐는 도토리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먹이를 먹는다.
▲ 메뚜기도 맛있어요! 메뚜기를 잡고 있는 다람쥐. 다람쥐는 도토리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먹이를 먹는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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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하나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관계가 있다. 서로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하여 늘 함께 어울리는 사이. 또는 그러한 친구. 그런 관계를 우리는 흔히 단짝이라 부른다.
  
가을 산에도 단짝이 있다. 다람쥐와 도토리가 그렇다. 어릴 적 들었던 동요에서도 '아기 다람쥐'는 '도토리 점심'을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는 우리에게 꽤 친숙한 동물이다. 실물을 본 사람들이 많아 그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이 사람을 무척 경계하여 발자국이나 흔적만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다람쥐는 나무를 탈 때도, 땅을 이동할 때도 늘 뛰어다니는데 속도도 매우 빠르다. 다람쥐라는 이름도 '다람+쥐'에서 왔는데 '재빠르게 달리는 쥐'라는 뜻이다. 특별한 무기가 없어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최대한 빨리 뛰어가 숨기 위함이라 한다.

우리가 다람쥐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무위에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쓰러진 나무 사이나 돌 밑, 썩은 나무 그루터기 같은 곳에 보금자리가 있어 주로 땅위로 돌아다닌다. 그렇게 땅위를 돌아다니다가 먹이를 찾으면 뺨 주머니에 넣고 바위나 나무 그루터기처럼 안전한 곳에 가서 먹곤 한다. 또 그러다가 적이 나타나면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굴속으로 숨는다.

도토리 먹는 다람쥐 관찰기  

얼마 전 다람쥐를 꽤 가까이서 오랫동안 볼 기회가 있었다. 굴참나무가 많은 숲에 밤톨만큼 큰 도토리가 꽤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한 다람쥐가 재빠르게 도토리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축대를 이루는 커다란 돌 사이를 가볍게 뛰어 건너갔다. 그러다가 평평한 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앞발로 도토리를 돌리며 앞니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는 도토리의 속살을 갉아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먹던 다람쥐는 껍질 벗긴 도토리의 아랫부분을 약간 남기고 다시 폴짝 뛰어서 돌 틈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자신의 굴로 들어간 것 같다.
   
도토리 까먹는 다람쥐를 보며 옆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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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가 사는 땅 속 굴 안에는 방이 두 개 이상 있다. 큰방은 먹이를 모아두고 잠을 자는 곳이고, 작은 방은 똥을 누는 곳이다. 앞발로 흙을 긁어내는데 발톱이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이라 땅을 파기에 알맞다.

굴을 파는 방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첫 번째로는 천적에게 자기가 사는 곳을 들키지 않으려고 굴을 파면서 나온 흙은 뺨 주머니에 넣어 멀리 내다버린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로는 앞발로 흙을 긁어내고 뒷발로 밀어가며 입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까지 굴을 파고 땅밖으로 나온다는, 그리고 처음의 입구를 주위에 쌓인 흙으로 막아 감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실제로 다람쥐가 굴을 파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땅속 집을 마련했지만 ,추운 겨울 동안에 다람쥐들이 먹이를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람쥐들은 땅속둥지에 가을 동안 700~2000 여개의 도토리를 모으고 마른 잎이나 풀을 쌓아서 따뜻한 잠자리를 만든다. 그리고는 겨울잠을 잔다. 겨울잠을 잔다고 하면 몇 달 동안 계속 잠만 잘 것만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동물에 따라 겨울잠을 자는 방식은 다양한데 다람쥐는 잠을 자다가 약 일주일마다 잠을 깬다. 깨어 있는 동안 먹이도 먹고 똥도 누는데 짧게는 10시간에서 길게는 이틀 정도 활동하다가 다시 잠에 든다고 한다.

또 겨울잠을 자는 동안 에너지 소비량을 조절하기 위해 체온과 호흡수를 조절하기도 한다. 평소 다람쥐의 체온은 약 37~38도로 사람보다 따뜻하고, 호흡수는 1분에 50~120번으로 사람보다 3~6배 많지만, 겨울잠 자는 동안에는 체온은 약 8~10도, 때로는 약 3도까지 내려가고 호흡수도 1분에 3~4번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도토리는 땅속 둥지뿐 아니라 다른 곳에 분산하여 저장한다. 둥지가 아닌 여기저기에 2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땅을 판 다음, 도토리를 조금씩 묻어두는 방식이다. 그 위에 흙도 덮고 가랑잎까지 덮어두면 파기 전 모습과 같게 되어 눈에 띄지 않는다. 나중에 도토리를 묻은 곳을 찾는데 보통 자기가 묻은 것을 찾지만, 다른 다람쥐가 묻은 것을 찾기도 한단다.

