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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영화나 드라마 또는 K-POP 등 '한류' 덕에 영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내가 지난 1990년 처음 영국에 왔을 때 보통 영국인들 중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었다. 그들은 북한과 남한을 거의 구분 못할 정도였다. 수시로 북한미사일 발사 뉴스가 영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해서 그런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보통 영국인들은 '북한(North Korea)에서요?'를 먼저 물었다.

당시 런던에서는 매년 일본축제가 열렸지만 한국은 정말 보통 영국인들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영국이 온 지 33년이 흐른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영국의 기성세대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고 젊은 세대는 K-POP에 열광한다. 하다못해 내가 사는 한국 읍정도에 해당하는 우리 마을의 조그만 동네병원에만 가도 내 이름을 보고 "김씨는 한국 성이지요. 한국에서 왔나요?"라며 젊은 간호사들이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으면 "한국드라마 봐서 알아요. 안녕하세요"라고 기본적인 한국 인사말도 한다.

또 이 조그만 영국마을에 몇 년 전부터는 한국식당도 문을 열었다. 물론 식당 주인은 영국인이라 음식 맛이 한국만은 못하지만 한국의 인기를 반영한다고 할까. 심지어 카페에서 자녀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주문을 받으러 온 영국직원이 우리의 한국말 대화를 듣고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을 정도다.

또한 영국의 웬만한 대학들도 한국문화회가 있다. 보통 학생 회원들이 수백 명이 넘고 회원 중 압도적 다수는 영국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캠퍼스에 모여서 한국 음식 맛보기, K-POP 듣기, 한국 문화 알기 등 다양한 한국 관련 행사를 한다(관련 기사 : 영국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대체 BTS가 왜 좋아?"). 실로 한국문화의 힘을 느낀다.

요즘은 영국에 부는 '한류'로 영국젊은이들은 한국에 많이 가고 싶어 한다. 주위에도 영국 친구들의 자녀 대학생들이 방학 동안에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에 갔다 왔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그런 '한류' 덕에 주위에서도 대학을 졸업한 영국인 친구 자녀들 중에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렇게 요즘 한국문화의 힘으로 영국젊은이들에 한국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대학생들뿐이랴. 우리 마을 고등학생들도 한국에 열광한다.

올해 8월 한국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도 영국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역량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기회는 '위기'가 되고 말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잼버리 대회에 세계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은 4500여 명이 참여했다. 내가 사는 영국 레스터셔주에서도 40여 명이 참가했다. 내 친구의 10대 딸도 잼버리 대원으로 한국에 다녀왔다(관련 기사 : "젓가락도 안 준 잼버리, 엉망... 한국인들이 미안하다 사과해 당황").

하지만 한국에서 잼버리의 악몽을 겪고 나서 영국 친구의 딸은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몇 달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 잼버리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기회를 위기로' 만든 윤석열 정권이 답답할 뿐이다.

그런데 이 '기회를 위기로' 만드는 데는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일부 악덕업주들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영국 등 일부 영어권 국가 정부 홈페이지에는 한국에 대한 경고문구가 적혀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 사이트에 나와 있는 한국에 대한 해외여행 가이드 내용을 보면,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국인들은 때때로 생활과 노동 조건이 기대 이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확한 비자와 거주 허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고용주의) 계약위반, 여권압수, 급여 미지급, 의료보험 미가입등에 대한 불평이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관련 링크).

'한류'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 세계에 '친한파'를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일부 한국의 악덕업주들 때문에 날려버릴까 걱정된다. 

몇 년 전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2021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2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영국 친구의 딸 A씨가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를 하면서 겪은 '악몽'과도 같은 경험 때문에 요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녀는 지금 한국에 한국 남자친구가 있다. 그래서 조만간 한국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는 그녀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내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다. 다음은 그녀와 지난 19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왜 한국에서 영어강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취미로 한국영화, 드라마와 K-POP 음악을 접하며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어도 공부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직접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를 하기 위해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 TEFL을 취득했다."

- 한국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서 영어강사를 한 것 인지?

"영국에서 대학졸업 후 경기도에 있는 한 영어학원에서 지난 2021년 3월부터 올해 3월 까지 2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대학 졸업 후 내 첫 직장생활을 한국에서 한 것이다."

- 가르치던 영어학원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어떤 학원이었나.

