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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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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 전쟁(1337~1453)이 발발하자 양국 사이 가장 가까운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칼레 사람들은 시민군까지 조직하여 치열하게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 조건을 제시했다. '시민 대표 6명을 뽑아 대신 처형하겠다.' 이때 시민 대표로 고위 관료와 부유층 인사 6명이 자원했다. 이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자루 옷을 입고 영국 왕 앞으로 나갔다.

지금 칼레에 있는 로댕의 조각상과 같은 모습이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임신 중이던 왕비가 처형을 만류했다. 시민 대표를 죽이면 태아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왕은 고심 끝에 풀어주었고, 6명은 칼레의 영웅이 되었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이 생각난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나무는 이파리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올린 물이 햇볕을 받으면 영양분으로 전환한다. 광합성 작용이다. 나뭇잎이 푸른 이유는 엽록체 때문인데, 이 엽록체에서 광합성이 일어난다.

광합성은 강한 빛을 받을수록 양이 증가한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빛의 세기는 약해지고 나뭇잎은 더는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한다. 나무 처지에서 보면 영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도리어 영양분을 축내니 나뭇잎은 필요 없는 존재다. 나무는 생존을 위해 나뭇잎을 버린다. 

월 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병탄한 범려는 생의 절정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낌없이 버렸다. 과정을 살펴보자. 

범려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다. 초나라를 떠나 월나라로 가서 구천의 책사가 되었다. 월왕 구천은 아버지 유언대로 복수하려고 오나라를 침공했으나 패하고 외려 오나라의 볼모가 되는 조건으로 화해를 요청하였다. 이때 범려는 구천을 따라 관리 300명을 이끌고 오나라로 들어갔다.

구천은 오왕 부차의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으며 굴욕적인 오나라 생활을 시작한다. 부차가 병이 들었을 때 구천은 부차의 똥까지 먹는 정성을 보이며 마음을 샀다. 약 3년 만에 범려는 구천과 함께 귀국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치욕을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마음이 나태해질까 염려해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고 머리맡에 쓸개를 달아 놓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다.

구천은 직접 밭을 갈아 농사짓고, 부인은 직접 길쌈질을 했으며, 음식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고 옷을 화려하게 입지 않으며, 몸을 낮추고 어진 사람에게 겸손하고 손님을 후하게 접대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고 죽은 자를 애도하며 백성들과 더불어 수고로움을 함께 했다. 신하들이 좋은 계책을 올리면 그대로 시행하면서 의심하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구천과 범려는 아주 짧은 시간에 월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오나라가 빈틈을 보이자 월나라는 가차 없이 공격해 들어갔다. 이번에는 거꾸로 월나라가 오나라 수도 고소성을 포위해 부차에게 항복을 받았다. 지난날의 치욕을 씻자, 구천은 부차를 귀양 보내어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하려 했다. 부차는 구천의 호의를 뿌리치고 스스로 목을 베고 죽었다.

오나라를 병탄한 후에 범려는 구천이 어려운 일은 함께했어도 공을 나누지 못하는 성격임을 알고 오래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월나라를 떠난다.

범려는 스스로 이름을 치이자피(말가죽으로 만든 술 부대)로 바꾸고 사업에 종사하여 재물을 크게 모았다. 모은 재산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후 도 땅으로 가서 호를 도주공이라 하고 장사를 크게 하였다. 수만금을 모아 대부호가 된 범려는 자신이 번 재물을 사람들에게 세 번이나 흔쾌히 베풀었다. 

범려가 대단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목표를 이루고 나서 열매를 따 먹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킹메이커라고 하는 자들이 대통령을 만들고 나서 권력에 빌붙어 전리품을 챙기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꿈을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고 드디어 고지에 올랐는데 그때 욕심을 버리는 용기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범려는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기꺼이 떠났다. 

둘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다. 가진 자가 먼저 베풀고 먼저 행동하고 먼저 희생하는 정신을 범려는 실천했다. 월나라가 전쟁에서 패하자 몸소 구천과 함께 오나라로 들어가서 3년 동안 굴욕을 당했다. 큰 재물을 모은 후에는 그것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것도 흔쾌히 세 번씩이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미래경영연구원장입니다.


태그:#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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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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