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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발생 현장
▲ 이태원 참사 발생 현장 이태원 참사 발생 현장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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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SNS를 통해 전해지는 나와 비슷한 또래들의 핼러윈 분장에 내심 부러워했던 것도 잠시 이태원 부근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몰렸을 테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겠거니 지나쳤지만 수십 명의 사람이 이태원 거리에 쓰러져 있다는 충격적인 속보들이 잇따랐다.  

그날 이태원에는 대규모 인원이 운집하리라 예측되었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오후 6시 34분 첫 신고를 시작하여 경찰서에 11차례나 '압사'를 경고했고, '죽을 것 같다',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 같다'라며 위태로운 현장을 설명했다. 오후 9시 7분 신고자는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때라도 국가기관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테다. 10.29 이태원 참사는 뜻밖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예고했지만 막지 못했던 '참사'였다.

참사 이후에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녹사평역에 꾸려진 10.29이태원참사희생자합동분향소
▲ 녹사평역에 꾸려진 10.29이태원참사희생자합동분향소 녹사평역에 꾸려진 10.29이태원참사희생자합동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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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발 빠르게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주일 내내 국화꽃을 들고 분향소를 찾아 묵념했다. 하지만 국가의 행보는 '애도'라는 단어를 무색할 만큼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참사'라는 명명을 부정하며 '사고'를 주장하였다. 국정 책임자들 또한 '주최자 없는 자발적 행사였다', '경찰 인력을 투입해도 막을 수 없었다' 등의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궤변을 내뱉었다.

이는 희생자 및 피해생존자에게 이태원을 방문한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 재난을 관리하고 피해자 구조·수습 및 피해복구를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소거시키는 논리로 이어졌다. 그렇게 국가는 참사를 안타까운 사건 정도로 규정하며 이외의 논의를 차단하고자 했다.

참사 당시 '국가는 없었다'라는 말이 회자했다. 그러나 분명 국가는 10월 29일 이태원 현장에 존재했다. 당시 이태원에는 130여 명의 경찰 인력이 배치되었지만 그들의 대부분 임무는 마약 단속에 집중되었다. 국가는 시민을 '단속'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참사를 방지하는 임무를 뒤로 미뤘다. 이러한 국가의 인식은 참사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왜 우리 아이가 여기에 쓰러져 있는 거죠?"라는 유가족의 물음에 마약 부검 권유로 맞받아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진상규명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나부꼈던 혐오 현수막
▲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나부꼈던 혐오 현수막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나부꼈던 혐오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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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후 대외 공개 불가라던 경찰청 특별취급 문건(시민단체 여론동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문건에는 "일부 진보성향 단체들은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서 정부 책임론이 확대될 경우 정권 퇴진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한 대형 이슈"로 여긴다는 등의 주장이 담겨있었다. 문건에 거론된 단체들은 하나같이 이런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문건을 통해 '참사에 대한 국가책임 요구 = 정부 비판 시민단체'라는 효과가 발생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42일 만에 "사과 못 받았는데 왜 가만히 있어야 하나"라며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를 결성했다. 이를 두고 한 여당 인사는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선해야지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언급하며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며 유가족에게 '정치적'이라는 불순한 딱지를 붙여댔다.

참사 이후 반백일이 지나는 동안 책임에 뒷짐 지기 바빴던 국가의 태도를 본다면, 참사의 해결은 더욱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사상이 사건인지, 참사인지 규정하는 데부터 시작하여, 왜 내 가족이 안전하게 귀가하지 못했는지, 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 예상했던 축제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따져야 한다.

또, 왜 숱한 재난으로 만들었다던 매뉴얼은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왜 누구 하나 이 황망한 죽음에 관해 설명해 주지 않았는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는 10월 29일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등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정치적인 질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참사의 진상규명은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이들과 진상을 덮고자 하는 이들의 정치적 투쟁이다. 이 투쟁의 장에 '순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여당 인사의 발언 이후 유가족이 꾸린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주변에는 이태원 참사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를 표적하여 '더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라며 혐오와 비난의 '정치선동'이 이뤄졌다.

참사의 진상규명은커녕 피해자 가족들의 연락 공유마저 돕지 않던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정쟁' 등을 언급하며 사회적 애도를 '불편한 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다. 추모를 욕보이며 유가족의 목소리를 사회 밖으로 묶어두려는 시도 또한 참사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분명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엉망인 세계에 기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줄 때
 
10.29이태원참사 100일 추모행진
▲ 10.29이태원참사 100일 추모행진 10.29이태원참사 100일 추모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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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정부 아래, 지켜야 했던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참사 발생 47일, 10대 생존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태원 참사 공식 희생자는 159명이 되었다. 10대 생존자는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친구 2명을 잃었고, 이후 공포의 시간을 홀로 버텼을 테다.

10대 생존자의 사망에 국무총리는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면 좋지 않았을까" 등의 말을 내뱉었다. 온라인상에는 '이태원에 놀러 간 것을 탓'하고, '누가 밀었는지'를 찾으며, '보상'이 언급되자 '돈 장사'라는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러운 모욕이 전개되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참사를 희생자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사회를 마주하며,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만큼이나 엉망이 되어버린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지난 1년 참사의 책임을 부정하는 국가를 목격하며, 결국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움직였다. 스스로 참사 희생자의 가족들과 당시 현장 피해자들의 연락을 수집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이기 시작했고, 단상에 영정사진이 안치된 분향소를 꾸려 추모와 애도의 자리를 지켜나갔다.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곡기를 끊기도 했고, 서명판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며 무심한 세상에 먹먹하고, 사무친 그리움으로 "평생 흘린 눈물의 수백 배"를 쏟았을 가족들의 긴긴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내일(29일)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편이 이렇게 많았어?"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이하여 도보 행진에 나섰을 때, 빨간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 한 분의 목소리가 계속 맴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규명이 중요한 만큼, 참사를 목격한 사회의 역할과 성찰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가족을 잃은 비통함과 진실조차 알지 못한 작별에 억울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담아놓은 말을 발화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서 추모의 마음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시민과 사회의 역할이다. 그것은 참사를 목격한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기억을 지워 책임을 면피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기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줄 때다. 10월 29일 일요일 오후 5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기억, 추모 그리고 진실을 향한 다짐'이 개최된다. 애도조차 허락을 구하라는 국가에 맞서 우리는 우리만의 질서와 예의로 사회적 참사에 연대하자.

태그:#1029이태원참사, #이태원참사, #사회적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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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인권과 평화로 빛날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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