"내가 가르치던 학원은 원장 한 명, 사무직원 한 명 그리고 나를 포함 3명의 원어민 영어강사가 있는 총 5명의 사람들이 근무하는 작은 학원이었다. 학생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였다. 내 계약서에 따르면 내 연가는 총 10일 이었다. 지금 한국 법에 따르면 최소 연가가 총 11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여름에 3일 겨울에 3일 그래서 1년에 총 6일만 연가를 쓸 수 있었다. 이것은 계약위반이었고 대한민국의 노동법을 위반하는 불법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이 너무나 말을 안 듣는 것이었다. 몇 번 학생들의 수업태도에 대해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원장은 학부모가 불평하니 그냥 참고 수업을 진행하라고 했다. 어떤 학생들은 수업 중에 욕설을 하고, 교실에서 막 뛰어 다니며, 과제나 숙제도 거의 안 하고 수업진행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 다른 두 명의 영어강사들도 수업이 끝나면 아주 녹초가 되었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영어강사가 전혀 통제 할 수 없었고 학부모도 아무런 도움을 안 줘서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진행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또 학원은 학생들이 아무리 시험을 못 보거나 숙제를 전혀 안 해와도 영어강사가 낙제 점수를 아예 못 주게 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매달 자동으로 영어수준이 높은 반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고급반 학생들이 영어의 기초가 아주 부족한 학생들이 시간이 갈수록 많이 생겨서 점차 영어수업이 아예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한 수준의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실제로 수준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함께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서 수업 진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수준이 낮은 학생들은 이해를 못하니 하품을 하거나 집중을 못했고 수준이 높은 학생들은 지루해 하거나 장난을 많이 해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 그 외에 한국에서 영어강사 생활 중 아주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

"강의 중 쉬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주 힘들었다. 보통 하루에 6-7시간 수업을 했다. 수업준비를 포함해 근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8시간이었는데 저녁때 식사 할 시간이 없어서 10분 동안 빨리 아무거나 먹어야 했다. 그러나 보니 체하거나 소화불량에 걸려서 많이 고생했다. 휴식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비협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 월급은 얼마나 되었는지? 월급은 적절하다고 보는지?

"숙소를 제공해 주고 첫해는 세금과 보험공제 전에 월 220만 원, 두 번째 해는 240만 원을 받았다. 솔직히 급여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 이런 여러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사실 별로 극복을 못했다. 그래서 올해 4월 한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이래 아직까지 한국생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류'를 좋아하고 한국에 살면서 한국 남자 친구도 사귀게 되어서 한국에서 더 살고 싶었지만 결국 탈진 상태가 되어서 영어강사를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 아예 영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이런 '악몽' 같은 경험은 나만 겪은 것이 아니다. 다른 많은 원어민 영어강사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 한국에서 그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 봤는지?

"원장에게 요청했지만 별 도움을 못 받았다. 다른 영어강사들도 나와 비슷한 입장으로 서로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 뾰족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학원에서 자기 자녀들의 문제를 듣고 싶지 않다며 귀를 막고 있는 데 있다. 한국에서 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심정을 충분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있겠는지?

"나 같은 학원 원어민 영어강사 뿐 아니라 한국교사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어민 강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사들도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보호'가 필요하다. 원어민 강사는 기계가 아니다. 식사 시간 등 충분한 휴식을 주지 않으면 나처럼 건강을 망치고 한국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학원들이 최소한 정부에서 정한 원어민 강사에 대한 최소한의 연가 11일과 4대 보험 가입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에서 철저하게 관리감독해 주길 기대한다."

-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다른 원어민 영어강사 후보자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학원과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충분하게 일일이 자세히 모든 것을 확인하고 계약서를 통해 확답을 받은 후에만 계약서에 서명하라. 수업시간표, 숙소 조건을 미리 꼭 확인하고 경험이 있는 강사라면 절대로 낮은 급여를 받아들이지 마라. '돌다리도 꼭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한국 속담을 꼭 명심하라."

- 한국에 오기 전과 한국에서 직접 생활하고 나서 한국을 보는 시각에 바뀐 것이 있나?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미리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 2년간 살면서 나는 왜 한국인들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지, 또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지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의 다수 근로자들에게 연민의정을 느낀다. 나는 한국인들의 근로조건이 정말 나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한국인들이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만약 당신이 학부모라면 제발 교사들의 입장을 생각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 드리고 싶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에 비교해 대중교통이 좋고 치안도 안전한 편이다. 그래서 모든 학부모들이 내 자녀처럼 교사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배려해 주고 생각해 준다면 한국은 아주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그:#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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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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