지도를 그려 두지도 않고 장소에 표시를 하지도 못하지만 다람쥐는 후각이 발달해서 땅에 묻힌 도토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도토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찾지 못한 도토리는 싹이 나고 성장하여 참나무가 될 기회를 갖게 된다. 다람쥐의 건망증이 숲에 나무를 키우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도토리에 참나무 될 기회 주는 다람쥐 

이런 분산저장을 실제로 보았다. 유치원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 다람쥐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갑자기 아이들이 다람쥐 굴을 찾기 시작했다. 설마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잠시 후에 나무아래 넓적한 돌 아래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를 한 주먹 꺼내 들어서 깜짝 놀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일곱 살 아이들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굴이 있었다. 내가 해 준 이야기 때문에 도토리를 모조리 빼앗긴 다람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가며 도토리를 한주먹 모아 그 굴에 넣어주었다. 며칠 후 다시 확인해보니 이미 알려진 장소라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옮긴 것인지, 넣어준 도토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람쥐가 많이 먹는 도토리가 가을 숲에 떨어져 있다. 탐내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서 주워가렴!
▲ 도토리가 여기 저기에  다람쥐가 많이 먹는 도토리가 가을 숲에 떨어져 있다. 탐내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서 주워가렴!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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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람쥐는 우리에게 단짝으로 알려진 도토리만 먹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다람쥐는 도토리를 많이 먹는다. 하지만 도토리를 제일 좋아하거나 도토리만 먹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도토리, 밤, 잣 같은 나무 열매가 열량이 높기 때문에 좋아하지만 가을에만 구할 수 있으니 다른 것도 먹는다.

봄에는 지난 해 떨어진 열매나 땅속에 묻어둔 것을 열심히 찾아 먹고 그 밖에 새싹, 꽃봉오리, 꽃가루 등도 먹는다. 여름에는 나방의 유충과 성충, 개미의 번데기와 사슴벌레, 대벌레, 메뚜기 등 곤충 등 동물성 먹이를 자주 먹는다. 때로는 새알이나 개구리를 먹기도 한다.

실제로 도토리를 맛있게 먹는 다람쥐를 만나고 일주일쯤 뒤에 메뚜기(!)를 양 손에 꼭 쥐고 먹는 다람쥐도 만났다. 또 등산객이 가져왔을 오이를 먹고 있는 다람쥐도 보았다.

얼마 전 수풀이 없는 대청봉에서도 다람쥐를 만날 수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야생의 상황으로 보면 수풀이 없어 먹을 것을 얻지 못해 대청봉에 살지 않던 다람쥐가 사람들이 주는 먹이 때문에 대청봉에서도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전문가들은 다람쥐가 그런 먹이를 먹게 되면 야생성을 잃어버려 스스로 먹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 사람들이 많이 주는 초콜릿, 과자 등은 건강한 먹이가 아니기 때문에 다람쥐에게 영양 부족 또는 영양 불량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람쥐의 단짝 도토리를 함부로 채취해가기도 하고 다람쥐에게 맞지 않는 먹이를 주는 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다람쥐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며 익힌 생활양식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적절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겠다.
 
숲에 미국흑호두가 있어서 바위로 깨 놓았더니 깨끗하게 잘 먹고 갔다. 잘했다! 다람쥐야
▲ 호두가 있었는데 없습니다.  숲에 미국흑호두가 있어서 바위로 깨 놓았더니 깨끗하게 잘 먹고 갔다. 잘했다! 다람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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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를 먹은 범인. 호두껍질을 잡고 속살만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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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는 자주 보이던 다람쥐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겨울잠을 자러 간 것이 아닐까? 올해 도토리가 좀 부족해 보였는데 겨울양식은 잘 챙겨서 겨울잠에 들었을지 궁금하다. 그 때 내가 챙겨준 도토리는 분산해서 잘 저장해 두었으려나.

언젠가 미술관에서 '산의 겨울'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 그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군가 산에게 물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계절은 어때?
산은 말없이 허리춤
깊은 곳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셀 수 없는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있었다.


곧 다가올 겨울산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면, 겨울산이 예전처럼 메마르고 황량하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다람쥐도 살고 있고 봄을 기다리는 많은 씨앗과 뿌리들이 함께 하는 곳이라는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가을도 다 가고 겨울이 오는 모양새다. 모두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태그:#강릉, #가을, #도토리, #다람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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