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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났다. 곧이어 포스트시즌이 이어지지만 아쉽게도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는 볼 수 없다. 정규 시즌 이후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외야수 안권수(30) 선수다.

안권수는 재일교포 3세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야구를 했다. 고교시절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프로에 지명받지 못해 독립리그와 사회인 야구를 했다.

2020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해 전체 99순위(꼴찌에서 두 번째)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고 두산에서 3년을 뛰었다. 2023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 후 시범경기부터 시원한 타격감을 보이며 롯데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안권수는 처음부터 롯데에서 1년만 뛸 수 있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일본 영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병역법상 재외국민 2세가 3년을 초과해 국내에 체류한 경우, 제외국민 2세 지위를 상실해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안권수의 선택지는 올해 시즌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과 입대 후 KBO리그에 남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아내와 아기가 있어 입대는 어렵다고 했다.

지난 13일, 안권수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라이브방송을 하며 일본에 가서는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뛸 수 없고 사회인 야구를 해야 하는데 지금보다 수준 낮은 야구 리그에서 뛰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비록 다른 일을 하더라도 굴곡 많은 그의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에너지로 남은 인생도 잘 꾸려가면 좋겠다.

떠나보내기 아쉬운 팬들
 
안권수의 마지막 경기 중계를 남편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이날 안권수의 적시타로 마지막 점수가 났다.
▲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후 안권수의 모습 안권수의 마지막 경기 중계를 남편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이날 안권수의 적시타로 마지막 점수가 났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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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리그 마지막 3연전은 한화와의 경기였다. 롯데 응원석에 안권수를 응원하는 플랜카드가 유독 많았다. 사실 그는 6월 팔꿈치 수술 이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간혹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즌 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팬들은 그를 보내기 아쉬워한다.

안권수는 자신이 뛰든지 못 뛰든지 더그아웃에서 열심히 선수들을 응원한다. 팬들은 안권수를 더그아웃을 밝혀주는 선수라고 말한다. 항상 웃는 표정의 그를 보면 긍정에너지가 솟는다. 그래서인지 롯데에 1년밖에 있지 않았지만 많은 팬들이 그를 보내지 못하겠다 말한다. 비단 성적이 다가 아닌 것이다.

야구 중계에서 안권수 응원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팬들을 보니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안권수의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안권수 선수, 응원합니다!', '안권수 선수의 응원가를 다시 부를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댓글을 달기도 했다. 안권수의 1년 6개월 병역을 하루씩 대신 해 줄 사람을 모집한다는 댓글, 안권수 대신 남동생을 다시 군대에 보내겠다는 댓글이 넘쳤다.

안권수의 떠남을 슬퍼하는 팬들을 보고, 어쩌면 안권수는 좋은 타이밍에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병역 이슈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즌이 다 끝난 후 다른 팀으로 이적했거나 수술 후 부진으로 2군에 있다가 떠나갔다면 분명 지금처럼 아쉽진 않았을 것이다.

퍼뜩 예전 일이 생각났다. 2001년, 처음 중국 어학연수를 갔을 때 거기에 사는 한국 유치원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6개월이란 짧은 기간의 연수였는데 날짜를 잘못 계산해서 학기가 끝나는 12월이 아니라 11월에 귀국하게 됐다.

학기 중간인 11월에 돌아가니 봉사를 했던 집마다 귀국 전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엄청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남들이 다 돌아가는 12월에 귀국했으면 그런 환송을 받지 못 했을 게 분명하다.

난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고르라고 하면 난 2001년 여름과 가을의 중국이 떠오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타이밍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랑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내 마음을 꽉 채운다.

안권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후 그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힘들 때마다 지금 받은 넘치는 사랑이 그의 가슴을 든든하게 해주는 추억이 되기를.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기억해 주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의 하이파이브 장면을 남편과 함께 핸드폰에 담았다.
▲ 2023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롯데 선수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의 하이파이브 장면을 남편과 함께 핸드폰에 담았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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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에 있던 롯데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KBO에서의 안권수의 마지막 경기였다. 난 그 경기에서 안권수가 제발 안타를 쳤으면 하고 바랐다. 아마 나뿐 아니라 모든 롯데팬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경기, 앞선 4타석에서는 삼진과 뜬공으로 안타까웠는데 마지막 타석에서 드디어 안타를 쳤다. 집에서 경기를 보던 딸과 남편과 내가 함께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현장에 있는 팬들이 방방 뛰며 플랜카드를 흔드는 모습,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그 장면을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안권수 지금 엄청 행복하겠다."

안권수가 운이 좋지 않다고만 생각했다. 4월 28일 발표한 아시안게임 예비 명단에는 들어갔지만, 수술을 받고 재활에 돌입하게 되면서 아시안게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야구대표팀은 금메달을 땄고 대표 선수들은 병역에서 면제되었다.

안타까웠던 일련의 사건들이 남편의 한 마디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인생은 오늘이 끝이 아니고 계속 이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긍정 에너지를 뿜었던 안권수. 오늘 나는 그의 긍정 에너지를 생각하며 어쩔 수 없는 일들을 훌훌 털어버린다. 장맛비가 내리는 것 같은 아이의 수학 시험지도, 내 오른쪽 뺨에 슬금슬금 면적을 넓혀가는 기미도.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안권수, #정규시즌마지막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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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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