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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 부부가 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개최된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에서 연단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 영국 리시 수낵 총리 부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부부가 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개최된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에서 연단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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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리시 수낵 총리는 '금연 세대 만들겠다!'라는 내용이 담긴, 아래와 같은 국정 계획을 발표했다.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려면 애초에 청소년시절 흡연을 시작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2009년 1월 이후 출생한 현재 14살 이하 아이들은 향후 성인이 돼도 법적으로 담배를 구매할 수 없게 할 것입니다. 담배 구매 가능 연령을 현행 18살에서 해마다 1살씩 올려 향후 흡연이 단계적으로 사라지도록 할 것입니다. 최근 이용이 급증하는 전자담배 판매제한도 검토할 것입니다.

이 금연 법안을 곧 의회에서 표결에 부칠 것입니다.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면 오는 2075년까지 영국 흡연인구가 최대 170만 명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흡연자 5명 중 4명이 20살 이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대다수가 금연을 시도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니코틴에 중독되어 금연에 실패하며 애초에 습관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합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사망과 질병의 원인을 끝낼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매년 7만 5천 명 이상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50만 명 이상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매년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아닌 무상의료를 실행하고 있는 영국에서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국민이 매년 지불하는 세금비용은 약 170억 파운드(한화 약 28조원)이다. 즉 영국 국민 전체가 금연을 하면 연간 약 28조 원의 국민세금(국가예산)을 의료분야나 다른 사회복지 분야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 전체 인구 6800만 명 중 13%만 흡연 인구인 터라, 수낵 총리가 이번에 내놓은 '금연 정책'은 대다수로부터 압도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 영국 정부가 이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면 오는 2040년까지 영국 인구 대다수가 금연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흡연자의 금연이 가져올 경제효과, '14조'

영국정부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흡연자는 금연자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으로 나타난다. 담배 한 갑의 세율은 80%다. 즉 담배 한 갑이 1만 원이라면 8천 원은 세금인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영국인들을 살펴봐도 흡연자들은 금연자들보다 대체로 가난한 경우가 많았다. 

영국 정부는 흡연문제가 단지 흡연자의 개인선호도나 건강문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흡연자가 금연을 하면 오는 2075년까지 약 850억 파운드(한화 약 14조원)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영국정부는 발표했다. 세금으로 지불하는 흡연자의 무상치료 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흡연자가 담배를 구매할 돈으로 외식을 하거나 쇼핑 또는 여행을 가면 영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흡연 대체물인 전자담배에 대해서도 수낵 총리는 향후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보통 전자담배는 성인들이 완전한 금연 전에 니코틴 중독을 점차적으로 줄이기 위해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보건전문가들은 "금연을 하면 아예 담배를 끊지 전자담배 조차도 피지 마세요. 특별히 청소년들도 절대 전자담배 흡연을 해선 안 됩니다"라며 충고한다.

물론 영국에서는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이 불법이다. 하지만 전자담배(세율 20%)가 일반담배(세율 80%)보다 값이 저렴해 일부 청소년들은 전자담배를 불법으로 구매해 흡연을 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청소년들의 전자 담배 흡연이 3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영국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우려와 함께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사실 영국정부의 대국민 금연계획은 지난 2017년 7월 <금연 세대를 향하여(Towards a smoke-free generation)>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일반에 발표된바 있다. 그 보고서의 일부를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매일 200명 이상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 저임금계층의 흡연율은 고임금계층들보다 3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은 영국사회의 경제적인 양극화만 아니라 건강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금연자가 흡연자보다 훨씬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지 오래다. 흡연자들이 금연자들보다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흡연자는 영국전체 국민의 13%에 불과한 반면 심각한 정신질환자의 40% 이상이 흡연자인 것을 통계자료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 우리의 비전은 금연 세대를 창조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리더십을 보여야 하고, 지침을 정하고,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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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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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인 노동당은 물론 영국 의료계와 보건전문가들, 금연운동 단체 등은 수낵 총리의 이번 금연 정책을 일제히 환영했다. 영국의 보건 소장이자 의대교수인 크리스 위트니는 정부의 금연 정책에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흡연은 생명에 치명적이다. 흡연은 사생아 출산의 주원인이고 천식, 심장병, 뇌졸중, 치매, 폐암과 다른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 어린 시절 니코틴에 중독되는 것은 그 사람의 미래를 완전히 망쳐 놓는 것이다.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흡연을 통한 니코틴 중독을 예방하는 것과 금연 정책을 이행하는 것은 가장 필수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영국 보건부 장관 스티브 바클레이는 수낵 총리의 금연 정책 법안과 관련해 이렇게 보도자료를 냈다.

"흡연은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료재정과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다 줍니다. 이번 금연 정책은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영국의 무료 국가의료서비스를 미래에도 유지하고 보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자담배는 성인들의 금연 노력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은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모든 조치를 다해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을 근절하도록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낵 총리의 이번 금연 정책과 관련해 영국의 흡연자 단체와 담배제조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흡연자 단체 '포레스트'의 사이먼 클라크는 수낵 총리의 금연 정책을 이렇게 비난했다.

"(정부의 금연 정책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암시장이나 해외 등 불법경로를 통해 담배를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투표하고, 세금을 내고, 운전하고, 음주할 수 있는 나이의 성인들이 아이 취급을 받으며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이들이 합법적으로 구매하는 담배를 구매할 권리마저 박탈당할 것이다."

또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도 이번 수낵 총리의 금연 정책과 관련 '소름이 끼칠 정도로 편협한 (hideously illiberal)것'이라며 이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면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라고 수낵 총리를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금연 정책 추진하는 수낵 총리의 진짜 속내는?

전통적으로 영국에서 보수당은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 하는 '작은 정부'나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강조점을 둔다. 그래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지난 2022년 9월 6일부터 10월 22일까지 44일간 재임한 영국 역사상 최 단기 총리로 있는 동안 사회복지축소와 부자감세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정책은 영국기업의 급격한 주가하락, 영국 파운드화의 환율하락을 초래했다. 더불어 당시 영국 국책은행과 세계은행 등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당시 이런 그녀의 정책으로 보수당의 지지율은 33%에서 21%로 추락했고 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은 41%에서 54%로 솟구쳤다.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수상 직에서 사임했다.

그 후 수낵이 수상으로 선출된 후 현재 보수당의 지지율은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노동당보다 20% 이상 낮은 상태다. 그래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낵 총리가 전통적 보수당의 정책인 '작은 정부'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개인의 생활에 국가가 간섭하는 '큰 정부' 역할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번 수낵 총리의 금연 정책이 국가경제와 국민건강인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정책이라 그런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관련기사 : 영국의 부패지수 하락 원인은 무엇일까 https://omn.kr/232kr).

한편, 영국에 앞서 지난해 뉴질랜드 의회는 2009년 1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평생 담배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뉴질랜드와 영국의 이번 금연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정부주도의 금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뉴질랜드 흡연인구는 전 인구의 8%이고 스웨덴은 6%이며 유럽은 계속 흡연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영국 정부의 금연 정책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 떠오른다.

"담배 끊는 것, 그건 너무 쉬워요. 나는 그동안 100번 넘게 담배를 끊었다니까요!"

태그:#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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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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