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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프리랜스 번역가로 일한 지 일 년 남짓.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해 번역물에 대한 감수자의 피드백을 받을 때면 어김없이 뒷골이 땅긴다. 감수자가 검토 수정 후 보내준 파일을 열면 빨간색으로 고친 부분이 화면 위로 떠오른다. 

번역자가 알아채지 못한 실수를 감수자는 매와 같은 눈으로 찾아낸다. 시간에 쫓기고 문서에 익숙해져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 그걸 걸러내 주는 감수자는 분명 고마운 존재다. 덕분에 클라이언트에게 작업물이 넘어가기 전 에러를 수정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나의 오류를 마주하는 일은 무척 괴롭다. 내 몸의 자율 신경계는 심장을 압박하고 뒷골의 혈관을 수축시켜 스트레스 상황임을 격렬하게 알린다. 

'임의'대로 처리해 버린 일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긴 문장에서, both가 either로 바뀐 게 눈에 들어왔다.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긴 문장에서, both가 either로 바뀐 게 눈에 들어왔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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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심상치 않은 메일을 받았다. 영문이 이상한데 번역자가 그냥 두었다는 멘트가 적혀 있다. 번역하면서 나 또한 알아챘던 부분인데. 영문의 첫 단락에서 한 문장이 지워졌는데 아래 단락에 다시 적혀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 단락에 동일한 내용이 중복되는 상황. 첫 번째 단락을 삭제하고 두 번째 단락만 번역했다.

이런 수정이 있을 때엔 에이전시에 메일로 알리는 게 원칙인데 내 수준에서 별거 아니라 여기고 넘겨 버렸다. 내용이 중복되어 삭제했다고 알리려고 영문을 재확인했는데, 아뿔싸.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긴 문장에서, both가 either로 바뀐 게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그게 보이다니! 머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구나, 왜 임의대로 판단해 버렸을까. 고치기 전에 물어보고 확인하면 되었을 일인데.  

'임의'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함'이다((주로 '임의의' 꼴로 쓰여) 대상이나 장소 따위를 일정하게 정하지 아니함의 의미도 있다).

임의대로 하는 결정은 여럿이 관련된 일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업무상으로는 중대한 과실로 금전적 법적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 사적인 문제나 관계에서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고. 사소하게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텐데 그 사소함이 관계에는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 몹시 불쾌했지만 말하지 못하고 참기만 했던 일이 떠오른다. 업무 지시로 상사가 내 자리로 올 때면 지나치다 싶게 가까이 접근했던 일. 그분이 남성이라 더 난감했다.   

'ㄱ' 자 형의 책상을 따라 'ㄱ' 자 형으로 파티션이 있었다. 여럿이 공동생활을 하는 사무실에서 파티션을 따라 보이지 않게 'ㅁ' 자로 만든 공간은 지붕이나 벽도 없고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지라도 암묵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개인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사는 어떤 신호도 없이 불쑥 파티션 안으로 들어왔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내게 바짝 붙어 업무 사항을 지시했다. 그가 서 있는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몸을 빼거나 의자를 돌려 한껏 뒤로 기대는 정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제스처였다. 

공적 관계에서 지켜야 할 심리적 안전거리는 얼마일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겐 60센티미터 이상은 되어야 한다. 상사에게는 30센티도 되지 않았던 걸까. 관계의 적당한 거리에 대해 그와 나 사이 30센티 이상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부분은 간과되었다. 

일로 알았던 지인도 생각난다. 한두 번 가볍게 스친 사이인데 다시 만났을 때 단숨에 개인적인 질문을 서슴지 않던 사람. 가까워지고 싶다는 표시일지 모르지만 내향형인 나는 그런 질문 앞에 빨간 불을 켜고 만다. 적절한 시간을 들여 서서히 관계를 좁히는 대신 장애물 넘듯 단번에 건너오는 상대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멈춰 서고 마니까. 

거리를 두고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임의대로 판단해 일방적으로 직진하는 사람들에게는 호감이 잘 가지 않는다. 묘하게 몸과 마음이 불편하다. 물리적 공간에 예민한 만큼 심리적 공간에도 예민한 탓일까. 

내 안에는 나의 것으로 존중받고 싶은 공간, 서서히 시간을 들여 보여주고 싶은 내밀한 공간이 있다. 가끔 어떤 이들은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 공간을 기웃거린다. 친하다는 이유로 내가 지키고 싶은 비밀한 부분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요청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방을 보여주더니 내 방의 문도 열어달라고 종용할 때가 있으니.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것과 존중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상대를 자신과 동일시 여기고 내게 좋은 게 당신에게도 좋을 거라고 임의대로 짐작하고 행동한다. 그걸 존중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내게 존중은 상대가 가진 심리적 거리를 파악하는 일이다. 말과 몸짓을 세심하게 살펴 보이지 않게 그려진 그를 둘러싼 심리적 경계선을 알아채는 문제.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부분에서 제각각 다르니까.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적 거리도 그만큼 미세하게 차이가 날 테니까.

서로의 의견을 묻고 조율하는 배려

임의라는 게 참 애매해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암묵적) 기준조차 명백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은가.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나 친근해지고 싶은 마음에 반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불편해하듯이. 어디선가는 미취학 아동의 출입을 금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에 부당함을 토로하듯이. 

한 사람이 임의로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의 영역이 분명한 부분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공동생활에서 개인의 영역이란 주변인들과 겹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경계선의 범위는 저마다 다르고 불확실하기까지 하고.

그러니 서로의 의견을 묻고 조율하는 과정은 필수고 상대의 기분을 살펴 배려하는 것은 기본적인 매너. 그 뻔한 진실이 너무 쉽게 잊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 또한 많은 순간 임의대로 말하고 행동하여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상심시킨 적이 있겠지. 성미가 급해 실수가 잦은 자신을 알아 말과 행동에 조심하지만 중요한 순간 별 수 없이 본성이 튀어나오곤 하니까. 말과 행동이 앞서 후회하는 일이 잦으니 어디서 어떻게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했을지 모른다. 아, 갑자기 뒷골이 땅겨온다.

묻고 확인하고 한 번 더 조심하기. 그 간단한 걸 잊어버렸던 나여. 하지만 일에서의 명백한 실수는 사적 관계에서 감지하는 말할 수 없는 애매한 기류보다 나은 것 같다. 잘못을 확인하고 바로잡을 수도 있으니. 정중하게 고개 숙이는 마음으로 이메일에 답장을 썼다.

"임의대로 한 단락을 누락한 점, 사과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임의대로, #관계의거리,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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